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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arritz] 비아리츠, 프랑스 최대 휴양지라고?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바욘에서의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친구가 알려준 메일로 루르드에 계시다는 한국인 수녀님께 메일을 보내 놓았는데 연락이 와있었다. 내 상황에 맞는 숙소를 찾아 예약까지 도와주시겠다고 했다.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메신저 아이디도 알려주셨다. 곧바로 바욘에서 루르드로 가는 기차 편을 검색하고 예약했다. 1시간 반 거리로 오전 10시 56분 기차면 충분했다. '내일 어디서 자야 할지' 알 수 있는 날이 또 한 번 시작되고 있었다.


바욘 2일 차 아침 조식 뷰

어제보다는 바욘의 날씨도 훨씬 좋아 보였다. 게다가 어제 봤던 무지개의 여운이 남아있어서 컨디션은 최고였다. 어디든 가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욕이 넘쳤다. 멀리 바욘성당과 셍떼스쁘히 다리가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앉아 아침을 먹고 '오늘은 비아리츠(Biarritz)를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비아리츠(Biarritz)'는 프랑스 3대 휴양지로 불린다. 프랑스 동남부에 니스(Nice), 칸느(Cannes), 생 트로페즈(Saint-Tropez)가 있다면 서남부에서는 비아리츠가 유럽 왕족과 귀족들의 휴양지로 유명하다. 프랑스 최초의 해수욕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버스로 바욘에서 3-40분이면 한 번에 갈 수 있어 생장으로 넘어가기 전 순례자들도 많이 들른다. 공항이 있어 파리에서 비행기로 비아리츠까지 이동해 생장에 가기도 한다.
비아리츠로 출바알~!

바욘과 비아리츠의 중간 마을인 '엉글레(Anglet)'에는 가성비 좋은 스포츠 용품들을 구입할 수 있는 데카트론 매장이 있어서 기내 반입이 어려운 등산스틱이나 침낭, 우의 등은 이곳에서 구입하는 순례자들이 꽤 있다. 나도 등산스틱과 우의를 사기위해 중간에 엉글레를 들르기로 하고 바욘역 앞에서 버스를 탔다. 하루 동안 이 지역의 버스를 마음대로 타고 내릴 수 있는 원데이 티켓은 기사님께 2유로에 현장구입이 가능하다.  


Decathlon Anglet (엉글레 데카트론)

A1버스를 타고 열 정거장 정도를 가니 데카트론뿐 아니라 스포츠 관련 아울렛들이 모여있는 엉글레에 도착했다. 데카트론 매장은 너무 커서 원하는 물건의 위치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괜찮은 스틱과 우의를 겟!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유용하게 잘 썼다. 등산스틱 덕분에 발에 힘이 덜 가서 훨씬 걷기가 수월했다. 팔이 있는 판초형 우의도 흩뿌리는 비가 자주 오락가락하는 프랑스 4월 날씨에 우산보다 훨씬 효율적이었다.  


세상 경치좋은 맥도날드

이제 다시 비아리츠 해안가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정류장 앞에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비주얼로 맥도날드가 보였다. 1층짜리 건물로 아주 컸다. 자동기계에서 주문을 하고 번호표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면 서버가 가져다주었다. 시그니처 세트가 12유로, 우리 돈으로 1만 5천 원 정도였다. 


예능 프로그램 촬영을 하는지 이벤트인지 말 탈을 쓴 사람들이 계속 돌아다녀 정신이 없었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고 있는데 루르드 한국 수녀님께 전화가 왔다. 다친 내 발 때문에 마땅한 숙소 찾는 게 쉽지 않은 눈치였다. 추천해주시려던 숙소는 엘리베이터가 없고 화장실이 1층에만 있는데 1층 방이 다 차서 안 될 것 같다고 하셨다. 다른 숙소 연락처를 알려주시면서 방이 또 없을 수 있으니 빨리 전화해서 알아보라고 하셨다. 


불어와 영어의 중간쯤 되는 언어를 하는 할아버지와 어렵게 통화를 했는데 어쨌든 결론은 다음 주부터 예약을 받기 때문에 내일은 묵을 수 없다고 하셨다. 또다시 걱정과 고민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 하나 잘 곳이 없구나...' 내 마음도 프랑스 날씨처럼 맑았다 비가 내렸다를 반복했다. 


비아리츠 등대 가는 무료 셔틀

그래도 어제의 무지개 효과인지 '아몰랑'하고 우선 비아리츠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여기서도 무한정 구경할 여력은 없으니 높은 곳에 올라가서 전체적으로 한번 보고 비아리츠 성당만 들렀다 근처 해산물 레스토랑을 찾아서 저녁이나 먹고 돌아가자는 즉흥적인 계획이 섰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비아리츠 등대를 비롯한 주요 스폿에는 관광객들과 주민들을 위해 15분 간격으로 무료 셔틀이 다닌다고 해서 작은 마을버스처럼 생긴 전기차로 옮겨 탔다. 셔틀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많이 사는 비버리힐즈처럼 높은 담벼락을 가진 예쁘고 큰 집들을 지나 한참 올라갔다.  


비아리츠 등대(Phare de Biarritz) 전경

비아리츠 등대에 셔틀이 멈춰 섰다. 내리자 마자 느껴지는 쨍한 태양과 파란 하늘, 거친 파도가 오래된 절벽을 치는데 '와...' 하는 감탄사가 계속 나왔다. 

비아리츠 절벽과 해안가
비아리츠 등대
뒤편의 또 다른 뷰

공룡시대부터 있었을 것 같은 기암절벽과 거대한 파도들, 바다만큼 파란 하늘빛과 어울리는 하얀색 등대, 바다와 하늘이 이어지는 수평선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각 나라의 말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버무려져 넋을 놓고 한참을 머물렀다. 모든 걱정과 괴로움이 날아가고 온 세상의 아름다움이 마음속까지 들어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이 장면과 시간을 선물해준 신께 감사드렸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고 꼭 좋은 일 뒤엔 힘든 일이 뒤따라 왔다. 비아리츠에서 석양을 보다 막차가 끊겨서 고생했다는 후기도 봤었고 내일은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하니까 좀 일찍 들어가 쉬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셔틀을 타고 성당을 찾아 해안가 쪽으로 내려갔다. 구글 지도를 보고 짐작으로 내린 정류장이 애매한 위치여서 골목길을 따라 10분 정도를 걸어내려가야 했다. 주차되어있는 차들이 많아서 골목이 더 좁게 느껴졌다. 특히 내리막 길 때문에 발에 통증이 심해져서 한 걸음씩 등산스틱을 의지해 내려가고 있었다. 


비아리츠 노틀담 유지니아 성당(Notre-Dame du Rocher-Eglise Sainte-Eugenie)

그때 한 젊은 남자가 길을 따라 올라오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멈춰 서서 뭐라 뭐라 불어로 이야기하며 혼자서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깁스를 한 내 발을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걸 보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하늘은 또다시 비를 흩뿌리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에서 도망갈 데도 없어 보였고 설령 도망간다 해도 얼마 못가 붙잡힐 것 같았다. 두려움을 넘어 공포까지 느꼈지만 애써 태연한 척 무시하며 앞만 보고 걸었다. 나를 벌레 보듯 보던 그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내 뒤통수에다 대고도 계속 뭐라고 외쳐댔다. 


그 아름답던 비아리츠의 풍경이 한순간 무섭고 두려워졌던 그 순간, 길의 끝에서 성당을 만날 수 있었다. 들어가서 기도라도 하고나면 괜찮아질 것 같아 서둘렀는데 관리인으로 보이는 분이 이제 문 닫을 시간이라고 해서 앉아보지도 못하고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Rocher du Basta
어마어마한 파도와 해수욕장
들어갈 타이밍을 잡고 있는 서퍼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한참을 걸었더니 해수욕장이 나왔다. 여름철에는 파라솔과 수영복입은 피서객들로 가득 찬다는데 지금은 파도를 타러 온 서퍼들과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래도 이쪽으로 오니까 단체관광 온 프랑스 학생들을 비롯해서 사람들이 꽤 많았다. 


런데 아직도 골목길에서의 일이 진정이 안되었는지 해산물이고 뭐고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의기소침해져서 젊은 남자만 봐도 깜짝깜짝 놀라고 겁이 났다. 또 그 발을 해가지고 2만 보가 넘게 걸었더니 아예 발은 감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아직 뱃속에 햄버거도 남아있는 것 같아 서둘러 버스정류장을 찾아 숙소로 돌아왔다. 


결국 이렇게 바욘의 마지막 밤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 바욘의 마지막 밤을 맞았다. 겉옷만 벗고 침대에 뻗어서 루르드에서 묵을 곳을 검색했다. 결국 수녀님이 소개해주셨던 저렴한 숙소들은 예약이 불가능해서 그나마 성지와 가깝다는 호스텔에 우선 1박을 예약하고 다른 곳에 자리가 나면 옮기기로 했다. 


빨아 놓았던 수건과 속옷들도 챙겨서 배낭 안에 정리해 넣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롤러코스터 같았던 오늘 하루가 필름처럼 지나갔다. '아 이제 또 새로운 곳으로 가는구나.' 내일은 또 무슨 일이 펼쳐질지 이 길은 또 어디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전 05화 [Bayonne] 아름다운 바욘과 무지개가 알려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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