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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랄라 Jan 19. 2020

스웨덴의 교육 철학을 느끼다

스톡홀름에 온 아이

   남편이 처음 스웨덴이라는 나라를 언급했을 때 마음이 답답해 왔다. 아이가 4년간 영국에서 어떻게 적응했는데... 겨우 적응할 만한 이 시점에서 또 다른 나라로 가야만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교육기관에 보내기만 하면 다 크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철없던 엄마에게 아이의  영국 학교에서의 부적응은 털털하고 남자 같던 나의 성격을 매우 예민하고 불안정하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며칠 동안 새벽녘까지 잠이 쉽게 들지 않아 머리맡에 두었던 성경책을 뒤적거렸다.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아! 가라는 말씀 같은데.....


   2017년 9월 스톡홀름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만 일곱 살이 안된 딸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이는 스웨덴에서 또 어떤 일을 겪게 될까?

   어린아이가 새로운 언어와 문화에 적응한다는 것이 아이의 기질과 성격에 따라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지난 4년간 나름 혹독히 경험했다. 영국 유치원에 입학을 하고 난 첫해 아이는 머리에 노란 손수건을 1년 동안 쓰고 벗기를 반복했었다. 만 4세가 안되던 아이가 본인의 머리 색깔을 숨기고 싶어 했던 그 순간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언어도 느렸고 친구도 오랜 시간 없었던 아이는 혼자만의 외로움에 갇힌 날이 많았고 엉뚱한 일을 벌이기도 많이 하였다. 친구가 없었던 아이가 생일 파티에 초대받는 것이 영국 생활 2년 차까지의 나의 바람이었던 기억이 있다. 자꾸만 드는 걱정을 밀어 내려 애써 보아도 밀어낸 만큼 다시 돌아오는 부정적인 상념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아이는 스톡홀름 시내의 로컬 학교 중 인터내셔널 학생들을 위해 별도로 구성된 영어 학급에 편성이 되었다. 

   2주간의 학교 배정기간이 흐르고 학교 전학 첫날이 다가왔다. 이른 아침부터 분주히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아이의 학교에 도착하였다. 재잘거리는 어린아이들의 말소리가 정겨우면서도 긴장감을 놓지 못한 채 서 있는데 곧 교실 문이 열렸다. 담임 선생님이 나오셨고, 아이들이 삼삼오오 줄을 지으며 교실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오랫동안 꽉 쥐었던 딸아이의 손을 놓아주었고 아이는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즐겁게 잘 지내야 할 텐데... 


   걱정, 긴장, 불안, 기대 등의 복잡한 심경이 뒤 섞인 채 학교 주변만 하릴없이 두어 번 배회하다가 지하철 역 언저리 카페로 들어섰다.  좋아하지도 않는 아메리카노를 두 잔이나 마셔가며, 핸드폰의 배터리를 충전시켰다. 

   핸드폰 우측 상단의 시간을 반복 체크해 가며, 읽히지 않는 뉴스를 한참 동안 읽어 내려가던 동공의 피곤함이 눈동자 한가득 느껴질 때즘, 아이의 하교 시간이 다가왔다. 이미 한참이나 식어버린 아메리카노를 재빠르게 정리한 뒤  학교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멀찍이 같은 학급의 엄마들이 나라별로 자연스럽게 모여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잠시 뒤 교실 문이 열렸다. 엄마들이 교실문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선다. 


   아이들과 함께 딸아이가 교실 문 밖으로 나왔다. 나는 재빠르게 아이의 얼굴을 살폈다. 


   웃는다


   아이가 활짝 웃으며, 종종걸음으로 지나가는 같은 반 친구들과 인사를 하는데 그 인사말이 <See you. Bye>가 아니라 <안녕>이다. 서투른 발음으로 인사하는 아이들의 <안녕>이라는 소리가 놀랍기도 하였고 즐겁기도 하였다.

   딸아이를 맞이하기 위해 하루 전부터 담임 선생님과 학급 아이들이 준비하고 연습했다는 <안녕>이라는 말 한마디가 하루 종일 동동 거렸던 엄마의 초조했던 불안감을 안정시킨다. 전학생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선생님과 학급 친구들의 작지만 큰 배려가 낯선 땅의 첫 만남을 두려워하던 엄마와 아이에게 감사라는 선물을 안겨다 주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을 지니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의 책가방을 확인해보니 A4 7~8매 정도의 학부모 안내문이 파일철 안에 정리되어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나누어 준 안내문에는 물병과 간식 등의 준비사항 외에 시간표, 출석, 알레르기 등을 체크하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고 별도로 작성된 안내문 중에 인상 깊은 문장들이 보였다.


 - 모두를 초대하지 않을 경우, 생일 카드를 학교에서 돌리지 말 것

 - 선물을 준비할 때 분홍과 파랑으로 남녀를 구분 짓지 말 것


   지금도 기억의 한 자리를 채우고 있는 이 문구들이 나에게 준 첫인상은 <다행과 안심>이라는 단어들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문장이지만 강력한 편안함을 이 두 문구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본다.  소외된 이를 배려하고 사람을 구분 짓지 않겠다는 스웨덴 교육의 기본 철학을 느껴서였을까? 

   해외 생활의 많은 시간을 마이너리티로서 살아온 외국인이라는 사회적 신분에 길들여져 있던 나에게 아이의 스웨덴 학교의 첫날은 밝고 기분 좋은 것이었다.


   주류에 속한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 정당성이라는 프레임을 부여하는 오묘한 속성으로부터 마이너리티를 억압해 왔다는 살짝은 삐딱한 기존의 나의 생각에 스웨덴의 교육철학이 담긴 두 문구의 단어들이 감성을 자극한다. 우리 사회의 메인 스트림이 이해와 배려의 사회적 가치인 <받아들임>이라는 정체성을 지닐 수만 있다면 오히려 마이너리티를 구분 짓는 것이 아닌, 공동체를 더욱 결속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는 않을까? 


   첫인사와 마지막 인사의 <안녕>이라는 친숙한 단어가 낯선 땅에서 아이가 만난 첫 배려의 단어였듯이 아이가 하루하루 만나게 될 모든 인연들과 경험들이 구분과 구별이 아닌 따뜻함과 확장 가능한 결속성으로 마무리되어 나아가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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