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소설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지만, 결말을 알고 봐도 좋을 소설임
<이처럼 사소한 것들(클레어 키건, 2023)>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시간적 배경은 1985년이고 주인공은 1946년생 빌 펄롱이다.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에서 아내와 다섯 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넉넉한 살림은 아니어도 빚 없이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의 직업은 석탄상이다. 성실하고 믿음직한 남편이자 다정한 아버지이고, 어려운 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인정 많은 사람이다. 평범한 소시민인 그의 특별한 구석은 미혼모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직까지 모른다는 점.
소설은 내내 펄롱의 시선을 따라간다. 석탄을 배달하고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소소한 일상들 사이로 펄롱의 내면이 담담히 그려진다. 가사 일꾼이었던 어머니마저 열두 살에 여의고 오랜 시간을 외롭게 보낸 것으로 보이는 펄롱은, 조심스럽고 섬세해서 걱정과 두려움에 종종 시달리기도 하지만, 쉽게 성을 내거나 불만을 터뜨리지 않는다.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고 제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독일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그에게 다섯 딸을 잘 키워내는 목표 말고 다른 욕심은 없다. 펄롱의 하루하루는 늘 똑같이 바쁘고 고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갔다가 우연히 어떤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서 그는 혼란에 빠진다. 수녀원에 관해 들려오던 흉흉한 소문들이 사실임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선택의 기로에 선다. 수녀원은 석탄상인 그에게 중요한 거래처이고 장차 딸들이 다녔으면 하는 학교와도 밀접하다. 심지어 가톨릭 신자인 펄롱이 종교적 권위를 가지는 수녀원에 맞서는 일에는 큰 용기와 대단한 결심이 필요하다.
결국 그는 용감한 선택을 한다. 이 책의 서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용감하지 않은 사람이 용감한 선택을 하게 되는 이야기다. 석탄광에 갇혀 있던 미혼모인 세라를 구출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면서 그는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경험해 본 적 없는 기쁨을 느낀다. 집에 있는 아내가 달가워하지 않을 것도, 자신에게 고생길이 열린 것도 알고 있다. 다만 그는 할 수 있었던 그 일을 하지 않고 지나쳐버린다면, 평생 자신이 짓눌린 삶을 살게 될 것임을 안다. 수녀원에 맞서는 어려운 일보다 더 최악의 일이 무엇인지를 또렷이 아는 셈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실제 인물이 아니지만 수녀원은 아일랜드에 실제로 존재했던 가톨릭 종교 시설로 ‘막달레나 세탁소’라 불렸다. 젊은 여성들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데려다가 학대와 착취를 일삼았고 특히 미혼모에게서는 신생아를 빼앗아 돈을 받고 입양을 보냈다. 무려 3만 명의 피해자를 낳은 인권유린의 대표적 사례였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참히 짓밟힌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세상에 고발하는 이야기는 적지 않다. 그중 이 소설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은 정의로운 투사의 위대한 결단이 아니라 흔들리는 존재가 떨면서 피워낸 한 송이 꽃이라서다. 씨앗에서 싹이 트고 꽃을 피우기까지 흔들림의 연속이다.
연약하고 흔들리던 그가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미혼모인 세라(심지어 자신의 어머니와 이름도 같다)에게서 자신의 어머니를 보았기 때문이다. 소소한 일상들과 함께 그려지는 펄롱의 내면은 미세하게 변화하는데 자신의 어머니를 가사 일꾼으로 부렸던 미시즈 윌슨에 대해서다. 미시즈 윌슨이 임신한 제 어머니를 내쳤더라면 내몰렸을 그 자리가 수녀원의 석탄광이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석탄광에 갇힌 세라가 빼앗겨 간절히 찾고 있는 아기가 자신이 될 수도 있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어렸고 어머니를 잃은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던 사소한 것들(사실은 아주 귀한 것들)을 뒤늦게나마 깨달으면서 그는 마침내 꽃을 피워낸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종종 ’ 각성‘의 단계를 지난다. 몰랐던 원한을 알게 되거나 상실을 겪는 과정에서 분노는 에너지가 되어 폭발한다. 반면 펄롱의 각성은 분노나 원한이 아니라 사랑이 그 계기다. 있는 줄도 몰랐지만 내내 머물렀던 따뜻한 빛을 그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아차렸다. 분노나 원한이 아니라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서사는 언뜻 비현실적인 것 같아도 사실은 새로울 것도 없이 당연하다. 나그네의 겉옷을 벗기는 것은 북풍이 아니라 햇살이라는 교훈을 우리는 이미 어렸을 때 배우지 않았던가.
시종일관 담담하던 이 소설의 톤이 가장 높이 차오르는 언덕은 마지막 세 페이지다. 줄거리를 알고 봐도 결말 부분의 감동이 적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반전에 해당될만한 이야기 한 가지는 일부러 쓰지 않았다. 초반 3분의 1 지점까지 심심한 이야기라며 시큰둥하게 읽었던 나는, 결국 이 소설을 두 번 읽었다. 거대한 이야기를 이토록 장황하지도, 요란스럽지도 않게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121쪽 분량의 짧은 이야기가 남기는 여운이 길다. 참담한 뉴스를 견뎌야 하는 이 시기, 당신에게 권한다.(2024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