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내방 창문 앞의 예쁜 보라색 등나무집을 지날 때면 늘 기분 좋은 향이 났다. 고흐의 그림에서 본 것 같은 예쁜 꽃들, 풀을 뜯으러 나온 양과 소들까지 하나하나 살펴보고 참견하면서 걷다 보면 금방 떼제에 도착했다.
이런 새벽 공기의 맛을 알게 된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꼭 새벽 미사를 다녀야지'하고 결심했다. 여전히 떼제 노래로 시작하는 기도시간은 감사로 넘쳐났고 그날의 나에게 꼭 필요한 말씀들을 발견하곤 했다.
"베드로가 말하였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 걸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다.(Acts 3.6-8)"
매일의 말씀으로 발과 발목, 마음까지 튼튼해지고 있는 나는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면서, 그리고 매 순간 떼제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감사의 찬미를 드렸다.
바람이 심한 날에도 그 안에 피어있는 노란 들꽃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고 언제든 불쑥불쑥 나타나는 '루카스 스파이더'를 만나도 놀라긴 했지만 유난을 떨며 두려워하지는 않게 되었다.
점심 기도 시간에는 종종 빠졌지만 신기하게도 아침과 저녁기도시간에는 꼬박꼬박 참여할 수 있었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소박한 떼제식을 소박하지 않게 먹으며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신 신에게 감사를 드렸다.
아침을 먹고는 늘 그렇듯 수녀님이 찾아오셨다. 하우스키퍼 봉사자인 러시아의 빅토리아는 매일 정원에 나가 신선한 꽃들을 꺾어 테이블을 장식해주었다. 우리는 말대신 표정으로 '아름다움과 감사'를 표하며 성경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침묵 2일 차 주제는 '알려지지 않은 동행(Unknown Companion)'이었다.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Luke 24.15-16)"
'동행(Companion)'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시간을 함께 보내거나 여행을 함께 하는 누군가', 영어, 한국어를 떠나 '같이 걷는 사람'을 말한다. 수녀님은 우리가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함께 걸어온' '신의 흔적들'을 알아채고 찾아보자고 하셨다.
루카복음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Luke 10.29-37)'부터, '되찾은 양의 비유, 되찾은 은전의 비유, 되찾은 아들의 비유(Luke 15)'까지 함께 읽었다. 양 한 마리, 은전 한 닢,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작은 아들까지. "신은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잃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는 수녀님의 확신에 가득 찬 그 말이 마음에 콕 박혔다.
우리는 지난 1년간 우리가 잃었다가 되찾은 것들과 그 안에 함께 했던 'Unknown Companion, 신의 흔적'들을 찾아서 적어보기로 했다. 또 여기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을 글로, 그림으로, 점토로 '표현'해보길 제안받았다. 수녀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모두 예술가'이기 때문이었다.
수녀님은 또 우리가 각자의 기도와 묵상 시간을 잘 찾아가고 있는지 물어보셨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셨다.
V 자신만의 '기도 시작/마침 제스처'를 만들어서 적용해보자
V 성경을 펴고 읽기 전에 신의 뜻을 알아챌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달라'라고 기도해보자
V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미 기도라는 것'도 기억하자
V 기도 중에 떠오른 생각들을 바로 적지 말고 시간이 지난 후 다른 장소에서 정리해보자
성경공부가 끝난 후에는 비가 많이 내려서 점심 기도 대신 숙소에서 오늘 말씀들을 묵상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오랜만에 물감과 붓을 잡고 앉으니 그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비가 어느 정도 그치는 것 같아 밖으로 나와 떼제의 '생 에티엔느 샘(Source St. Etienne)'으로 산책을 갔다. 떼제의 첫날 멘붕인 상태로 다리를 끌며 내려갔던 그 길을 혼자서 걸었다.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침묵의 장소지만 사람들이 비를 피해 부산스럽게 작은 지붕 밑으로 달렸다.
나는 또 작은 일탈을 해보기로 했다. 이곳은 모든 것이 허용되는 떼제니까. 게다가 나는 멋진 순례길용 우비도 있었으니까. 비를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맞으며 천천히 다시 걷기 시작했다. '토도도독 토독' 빗방울들이 우비에 부딪혀 기분 좋은 소리가 났다. 풀향기가 더욱 진해졌고 새소리와 개구리 울음소리도 더욱 커졌다.
숲과 호수의 끝까지 천천히 걸으면서 '지금, 여기에 살아있음을, 존재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점점 굵어진 빗방울은 엄청난 천둥번개까지 몰고 오더니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란 하늘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우산도 우비도 없이 온몸으로 비를 맞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맨발로 빗속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저 사람 왜 저래?!' 하며 쳐다보는 일이 없었다. 각자 저마다의 '지금, 여기'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정원을 탐색하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더욱 선명해진 자연이 마음을 맑게 해 주었다.
정원 끝, 물기를 털어내고 의자에 앉아 지난 1년이 아니라 지난 10여 년간의 흔적들을 더듬어보았다. 수많은 계획들을 세우며 치열하게 살았던 그 시간들 속에서 항상 지치고 힘들어 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아니 넘어졌을 때마다 친구와 선배와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나를 일으켜준 신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내 모든 것을 걸고 미친 듯이 좇았던 '꿈과 돈', 그 어느 것도 내 존재 자체를 정의할 수 없음을, 그 어떤 직업으로도 복잡하고 아름답고 특별하면서 독특한 나를 정의할 수 없음을 알아챘다. 성호경을 긋고 왼쪽 가슴을 톡톡 두 번 치며 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나만의 신호로 묵상을 마무리했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 봉사하면서 마음에 품고 있던 말씀이 함께 떠올랐다.
"나는 그대가 잘못된 길로 빠지거나 옳지 못한 생각을 할 때마다 그대에게 그것을 깨우쳐 주겠습니다."
비가 계속 오면 핑계를 대보려 했지만 너무 예뻐진 하늘 덕분에 저녁기도를 빼먹을 수 없었다. 식사를 하고 좀 여유 있게 떼제로 다시 향했다.
마르코 복음의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시다' 부분 말씀들이 마음으로 들어왔다.
12년이나 하혈하던 여자는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구원을 받겠지'하며 군중 속에서 예수님 옷자락에 손을 뻗는다. 과연 그녀는 몸이 나아짐을 느꼈고 돌아서 사방을 살피는 예수님 앞에 나와 엎드려 두려워 떨며 사실대로 고백한다. 그런 그녀에게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하신다.
이미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회당장에게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하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탈리타 쿰!,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하고 말하자 12살 소녀는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고 성경은 전한다.
밤 10시가 다 되도록 해가 지지 않던 '프랑스 떼제의 4월'을 걸어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내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신의 흔적'이 그 어느 날 보다도 선명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