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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드저널 Jan 03. 2017

여행을 일상처럼, 제주 체류기

제주 이주민 송성민·윤지숙 부부 이야기 

기준은 각기 다르겠지만 누가 봐도 ‘번듯하게‘ 잘 다니던 연구원 자리를 그만두고, 제주에서 일본식 라멘집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인 송성민·윤지숙 부부. 여섯 살 윤하와 세 살 윤주 그리고 이 집 막내인 반려견 마루 등 다섯 식구는 국내 대표적 관광지를 동네 삼아 소박하고 행복한 일상을 살아간다.


Editor 이은경 Photo 이주연 Film 최소명


2015년 2월, 특별히 아는 사람이나 친인척 하나 없는 제주에 덜렁 네 식구가 입도했다. 여유로운 삶이 가능할 만큼의 자본도 없었고, 가장으로서 당장 생계를 위한 일자리도 구해두지 않았다. 무엇보다 낯선 이방인을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나름대로 제주살이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선 닥치는 대로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했다. 새로 짓는 건물이 많았던 지역의 특수를 이용해 목수 일을 배워 공사장에서 일했고, 겨울철엔 무밭과 마늘밭을 돌며 농사를 도왔다. 주차 요원, 운반업 등 1년 동안 제주에서 해온 일만 해도 ‘홍반장’이 따로 없다.


그러다 제주에 오기 전 서울에서 미리 배워둔 일식을 기반으로 라멘집을 오픈했다. 같은 건물 위층에는 게스트하우스도 운영 중이다. 인사도 잘 받아주지 않던 마을 주민과는 음식을 나누는 사이가 됐고, 서울을 ‘육지’라 부르거나 ‘할망’, ‘할아방’이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부부는 제주 체류자에서 도민이 되어가는 중이다. ‘정착’이라 부르긴 이르지만, 제주에서 1년 반의 시간을 보낸 이들을 통해 관광지에서의 일상, 여행자를 맞이하는 삶을 들여다본다.


https://vimeo.com/185129834


가족을 소개해주세요.
서열에 따라 소개하겠습니다. 1위는 아내 윤지숙. 게스트하우스인 ‘잠비하우스’의 주인장이자, 모든 가족회의의 결정권자예요. 마음 약하고 정이 많지요. 저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7년 동안 일을 쉬다가, 잠비하우스를 통해 새로운 직업을 찾았어요. 2위는 여섯 살 윤하, 3위는 세 살 윤주, 4위는 골든리트리버종인 반려견 마루입니다. 전 서열 꼴찌인 아빠 송성민이고요. 월정리에서 ‘이찌마루’라는 이름의 일본 라멘집을 운영합니다. 사장이라기엔 요리, 서빙, 계산 모두 제 담당이고요. 식구들이 전부 여자라 힘든 일은 모두 도맡아 하고 싶은 ‘머슴’입니다.


이주를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원래는 캐나다와 미국 중 한 곳으로 이민을 가려고 준비했습니다. 이민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많지만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이었어요. 아이들이 좀 더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랐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고 싶었어요. 이민이 모든 고민의 해결책은 아니겠지만 저 또한 새로운 터전에서 새 삶에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제주를 선택한 이유는요?
여러 번 여행을 하면서 기억 속에 남은 제주는 ‘자연’이었어요.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제주로 여행을 온 적이 있는데, 육지의 도심에선 생각지도 못할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이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막연하게 제주에 살고 싶다고 생각만 했는데, 어느 날 이민을 준비하던 아내가 “우리 제주로 가볼까?” 제안을 하더라고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제주에 어떻게 가냐며 부모님께서 심하게 반대하셨어요. 대체 뭐 먹고 살 거냐고요. 가장 결정적 이유는 유치원 때문이었어요. 저희 가족은 천주교 신자예요. 제주의 유일한 사립 유치원이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더라고요. 이곳의 교육 방식이나 인성 교육 등은 물론이고, 유치원 앞 넓은 잔디 놀이터에서 성산 일출봉이 보여요. 이런 자연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었습니다.


금속재료공학 연구원이셨다고요? 직업을 바꾸는 데는 큰 결단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가장의 어깨에는 정말 대단한 무게의 짐이 얹혀 있어요.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직업을 바꿔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 또한 고민으로만 끝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나날이 지속되었죠. 다르게 살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건 집사람의 한마디였습니다. “난 괜찮아. 난 당신 믿어. 힘들면 그만해.” 이 말이 저에겐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이전까지 고민을 워낙 많이 한 터라 제2의 직업을 결정할 땐 비교적 쉬웠던 것 같아요. 요리를 하겠다고 결심하고, 누구보다 낮은 자세로 일을 배웠어요.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은 제가 먼저 했고 이런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몫이 많아지더라고요. 항상 즐겁게 일했어요. 이전까진 항상 긴장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요.



제주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제주 이주민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해요. 제주 이주 1년 미만은 제주 감귤을 사 먹어야 하고, 1년이 지나면 한 봉지를 얻어 먹을 수 있고, 3년이 지나면 1박스를 얻어 먹고, 5년쯤 돼야 집에서 감귤이 사계절 내내 썩어나가도록 먹을 수 있다고. 저희 가족도 아직 정착하는 과정에 있어요. 물론 처음 1년보다는 조금씩 소통이 되는 것을 느끼는 정도입니다. 제주에 적응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어르신들께 예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인사를 잘하자 같은 일상적인 일요. 그런데 이게 참 힘들더라고요. 눈길 한 번 안 주시고, 타박만 받는 것 같을 땐 너무 속상했어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매일 인사를 드려도 잘 받아주지 않으시던 어르신이 어느 날 저희 둘째를 보시더니 ‘조근년’이라고 타박하듯이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아무리 우리가 싫어도, 어린 딸에게 욕을 하다니 좀 화가 나더라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제주에선 첫째 딸은 ‘큰똘’, 나머지 딸들은 ‘조근년’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그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조금씩 관심도 가져주시고, 말도 붙여주시고. 원주민과는 점차 가까워지는 중입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야겠다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솔직한 심정으로 저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귀농 귀촌 교육을 받아봐도 농사를 지어야만 정착할 수 있는 조건에 해당됐고요. 어느 날 아내가 혼잣말로 “난 바본가 봐. 만날 애만 키우다가...”라는 얘기를 하는데,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가정이란 틀에 갇히지 않은 자기 자신만의 일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로 결심했죠. 아이들 엄마가 아닌 ‘윤지숙’이라는 사람을 다시 찾아주고 싶었어요.


“다르게 살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건 집사람의 한마디였습니다. “난 괜찮아. 난 당신 믿어. 힘들면 그만해.” 이 말이 저에겐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요즘 제주에 굉장히 많은 게스트하우스가 생겼어요. 잠비하우스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그동안 여행을 다니며 들른 펜션이나 숙박업소들에서 아늑함을 느끼지 못했어요. 멀리서 오시는 분들이 내 집처럼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살림살이나 소품, 조명에도 신경을 썼어요. 두 개 층으로 나눈 복층 구조라, 다락방에 오르면 어릴 적 여름방학 때 갔던 외할머니 댁을 추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의 생각이나 취지에 가장 잘 맞는 것 같아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여행객들과 만나고 있고요.


게스트였다가 갑자기 호스트가 된 셈인데요, 운영 철학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숙박업소로서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본은 침구의 청결 상태, 객실의 청소 상태, 그릇의 위생 상태 등 깨끗함입니다. 청소는 저희 손으로 직접 한다는 것이 원칙이에요. 둘째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느끼는 정입니다. 잠비하우스를 찾는 손님 중엔 가족 단위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 생일맞이 여행, 제 딸 또래의 아이를 둔 부부 등 다양한 가족과 만나면서, 이분들의 여행에 작은 정성으로 행복감을 드리고 싶습니다. 호스트와 게스트로 만났지만 언제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 제가 숙박업을 하면서 다른 분들과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죠. 여행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바뀌었어요. 새로운 직업에 집중하다 보니 늘 손님들이 불편한 점은 없는지 생각하게 되고, 내가 여행을 다닐 때 뭐가 필요했지? 아쉬웠던 게 뭐지?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솔루션을 찾습니다.



국내 제일 유명한 여행지에서 지내는 일상이 궁금합니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날도 많은 것 같습니다. 여름의 제주는 여느 도시보다 무척 바쁘게 돌아갑니다. 집사람이나 저나 지금은 각자의 일이 있다 보니 열심히 땀 흘리며 여름의 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제주시로 장을 보러 갑니다. 10시까지 라멘집의 식재료를 준비하고요. 이 시간쯤 되면 아내가 첫째 윤하를 유치원에 보내고 윤주와 함께 가게로 옵니다. 아내가 잠비하우스를 청소하는 동안 제가 윤주를 돌보고, 10시 30분부터 손님을 맞이하죠. 가족과 함께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아내는 먼저 집으로 돌아가고 저는 밤 10시30분쯤 가게 문을 닫고 퇴근합니다. 대략 이런 일상의 반복입니다.


너무 일만 하시는 것 같은데요?
휴가철 내내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어요. 그래도 매일 가게에 와서 인형 놀이를 하거나 자전거도 타고, 월정리 앞바다에도 놀러 나가요. 가장 좋은 것은 늘 곁에서 아내와 딸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하루 한 끼는 꼭 온 식구가 함께 먹고 싶어서 점심은 제가 요리해서 가게에서 먹고요. 관광지이다 보니 손님들도 딱히 정해진 식사 시간이 없더라고요. 손님이 없을 때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는 메모를 남기고 아이들과 월정리 앞바다에서 수영을 하다 들어와요. 그렇게 잠깐씩 올여름을 즐겼어요.


가족과 함께 자주 들르는 아지트가 있나요?
저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비자림’입니다. 수백 년 동안 자란 비자나무로 가득한 삼림욕장이에요. 아이들과 비자림 입구에 들어서면 신발을 벗어요. 맨발로 걷다 보면 행복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용눈이 오름을 좋아하고 자주 갑니다. 제 생각에 용눈이 오름에는 표정이 있어요. 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줘 손님들에게도 항상 추천하는 제주 명소입니다. 아이들은 여름 내내 월정리 해변에서 물놀이를 했어요. 가게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죠. 늘 가게 냉장고 위에 튜브 두 개와 모래 놀이 세트가 놓여 있어요.



많은 사람이 제주에서의 삶을 꿈꿉니다. 실제 살아보니, 어떤가요?
우리가 꿈꾸는 제주 생활은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제주도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너무나 많은 변화를 겪고 있어요. 제주 신공항 건설 발표 이후엔 땅값이 전국 최고를 기록하고 있고, 사람들의 인심도 박해진 지 오래라 얘기합니다. 평생 쉬어도 될 만큼 충분한 자본이 있지 않은 이상 철저한 계획과 목표 없이는 정착하기 어려워요. 가게가 있는 월정리만 해도 동네가 들썩여요. 땅값이 치솟아서, 오랜 세월 무료로 집을 빌려 살던 할망들도 쫓겨나는 신세예요.


가족이 살기에 불편한 점이 있다면요?
아이들이 아플 때 갈 수 있는 동네 병원이 없다는 점요. 병원 자체가 잘 없기도 하고, 동네에 있는 작은 병원 대부분은 할망들의 물리치료소예요.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리면 진료받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1시간이나 걸려 큰 병원에 가야 해요.


그래도 이주하길 잘했다고 생각하세요?
네. 아이들을 생각할 때 만족도가 정말 높아요. 윤하는 서울에서 어린이집을 다니는 9개월 내내 적응을 하지 못했어요. 여기에 와선 표정이나 말투 모든 것이 밝아졌죠. 윤하에게 자주 물어봐요. “제주도가 좋아? 서울이 좋아?” 하고요. 항상 제주도가 좋다고 망설임 없이 답해요. 모래 놀이를 많이 할 수 있으니까라는, 아직은 단순한 이유지만요. 윤하가 다니는 유치원은 제주에서 유일하게 몬테소리 교육을 하는 사립 유치원이에요. 비용은 모두 시에서 지원해주지요. 금요일마다 숲에서 수업을 하기 때문에 비자림에 가는데, 요즘은 아빠 엄마보다 식물에 대해 더 잘 알아요. 어느 날엔 주머니에서 도토리 같은 걸 여러 개 꺼내더니, “이건 재밤인데 먹어도 되는 것”이라며 선물로 주더라고요. 초등학교도 방과 후 수업 프로그램이 잘되어 있어요. 제주 유명 관광지나 시설 중 나라에서 운영하는 곳은 도민에게는 무료예요. 자연과 계절의 아름다움을 관찰할 수 있는 오름에도 몸만 가면 되고요. 깨끗한 공기와 아름다운 바다에서 가족과 함께 지낸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생활비는 결코 적게 들진 않지만, 확실한 건 아이들에게 드는 비용이 적어요.


앞으로 어떤 삶을 꿈꾸세요?
아이들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하길 바라요. 공부를 잘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고,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길 바랍니다. 아이들에게 꿈이 있으면 좋겠어요. 우린 꼭 뭐가 되고 싶다 이런 걸 꿈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건 꿈이 아니죠. 꼭 뭐가 돼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저희 부부도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보고 싶지만 당장은 제주 정착이 목표지요. 하지만 여기가 아닌 다른 나라로 이주한다고 해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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