코로나에 진 자

쓰고 보니 말장난 같지만 코로나에 확 졌어요

by 박기복

두 줄이다. 뚜렷한 빨간 두 줄. 열이 나고 목이 아프고 오한을 느꼈던 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코로나 양성. 새벽에 눈뜨자마자 자가 키트를 해보았는데 신속하게 나타나는 빨간 선이 당황스러우리만치 선명했다. 이틀을 꼬박 아프고 받아 든 결과라 더 황당했다. 학교에 급히 연락을 하고 병원에 갔다. 이틀 전만 해도 음성 통보를 하던 의사에게서 양성 확진 통보를 들었다.


확진 통보를 받으려고 병원에 가는 길에 묘한 기분을 느꼈다. 사람들이 내가 확진자라는 사실을 안다면 나를 어떻게 쳐다볼까? 내 옆을 스쳐가는 것조차 싫겠지?라는 생각을 하니 내 몸이 거대한 바이러스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절대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을 간직한 사람처럼 조바심이 났다. 확진자가 매일 수십만을 기록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이런 기분인데 초기 확진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역시 같은 입장이 되어봐야 제대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나. 그들이 느꼈을 공포가 새삼 내 것처럼 생생했다.


진통제 성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나는 타이레놀 조차 먹을 수가 없다. 두 시간 이내에 눈두덩이가 부풀어 오르고 안구까지 부어오르다가 정점을 지나 부기가 완전히 빠지는 데까지는 48시간 이상 걸린다. 목이 붓는 것보다는 훨씬 덜 치명적이긴 하지만 한번 눈이 부어오르고 나서 부기가 빠질 때까지 사회생활이 불가하다. 그래서 발 빠르게 남편을 한의원에 보냈다. 남들이 양약을 먹을 때 나는 한약을 먹자. 수완 좋은 한의원에서는 코로나 확진자를 위한 탕약과 가루약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삼시 세끼 잊지 않은 식사와 한약 덕분인지 회복이 빨랐다. 목에 돋아난 뾰족한 가시는 점점 작아졌고 확진 5일째인 오늘은 완전 사라져 목구멍이 걸리는 것 없이 매끈해졌다.


주변에 아무리 코로나 확진자가 많아졌다 한들, 아직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나는 걸렸고 그래서인지 뭔가 진 기분을 느꼈다. 졌다. 사람에 진 게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에, 이 상황에 나는 지고 말았다. 그냥 기분이 그랬다. 울적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졌구나. 면역력 대결에서 진거야. 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가지고 놀다가 '지다'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았다. 지다... 소리조차 힘이 없다. 패배하다란 의미의 지다 말고도 꽃이 지다, 해가 지다.. 죄다 뭔가가 사라져 가고 스러져가는, 쇠락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다에 받침 하나만 더해도, '읏차'하고 기합을 넣는 기분으로 시옷 받침 하나만 더해도 확연히 느낌과 의미가 달라진다. 짓다. 글을 짓다. 집을 짓다. 소리도 힘차고 내용도 힘차다.


이미 한번 진 기분이지만 끝까지 지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비참한 패배는 부정적 기분에 휩싸여 격리기간을 보내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까지 지고 싶지는 않다. 코로나로 인해 원치 않게 주어진 일주일의 격리 기간에 뭐라도 짓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글을 짓는 것이고 안되면 그래, 미소라도 짓자. 그렇담 끝까지 지는 건 아니야. 끝까지 시답잖은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의 건강과 건투를 빌었다. 그렇게 벌써 격리 5일 차. 며칠 후 자정에 격리가 풀리면 어둠을 달려 석촌호수에 가서 벚꽃을 볼 생각이다. 꽃잎이 흩날렸으면 좋겠다. (2022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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