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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물들어 나를 느낀다.

by 복작가

가볍게 점심을 먹고 가을 속으로 들어간다. 오늘따라 가을 하늘이 참 좋다. 고개는 저절로 하늘을 향한다. 하늘은 이미 가을이 그려진 한 폭의 화폭이다. 붉은 단풍, 노란 잎사귀, 초록의 흔적마저도 미련처럼 남아 멋진 풍경화가 펼쳐져 있다. 자연은 위대한 화가가 되어 있다.


잎사귀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가고, 그 틈새로는 하늘 살짝 엿보인다. 하늘은 한없이 맑고 푸르다. 깊어가는 계절 속에서도 저 푸름은 변함없다. 하지만 나뭇가지들은 다르다. 가지들은 휘어지고 얽히며 저마다의 색으로 이야기한다. 누구는 빨강으로, 누구는 노랑으로, 그리고 누구는 아직도 초록의 여운을 남긴 채,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나는 그 아래에 서서 살포 호흡을 다듬어본다. 잎사귀가 스치는 소리가 따뜻하게 들려온다. 바람이 지나갈 때는 무언가 떨어져 내리는 것이 보인다. 분명 깃털처럼 가벼운 낙엽이다. 하지만 그 소리가 어찌나 경쾌한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림처럼 퍼져나간다.


이 나무들도 처음부터 이 자리에 서 있었던 건 아니겠지. 작은 씨앗에서 시작해 햇빛과 비를 받아 자라며, 봄과 여름을 지나 이렇게 화려한 가을을 맞이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겨울을 품겠지. 생의 여정 속에서 매년 반복되는 변화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문득 내 삶을 돌아본다. 나 역시 이 나무들처럼 계절을 살아가고 있다. 어떤 순간엔 푸르렀고, 어떤 순간엔 노란빛에 물들었으며, 때로는 떨어지는 낙엽처럼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했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은 내가 있었다는 증거, 내가 지나온 길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제는 가을이 내게 말을 거는 것만 같다." 모 것이 흘러가도, 지금, 이 순간은 이렇게 아름답다"라고.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이 황홀한 순간을 가슴에 담으며, 한 번 더 내 삶을 찬란히 물들여 보겠다고 다짐한다.


가을에 물들어, 나는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의 완전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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