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영어캠프를 떠난 지 벌써 5주 차에 접어들었다.
영어캠프는 4주, 7주, 10주 과정으로 구분되어 있다.
10주 과정의 아이들이 가장 먼저 출발하였으며, 4주, 7주 과정의 아이들은 10주 과정아이들보다 3주 늦게 출발하였다. 벌써 4주 과정 아이들은 먼저 귀국하였고, 앞으로 10주, 7주 과정아이들이 함께 귀국하게 된다.
벌써 5주 차에 접어들었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첫째의 시간도 벌써 반이 꺾여있었다.
그동안 남은 가족들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각자의 시간을 나름대로 보내고 있지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둘째의 이야기이고, 둘째로 인한 부부의 이야기이다.
외동딸이 된 둘째.
세상의 모든 둘째 이상의 아이들은 외동이었던 적이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형제의 구분에 따라 조금은 다르겠지만 형제나 자매일 경우에는 특히 그 둘째의 서러움이 더욱 클 것이다. 첫째의 옷에서부터 많은 것을 물려 쓰게 하고, 첫째를 키우면서 경험했던 시행착오들이 걸러진 어쩌면 새로운 시도를 못하게 되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것. 보편적인 둘째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둘째의 설움이라고 말한 데에는 지금 둘째가 하고 있는 놀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한 바탕이다.
그렇다 우리 가족은 그것을 "외동딸 놀이"라고 부르고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들이 부르는 "외동딸 놀이"는 누군가 자매 중 하나가 없고 나머지 세 명이 함께 뭔가를 한다거나 움직일 때를 말한다. 이번에는 조금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첫째의 부재 시간이 길고, 첫째에게 무리해서 해외영어캠프를 보내주었다는 느낌을 온 가족이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 소외감의 보상으로 둘째의 특별한 "외동딸 놀이"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대비해 왔을 것이다.
그것들의 결과로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빠, 호캉스가 가고 싶어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의 일이다. 휴가철에 숙소를 알아보려 하니 일반 펜션이나 호텔이나 가격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숙소 컨디션을 중요시하는 가족들의 여행 스타일로 인해 호텔이나 리조트를 이용하곤 했다. 그것이 이어져 우리 가족은 호텔이나 리조트에서의 휴양을 선호하는 편이다.
사실 우리의 호캉스는 일정한 루틴을 가지고,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숙소에 도착하여 높은 층고에 개방감을 주는 로비에 가족들을 앉혀놓고 체크인을 진행한다.
방 배정을 받고 입실하여 새 침구와 룸 컨디션의 정돈된 깔끔함을 느끼면서 커튼을 열고 큰 통창 밖 뷰를 느낀다.
관리가 잘 된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긴다. 사우나가 있다면 함께 즐긴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인근 편의점에서 간식거리 사서 티브이를 보며 즐긴다.
늦은 잠자리 후, 아침에 일어나 조식 뷔페를 즐긴다.
내가 체크아웃하는 동안 로비에 앉아 분주함을 즐긴다.
정리하고 보니 크게 특별할 것도 없다.
다만 이런 과정들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느끼는 행복의 요소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전체적인 행복도는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둘째의 버킷리스트가 여기에 있었다. 아마 둘째는 호캉스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나 보다.
아빠, 호텔에 가서 수영하고 뷔페 먹고 싶어요
라고 하길래,
그래, 호텔에 가서 수영하고 편의점 쇼핑도 하고 조식 뷔페에서 베이컨이랑 에그스크램블 먹을까?
라고 되물어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대화를 몇 번 더 주고받고는, 주말 호캉스 일정을 잡는다.
이번 호텔 여행은 둘째에게는 언니 없는 오롯한 외동딸로서의 첫 경험일 테고, 예전과 다른 느낌일 것이 분명하다. 아내와 나는 둘째가 없을 때 외동딸을 동반한 경험이 있지만, 이번에는 첫째를 "두고" 둘째로 외동딸 동반할 경험이라 조금 다를 것이라 기대한다.
여행을 마치고 각자의 소감을 꼭 물어봐야 할 일이다.
엄마랑 둘이 자고 싶어요~
두 딸아이는 엄마에 대한 소유욕이 강하다. 딸아이라 그럴까. 나를 찾는 경우는 뭔가 걱정되고 무섭고 두려운 것을 해야 할 때이고, 그밖에 쇼핑몰을 간다던가 동네 수영장을 간다던가 할 때에는 엄마 소유욕이 발동한다.
여기에 나까지 동행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한 녀석은 나에게 배정된다. 이게 아쉬울 일인가 싶지만, 아이들 세계에서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엄마를 양보한다는 느낌일 테고, 해갈되지 않은 소유욕은 손해를 봤다는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일이다. 어른들이 보기엔 사소한 것일 테지만 말이다.
아무튼 우리 집에서는 취침은 아이들 각자의 방에서였고, 안방에서는 우리 부부가 잠을 잔다. 아이들은 누구나 그렇듯이 잠자리에 대한 욕심은 늘 존재하는 것 같다.
엄마와 같이 잠을 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기회들은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이벤트로 생각하는가 보다.
둘째도 언니가 부재중인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셋이 자기에는 좁은 침대여서 출근을 핑계로 나는 잘 때만큼은 둘째와 방을 바꿨다. 물론 첫째가 돌아오기 전까지 한정됨 약속이었다.
둘째는 원래 내 자리였던 곳을 이불과 베개와 각종 인형과 안고 자는 쿠션 등등으로 자기만의 세상을 꾸며놓았다. 한껏 번잡하지만 그것 역시 둘째의 버킷리스트였을 터라 못 본 체하고 있다.
첫째가 출발한 지 4주가 넘었으니, 우리 부부의 각방생활(?)도 4주가 넘어섰다. 평소 잠버릇이 서로 다른 우리 부부여서 같이 잘 때는 불편했지만 따로 잔다고 해서 다 편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얼마 전 설 명절이 길어 둘째를 할머니 집에 며칠 보내고 우리 부부만 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같이 자려니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조금의 어색함이 느껴졌다. 결혼 선배들의 이야기에서 들었던 것 중에 하나였던 것이 무슨 일이 있어도 각방사용은 안된다 했는데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익숙함이나 무뎌짐에서 어색함이나 불편함으로 변하가는 감정은 상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계해야 하는 감정의 변화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찌 되었든 아무 기약 없는 각방생활이 아닌, 끝이 있는 기간한정제이니 그동안은 딸아이의 놀이에 어울려 주는 정도는 감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둘째의 "외동딸 놀이"가 3주도 남지 않았다.
언제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는 놀이에 지금을 충분히 어울려 줘야 하는 것은 우리 부부의 몫이 아닐까?
남은 우리 세 가족은 다시 네 가족의 분주함과 투닥거림을 기다리며, 지금을 보내고 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