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하루, 아니 몇 시간도 힘들 것 같던 '침묵(Silence)' 4일차, '안팎으로 고요함'이 마음을 얼마나 평온하게 채워주는지 매 순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 지나고 있었다. 기도하러 떼제에 갈 때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남자아이들 빼고는 방해도 없었다. 대부분 풀과 나무가 바람과 빗방울에 어울려 내는 소리거나 새, 소, 양, 동물들의 울음소리, 성경을 읽고 노래하는 소리들만이 크게 들려왔고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Luke 24,28-29)"
수녀님과의 성경공부, 지난 시간에는 '성경'을 통해 '동행(unknown companion)'을 만났다면 이번 시간에는 좀 다르게 접근해보자고 하셨다. 우리는 영어와 폴란드어, 독일어, 한국어로 루카복음의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다'와 '성찬례를 제정하시다', 요한복음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다'를 함께 읽었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John 13.1)"
자신의 몸과 피까지 기꺼이 내어주는 그분의 사랑,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너무나도 잘 알면서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던 그분의 사랑이 진하게 느껴졌다. 지난 부활절과 그 전의 발 씻김 예식,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발을 닦아주시던 수사님과 내 옆을 지켜준 홍콩 친구가 떠올랐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John 13.14-17)"
수녀님은 오늘도 여러 그림들을 가지고 오셨다. 그중에서도 문밖에서 노크하며 기다리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들어왔다. 수녀님은 '자세히 보면 문에 문고리가 없다는 것'과 '우리가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드려야 하는 것 아닐까'하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Rev 3,20)"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John 10.14-15)"
언제나 기다리는 그분,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분, 언제나 한 걸음 느린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기꺼이 내놓았던 그분의 십자가 사랑. 어쩌면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그분의 손길을 알아챌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인생의 얼마나 많은 순간들 속에 친구를 통해, 자연을 통해, 말씀을 통해 내 마음을 두드리며 기다리고 계시는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Luke 24,30-32)"
수녀님은 오늘의 말씀과 주제를 묵상하고 나서 떼제의 금요일 저녁기도 후 어김없이 이어지는 '십자가 예식'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셨다.
성경공부를 마치고 우선 마당 한편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을 그림에 담아 기억하기로 했다. 초록초록한 나뭇잎에 둘러싸인 오두막을 보면 수녀님이 가져오셨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예수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꼭 오두막 안에 예수님이 살고 계실 것만 같았다. 눈에서는 사라져 보이지 않지만 나와 동행하는 그분이 느껴졌다.
오후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산책을 하면서 기도하고 묵상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 걸어서 갈만한 거리들은 몇 번씩 가본 터라 좀 더 멀리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사실 떼제에 머물면서 언젠가는 '클뤼니(Cluny) 수도원'에 가보려고 했었는데 날씨가 계속 문제였다. 비가 오락가락하고 흐린 날들이 이어지다가 오후 들어 하늘이 유난히 맑아져서 오후 3시가 넘어서 길을 나섰다.
벚꽃나무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클뤼니 수도원의 정류장까지는 20분 정도로 가까운 편이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동네 고양이가 다가와 애교를 부린다. 오랜만의 외출로 떨리던 마음이 기분 좋은 설렘으로 바뀌었다. 떼제로 들어온 지 근 2주 만의 시내 구경, 이제 이틀 밤을 자고 나면 떠나야 하는 날이라는 말이었다.
고양이와 장난을 치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폴란드 아가타였다.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백발이 섞인 긴 생머리에 보라색 외투, 빨간색 캐리어를 끌며 걸어왔다. 아가타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함께 한다고 했었다. 마지막 인사도 못할 뻔했는데 다행이고 감사할 일이었다. 곧 또 만날 것처럼 포옹을 하고 함께 버스를 탔다. 둘 다 눈에 눈물이 고인 채로 씩 서로 웃었다.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듯이.
집에 뭘 남겨놨다는데 아가타는 내 침묵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따로 자리를 잡았다. 금세 내릴 때가 되었다. 떼제로 들어오던 그날처럼 클뤼니 수도원 가까이에서는 말 경기가 한창이었다. 아가타에게 눈인사를 하고 버스에서 내려 사람들이 우르르 가는 쪽으로 우선 따라 걸었다. 작은 분수를 끼고 있는 '클뤼니 노트르담 성당(Eglise Notre-Dame de Cluny)'이 나왔다.
허공에 줄로 연결되어서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십자가가 인상적이었다. 살짝 둘러보고 클뤼니 수도원을 찾아 나섰다. 5시면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 끝나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길이 좀 헷갈렸지만 교회 첨탑처럼 높은 수도원 탑을 따라가니 입구가 나왔다.
'클뤼니 수도원(Abbaye de Cluny)'은 910년에 기욤(Guillaume) 공작에 의해 설립되었다. 중세 서방교회 수도원들은 귀족들의 영향력 아래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곤 했었다고 한다. 기욤은 수도원 설립자가 수도원을 소유하고 운영하던 관례를 깨고 설립자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여 수도자들이 직접 원장을 선출하게 했다. 성 베드로와 성바오로 사도에게 수도원을 봉헌하고 베네딕도 수도 규칙서를 엄수하도록 권고했으며 로마의 교황이 직접 수도원을 책임지고 보호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이러한 '클뤼니 개혁(Cluniac Reform)'의 움직임은 200여 년간 유럽 각지의 수도원들의 개혁을 이끌었다.
수도원에 대한 짧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박물관을 지나서 수도원 곳곳을 돌아볼 수 있었다. 여전히 발굴 중인 곳들이 있었고 보수공사 중인 곳도 많았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담아내고 있는 건축물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 같았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높은 천장과 하늘을 천천히 올려다보며 저마다 탄성을 질렀다.
잔디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둥근 아치와 수도사들의 수많은 방들이 있는 회랑을 지나 넓은 안뜰로 향했다.
넓은 수도원 잔디밭의 오른쪽 끝 건물은 예전에 밀가루나 곡식들을 보관하던 창고로 쓰였다는데 수도원에서 중세 시대의 것 그대로 남아있는 유일한 건축물이라고 한다.
회랑을 지나 다시 입구 쪽으로 발을 옮겼다. 시간이 촉박해 걱정했는데 다 둘러볼 수 있어 감사했다.
그 옛날 클뤼니 수도원이 생기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는데 틈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에서도 세월이 느껴졌다. 프랑스 클뤼니에서 이탈리아 아저씨가 파는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사실 떼제로 돌아가는 버스는 정류장이 어딘지 몰라 걱정했었는데 독일 피오나에게 선물했던 떼제 표식 펜던트와 똑같은 목걸이를 한 독일 가족을 만나 어렵지 않게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벚꽃나무집에 도착하니 거실 책상에 아가타가 남기고 간 작은 손편지가 있었다. 이곳에서의 남은 시간이 더욱 짧게, 그만큼 소중하게 느껴졌다. 저녁기도 시간보다 좀 더 일찍 집을 나섰다. 운 좋게 하루에 두 번씩이나 양 떼를 구경할 수 있었다. 양들을 보고 있자니 오늘 수녀님과 함께 나누었던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John 10.1-2)"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John 10.3-4)"
이제 조금은 '그의 목소리'를 알 것 같다고 생각하며 숙소 주변을 걸었다. 늘 지나다니면서 '저 길의 끝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해하던 곳에 발걸음이 닿았다. 이제야 겁내지 않고 '들어가 볼까?!' 하는 용기가 났다.
바닥부터 하늘까지 초록색으로 뒤덮여있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돌담의 초록 이끼와 우거진 나뭇잎들이 하늘까지 초록색으로 만들어 놓은 곳, 소들이 뛰노는 초원을 지나 벚꽃나무집의 돌담 끝에 있는 작은 텃밭까지도 이어졌다. 떼제를 떠나기 전에 이곳을 볼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고 기도드렸다.
어느새 뉘엿뉘엿 지는 해를 따라 떼제로 저녁기도를 갔다. 지난주처럼 십자가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부활을 앞둔 십자가 예식 때, 내 옆을 지켜주었던 홍콩 친구 리타와 특유의 밝은 미소에 한글까지 포함해 떼제 노래 편지를 전해준 주황 뽀글머리 봉사자, 떼제의 첫날부터 지금까지의 순간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이번 십자가 예식에서는 예수님의 손 부분을 잡고 기도하게 되었다. 못 박힌 손, 피, 십자가 사랑이 느껴져 마음이 뜨거워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떼제의 첫날부터 이 시간까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설명해주시는 그분의 존재가 온전히 느껴져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부족하겠지만 저도 당신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Luke 24,30-32)"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순례 기록 <이상한 순례길> 떼제 '침묵 피정(Silence Week)' 계속 함께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