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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떼제 2주 차, 침묵피정 1일차 "평안하냐?"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8:15 AM_아침기도

침묵피정을 하는 아므니(Ameugny) '벚꽃나무집(Cerisiers)'에서 떼제 성당까지는 걸어서 15 - 20분 정도 걸린다. 기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8시에 숙소에서 출발해야 했다. 이 시간에는 동네의 양과 소들이 이슬을 머금은 신선한 풀을 뜯으러 밖에 나와있는데 이 모습을 한참 구경하다 기도시간에 종종 늦었다.

아침 기도 갈 때 풍경
너무 피곤해서 아침기도는 빠지려고 했는데 저절로 눈이 떠졌다. 좀 늦었지만 뒷자리에서 참여할 수 있었다. "평안하냐?" 마태오복음의 말씀이 마음을 울린다. 흉내내기도 어려운 새소리가 함께 어우러져 기분이 좋아진다. 새삼 씻을 수 있다는 것에, 내 방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다만, 자꾸 엄마 생각이 나고 걱정이 된다. 하루에 하나씩은 걱정거리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는 것 같다. 이런 건 면역력이 안 생기는지 그때마다 놀라고 당황한다. 엄마가 좀 더 오래 나와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 기쁨과 빛 속에 '평안히' 살아갔으면 좋겠다.
4월의 벚꽃나무집(Cerisiers) 전경

아침 기도가 끝나면 다시 이곳 '벚꽃나무집(Cerisiers)'으로 돌아와 식사를 한다. 집 안 테이블에서 먹어도 되고, 방 안에서, 층계에 걸터앉아 식사해도 된다. 또 정원의 테이블에서, 아니면 요가 메트를 들고 정원 끝 풀밭에 앉아 더 넓게 펼쳐지는 초원을 보며 먹어도 상관없다.

침묵피정 첫날의 일용할 양식들

물론 함께 식사해도 되지만 미소면 충분, 수다는 떨지 않는다. 함께 모여 떼제 노래로 식사 전 기도를 하고 자신이 먹을 만큼 그릇에 덜어 넓은 집 곳곳에 흩어져 식사를 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비슷한 음식들인데도 지난주에 먹었던 모든 식사들보다 훨씬 더 맛있고 풍족하게 느껴졌다.


10:15 AM
수녀님과 함께하는 성경공부

아침 먹은 것들을 정리하고 나면 '벚꽃나무집'으로 수녀님이 오신다. 한 시간 정도 성경말씀과 하루의 묵상 거리,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신다. 첫날과 마지막 날을 제외하곤 특별한 나눔을 하지 않는다. 다만 각자의 나라 말로 그날의 성경말씀을 읽고 들었다. 침묵 피정 내내 묵상할 말씀은 루카복음 끝부분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다"부분이었다.


"바로 그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Luke 24.13-18)"

오늘의 주제와 묵상 거리들

예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제자들의 마음을 생각해보자고 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시신도 찾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인생을 걸었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 침통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걷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런 제자들과 함께 걸으시던 예수님은 제자들의 요청에 따라가려던 길을 멈추고 그들과 함께 머물며 빵을 나누신다.


수녀님은 우리의 침묵 주간이 그러한 시간으로의 초대가 아닐지 생각해보자고 하셨다. 얼마나 최선을 다해 애써왔을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을지,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은 무엇일지,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수녀님은 외부의 시끄러운 소음으로부터의 침묵만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올라오는 시끄러운 소리들에도 멈추고 침묵하며 이 시간만큼은 '지금, 여기, 나의 존재'에 집중해보자고 하셨다. 우리 모두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지만 느끼기 어려웠던 것들을 '발견(discover)'해보자고 하셨다.  


"우리 모두는 신으로부터 온 아름다운 생명체잖아요." 그대로 전달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생명체인지 느껴보자'는 수녀님의 반짝이는 눈빛과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말을 하는 수녀님 뒤편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수녀님의 에메랄드빛 눈과 맑은 얼굴을 너무나 아름답게 비추었다.  


오늘의 숙제

1. '지금 여기에 존재함'_오감을 열고 '살아있음을 느껴보기': 1시간 정도 시간을 내어 걸으며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져보면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느껴보자.


2. 기도하기 좋은 '나만의 시간과 장소'를 찾아보기: 각자의 모습대로 아름다운 우리는 각각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자에 딱 맞는 기도시간과 길이, 장소도 모두 다르며, 그건 우리 자신만이 발견할 수 있다.


3. 읽고 싶은 말씀을 정하고 머물러보기: 마음 안팎으로 침묵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신이 우리에게 해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듣고 진정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벚꽃나무집 정원

'각자의 모습으로 아름다운 우리'는 각자에게 맞게 찾아오는 신을 만나기 위해, 정해져 있는 떼제의 아침, 점심, 저녁 기도 시간 대신 '우리 각자의 고유한 기도시간'을 정하길 제안받았다. '살아있음(alive)'을 느껴보자는 제안은 특히나 감사했다.

점심시간, 사과 하나를 물고 정원 끝까지 걸었다. 푹신푹신, 흙과 풀을 밟는 느낌이 너무 좋다. 분명 여러 사람이 헤집고 다녔을 텐데 왜 길이 없을까. 내가 걷는 모든 걸음이 흔적 없는 길을 만들었다. 노랑, 하양, 셀 수 없이 다양한 꽃과 풀과 나무들이 뒤엉켜 뒤죽박죽인 것 같은데도 너무 아름답다.

북적이는 떼제보다는 이곳 마을을 둘러보거나 산책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길 제안받은 우리는 기분 좋은 숙제들을 받아 들고 각자의 시간 속으로 헤어졌다.


| "와서 보아라_Come, and you will see"

아므니 마을의 작은 예배당

나는 떼제에서 오는 길에 보았던 작은 성당을 찾아가기도 하고 그 앞 벤치에서 하염없이 아랫마을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반복되었지만 아직 한창인 노란색 보라색 꽃들이 프랑스의 봄을 말해주었다. 성당 앞에는 여러 무덤들이 있었고 그 안의 아담한 공간 곳곳에서는 세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므니 성당의 성전 안

아주 오래전 언젠가로 시간이 거꾸로 흐른듯한 예배당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가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 몇몇이 구경하다 갔는데 나는 성전 앞 제대의 숨겨진 오른쪽 부분 십자가 아래에서 기도와 묵상을 하곤 했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John 1.37-39)"


오늘의 말씀 중 하나였던 요한복음의 '첫 제자들' 부분이다. '무엇을 찾고 있는지' 묻는 예수의 말에 엉뚱한 소리를 하는 어설픈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다시 '와서 보라(Come & See)'고 하신다.

퇴사를 하고 산티아고를 떠나오기 전 봉사를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뽑았던 말씀이 떠올랐다. '무엇이 더 중요하냐(Matthew 23.19)' 돈이 아닌 무언가를 위해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던 봉사로도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힘들어했던 나를 이곳으로 손수 불러주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십자가 아래서 또 다시 울었다.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Luke 11.1)",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Luke 11.4)"


루카복음의 '주님의 기도'와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 말씀들이 차례로 마음에 와 닿았다. 예수님도 중요한 순간들에는 항상 홀로 기도하셨다는 것. 슬퍼하고 좌절하는 것을 멈추고 어떠한 상황에서든 끝까지 청하고, 찾고, 두드릴 수 있길 기도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꼭 제때에 주실 것임을 믿으면서 말이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Luke 11.13)"

성당에서 나와 떼제와는 반대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17세기에 지어졌다는 'Cormatine 성(城)'을 향해 걸었지만 내 다쳤던 발목이 허락하는 곳까지만 갔다가 멈추어 돌아왔다. 아쉽긴 했지만 '다음에 또 와야 할 이유'로 남겨놓으니 오히려 마음이 간질거렸다.

새로운 아지트

오히려 중간중간 멈추어 자주 쉬면서 크게 호흡하고 바람을 손끝으로, 온몸으로 느꼈다. 풀내음 가득한 공기가 몸안으로 들어오고 몸안의 걱정과 근심을 내뱉었다. 신기한 새소리가 귀를 간질였고 눈을 감아도 햇빛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낮에도 귀뚜라미가 운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따금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도 마음을 울렸다. '지금, 여기에 살아있음'이 마음 깊숙이 느껴졌다. "감사하다"라는 말이 저절로 계속해서 나왔다.

이름 모를 야생 풀꽃들

'이 비현실적인 풍경들에 황당하게도 웃음이 난다. 새소리, 벌레소리, 차 소리, 흙냄새, 바람, 나무, 뻐꾸기. 우리의 삶도 이렇게 현실과 비현실, 자연과 인간이 만든 것, 슬픔과 기쁨, 모든 것이 뒤섞인 아름다운 것일까.'

침묵 피정의 '벚꽃나무집'에 돌아와서

산책하는 내내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곤 했다. 이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 후에는 어김없이 거미나 개미가 등장하거나 벌이 윙윙 거리며 나타났는데, 그러면 순식간에 기쁨과 즐거움은 멀어지고 또다시 여러 가지 두려움에 사로잡혀 마음이 산란해졌다.  


프랑스 떼제에서의 경험들, 특히 침묵 피정의 날들은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엄청난 순간들이었어요. 그때의 메모들과 자료들을 다시 꺼내어 정리하면서 다시 그곳에 가 있는 것 같은 감사한 순간들이 저를 찾아오지만, 제가 느꼈던 걸 그대로 전달하는 것에는 늘 고민과 어려움이 생기네요. 하지만 이런 한계들을 통해서 여러분을 초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위로로 삼아봅니다. 지금 당장 떼제로 떠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따라 해 볼 만한 것들을 선택해서 '지금, 여기, 살아있음'을 함께 느껴보는 것 어떨까요?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순례 기록 <이상한 순례길>, 떼제 '침묵 피정(Silence Week)' 계속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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