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성격이 밝은 둘째가 있다. 공부를 조금 못하지만 사교성이 좋고, 태권도를 좋아하는 그런 밝은 아이다. 그런 둘째가 얼마 전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녔고, 그 결과로 연말 기념 학원 내 연주회를 갖는다 하여 그곳에 다녀왔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나의 어릴 적 모습과 비교하게 된다. 나는 어렸을 때 학원을 참 많이 다녔다. 사실 내 자의에 의한 학원은 아니었다. 늘 어머니가 가라고 하는 학원을 갔고, 그중에는 다니고 싶지 않았던 학원도 더러 있었다. 엄하신 어머니 덕분에 억지로 다닌 학원도 많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보면 내 얕지만 넓은 지식의 범위를 만들어준 계기가 되긴 했지만, 그 나이에서는 그게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하여 나의 사교육의 방침은 이러했다.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배울 수 있게 하고, 관심과 흥미가 없는 배움은 지속하지 않는다.' 이 범주 안에서 아이들은 사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둘째의 피아노 학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첫째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모습을 보고 따라다닌 첫 번째 학원은 자기 딴에는 너무 고되었나 보다. 피아노학원의 학습방법에 대해서 아이의 말을 들어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피아노 학습은 결국엔 반복 연습이다. 선생님은 피아노 악보 한편에 수두룩한 동그라미들로 반복학습의 횟수를 마음껏 그려두고, 학생은 한번 반복할 때마다 하나씩 체크해 가는 그런 방식말이다. 그때의 기억을 새록이 떠오르게 하는 아이의 말속에는 피곤함이 보였고, 그렇게 첫 번째 피아노 학원은 몇 년 전에 중단되었다.
그 후로 3학년이 중간쯤이나 흘렀을 때, 갑자기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싶어 했다. 첫 피아노 학원의 실패로 다시 배우지 않겠다는 다짐을 듣고는 꽤나 괜찮았던 피아노를 처분했다. 다시 피아노를 사주기엔 약간의 모험이 없잖아 있었다고 판단되었고, 그렇게 우선 피아노 학원을 먼저 보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조금 흥미를 갖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예전만은 못하지만 작은 피아노도 하나 마련해 주었고, 열심히 똥땅 거리더니 연주회를 하게 되었노라고 말을 한다. 한 달여 전쯤에 말이다.
첫째는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다. 얼마 전 전시회를 했었고,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둘째는 연주회를 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공부는 성적으로 학원의 값어치를 말하고 있지만, 예체능 학원은 이렇게 학부모의 신뢰를 얻기 위함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것 또한 예나 지금이나 비슷할 터,
그러고 보니 나의 어릴 적 피아노 학원도 연주회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역시 흥미가 없던 나는 피아노를 아주 잘 치는 아이도 아니었고, 다른 친구들에 비해 잘하는 아이도 아니었다. 선생님은 그런 친구들을 모아 합창을 준비하셨다. 그러고 보면 연주가 잘 되지 않는 학생들은 그렇게 대체를 하고, 몇몇 빛나는 학생들에 힘을 주었던 것 같다. 그것이 불만이라기보다, 그렇게 평가되고, 못하는 학생으로 분리되는 걸 모르는 나이는 아니었고, 충분히 창피함을 느끼는 나이었다. 창피했는지 쑥스러웠는지, 부끄러웠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합창을 준비하는 과정도, 발표하던 순간도 그렇게 재밌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때의 분위기나 느낌이 강렬하게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때의 어린 내가 찍힌 사진 한 장이 머리에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그런 느낌의 발표회였다.
둘째에게 물었다.
나. "너는 떨리거나 걱정되거나 하진 않아?"
딸. "태권도 대회 나가는 것보다 하나도 떨리지 않는데?"
나. "그래? 왜?"
딸. "태권도는 등수가 결정되는데, 이건 그런 거도 없고, 솔직히 하나도 안 떨려"
대중 앞에서 뭔가를 홀로 한다는 것은 분명 떨리는 일일 텐데 그걸 이 녀석은 즐기는 것 같다. 태권도 대회 때에도 그런 떨림과 흥분됨이 재밌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래도 걱정인 나는 피아노 연습 중인 둘째 옆에 앉아, 연주회 곡을 한번 처보라 했다.
똥땅 거림이 난이도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잘하더라. 첫 태권도 품새 대회에 안 틀리고 잘할지 걱정되었던 불안감이 대회 당일 하는 모습을 보고 안도감으로 바뀐 것처럼, 연주회도 이 정도면 되었다. 싶었다.
그렇게 아침부터 준비한 피아노 연주회는 스무 명 남짓의 학생들의 발표로 한 시간 정도에 마쳤다. 잘하는 친구도, 아직 초보인 친구도 있었다. 대회가 아닌 '우리 이렇게 공부하고 있어요'를 보여주기에 충분하였으며 그 시간을 함께한 모든 부모, 조부모는 하나의 마음으로 지켜보고 응원하며 그렇게 끝이 났다..
조금 밝은 아이 둘째는 그런 성격으로 오늘의 연주회를 또 하나 마쳤다. 나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기억될 연주회. 그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