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듣자.

by boldhealer


어렸을 때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꽤나 엄하셨다. 정확히는 아버지는 화를 낼 때 매우 엄하셨고, 한번 엄하시고 나서는 곧 풀어지셨다. 반면에 어머니는 매우 엄하셨지만 지속력도 상당해서 며칠을 엄한 상태가 유지되곤 했다. 아버지는 화내실 적이 별로 없었지만, 어머니는 화내시는 경우가 빈도가 잦았다.

부모님 두 분 중 어느 분의 말을 듣지 않아도 결국엔 어머니의 엄하심으로 결론지어졌었다.


누나와 나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고, 우리는 꽤나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크게 말썽 없었고, 부모님의 말을 안 듣는 일이 잘 없었다. 겉으로는 말이다.

나는 말을 잘 안 듣던 사춘기 즈음에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떼를 쓰기보다는 거짓말을 했고, 이 방법이 제법 잘 먹혀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부모님은 알면서도 모른 척해주셨음이 분명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걸 알리가 없었다. 그렇게 나의 사춘기는 지나갔고, 누나와 나의 말 안 듣는 시기도 그렇게 지났다.



부모가 되고서는 자식이 말을 듣지 않는 게 불편하다.


나는 부모가 되었고, 두 딸아이가 있다. 이 두 녀석은 아내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반면 내 말은 상대적으로 잘 들으려 한다. 아내는 가끔 불같이 화를 내곤 하지만 거의 평온한 상태를 유지한다. 반면 나는 나의 어머니를 닮아 아내보다 더 불같은 날이 많다. 분명 변명은 있다. 나는 아이들의 가정교육을 위해 화를 담당했다고.. 내 어머니처럼 말이다.


지금은 첫째가 사춘기에 들어섰고, 둘째는 첫째 언니를 두어서 나이에 비해 남들보다 빠르다. 요즘 세대들의 조금 다른 방식의 말 안 들음이 있고, 그것이 나는 불편하다. 결국엔 화를 내고, 말을 듣는 그뿐인 시기가 지나면 또 말을 안 듣는다.

나도 어렸을 적에 그랬으리라 생각하며 속을 다스리는데, 나의 부모님도 그랬을까?



부모가 되니 나의 부모가 말을 듣지 않는다.


부모님은 자식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보면 거의 그런 것 같다. 내 또래 지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보편적으로 부모가 나이가 들면 함께 나이 든 자식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나의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인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자식이 여럿 있다면 그중에 한 명의 말은 신뢰하고 잘 들으신다는 것이다. 자식이 혼자 일 경우는 조금 다르겠지만, 자식이 둘 이상이라면 그중에 말 잘 듣는 자식은 분명 하나는 있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그 역할이다. 나는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아버지, 어머니와 요령껏 대화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아마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부모님께서는 내 말은 잘 들어주신다.

얼마 전 이러한 내 생각이 다 맞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다.

부모님 두 분이 감기를 앓고 계신다는 소식을 누나로부터 듣게 되었다. 병원 다녀오라는 본인의 말은 듣지 않으니 네가 권해 보라 했다. 그리하여 어머니께 전화드렸고, 고민을 좀 하시더니 이내 병원에 다녀오신다고 하셨다. 아버지도 함께 다녀오시고 두 분 다 진료를 보시라고 말씀드렸다. 다음날 진료 결과를 확인해 볼 겸 전화를 해 보니 아버지는 진료를 안 보셨다는 것이다.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녀오셨음이 분명한데, 병원 앞에서 본인은 진료를 보지 않고 돌아오신 것이다. 기가 막혔다. 어떤 식으로 생각을 해봐도 아버지의 의중을 짐작할 수 없었다. 왜였을까?

부모님에게 나는 아직도 자식이다. 자식 앞에서는 든든한 부모이고 싶고, 강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본인은 괜찮으시다며 병원진료받기를 거부하시는 모습이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병원 앞에서 돌아오셨을 아버지 본인의 합당한 이유를 찾으려면 아마 이것이지 싶다.

이렇게 스스로 결론 내리고 나니, 이것 또한 미래의 내 모습일 것 같아서 가슴 한편이 묵직하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말 잘 듣는 내 부모님과 말 잘 듣는 내 두 딸들을 기대한다. 내일의 내가 어째 됐던 말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과 자녀들이여, 말.좀.잘.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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