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를 시작하며
비가 내렸다. 토요일 오후, 나는 종로에 있는 조계사를 찾았다. 대웅전과 관음전을 방문할 계획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한국 33 관음성지 인장첩”을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인장첩은 조계사 맞은편 템플스테이 종합정보센터 1층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종로는 늘 북적였다. 차량은 끊임없이 오가고, 여기저기 시위도 자주 열린다. 그래서 오늘은 대중교통을 택했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비는 오락가락했다. 5월의 화창함은 없었지만, 우산을 들고 비 오는 거리를 걷는 건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젖은 거리와 빗소리 속에서, 오늘의 기억은 손에 쥔 인장첩과 함께 마음에 남았다.
내가 하려는 순례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각 성지에서 인장을 찍고 관음전에 들러 작은 소망을 빌 때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볼 것이다. 그동안 짊어졌던 짐을 조금씩 내려놓으며, 내면의 평화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인장첩을 하나씩 채울 때마다, 내 마음도 조금씩 커질 것이다.
33개의 성지를 모두 다 돌고 인장첩을 완성하면, 1년에 세 번 열리는 회향식에서 축하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나는 이번 여정이 온전히 완성되었음을 실감할 것이다.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한 걸음씩 내디딜 생각이다.
오늘, 그 첫걸음을 뗐다. 앞으로 만날 성지들은 나에게 어떤 깨달음과 기쁨을 안겨줄까? 천천히, 한 곳씩, 나는 오늘도 성지로 향하는 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