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어학연수

내아이의 어학연수

by boldhealer

식사 후 첫째 아이가 아내와 나를 티브이 앞에 모은다. 그러고는 티브이에 핸드폰을 연결하고, 어디에서 구해온 것인지 모르는 손가락 모양의 지시봉을 가지고 와 그 앞에 선다. 그렇게 숨을 고르더니 첫째는 '본인이 왜 어학연수를 가야만 하는가'에 대한 주제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나는 몇 주 전 딸아이가 분주하게 뭔가를 준비하는 것을 보았고, 이미 짐작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사실 이번 어학연수에 대한 상황의 시작은 이미 여름방학 무렵부터였다. 처음에는 영어학원에서 주관하는 뉴질랜드 어학연수 팜플랫을 들고 와 내게 보이며 보내달라 했다. 너무 갑작스럽기도 했고, 아이의 어학연수에 대해 생각을 안 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일렀기에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단칼에 거절했었다.

그 후, 지금, 겨울방학즈음에 시작하는 필리핀 어학연수를 학교 친구와 같이 가겠노라고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각은 이미 여름방학에 한번 불고 간 바람이라 그때부터는 멀리 있던 어학연수에 대한 생각을 조금 앞으로 당겨두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다시 어학연수를 가고자 했을 때 나의 대답은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 말이다. 아내와 이야기를 여러 번 나눠보았고, 결론은 보내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인생에는 큰 변곡점이 반드시 몇 번은 찾아온다. 이번 어학연수가 딸아이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가 있는데 이를 부모가 반대하여 가로막히게 된다면, 아이가 어떤 생각을 갖게 될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려진 결론이었다.

아무튼 딸아이의 프레젠테이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결론을 크게 뒤흔들지 않는 선에서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렇게 두 달 남짓이 흘러 1월이 들어선 지 첫 주말, 드디어 출국일이었다. 출국장을 나서는 아이를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며 보내고 왔다.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마냥 한걱정을 뒤로 한채 말이다.


나는 내 부모에게서 걱정을 많이 하는 유전자를 짙게 이어받았다.

나 나름대로 정신 부여잡으며 잘 준비해 와서 그런지 준비하는 동안에는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 몸무게 보다도 무겁고, 덩치보다도 커다란 짐 들려 보내놓고선 한번 끌어보라고 해 놓고 나니 그제야 한걱정이 늘어섰다. 이것저것 주의사항, 챙겨야 할 것들, 비상상황시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 그리고 이런저런 당부와 걱정 섞인 잔소리들을 매일매일 늘어놓으며 준비했다. 그렇게 출국장을 나설 때까지 그랬나 보다.


조그마한 딸아이, 출국장에 더 조그마해질 때까지 바라보고 나서야 발길을 돌린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말수가 급격히 줄었다는 아내의 말에 복잡함이 가득 차있다는 걸 알았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 이곳저곳에서 솟아났지만 다 눌러두고서 아내와 나눈 이야기가 있다.

"이런 기분은 아마 시집보낼 때에도 비슷한 기분이지 않을까?"

"더 나중에 아이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아내와 내가 둘이 남았을 때 불쑥불쑥 찾아오는 그런 기분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결국 아내와 내가 나중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에 대한 생각까지 뻗고, 그러다 또다시 현실과 이어져 지금을 열심히 살자 하는 다짐으로 향했다. 복잡한 기분이다.

돌아오는 길은 전혀 막히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내내 딸아이가 탄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공항에서 기다렸다 올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그것도 역시 내 걱정을 덜기 위함이 더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생각을 닫았다.

빈집에 돌아와 씻고, 아내와 대화를 몇 마디 나누다가 잠자리에 누웠다. 비행기 스케줄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다가 잠든 것 같다. 새벽녘 도착지에 도착했다는 딸아이의 메신저 소리에 벌떡 깨어 답을 했고, 조금 안심하고 마저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아이는 점심까지 쉬고서야 일정을 시작했고, 현지에서의 첫 사진이 올라온 이튿날 오후 때까지 궁금해서 안달이었다. 피곤해 보이는 표정에 안타깝고, 조금밖에 채우지 않은 식판에 속상하고, 그렇더라. 앞으로 매일 근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사진을 올려줄 테고, 시간이 지나면 걱정도 덜해질 것이다.


출발일을 기다렸던 것과 같이 이제는 돌아오는 날을 일상생활 속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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