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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드저널 Jan 24. 2017

행복의 대물림

개그맨 이정수 부부 이야기

어린 시절 철저히 ‘바깥사람’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않기 위해 자신은 꼭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고 다짐한 이정수의 하루는 아내에게 줄 커피를 내리고 딸의 입에 밥을 넣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Editor 김태정 Photo 이주연 Film 최소명


인터뷰 중간 이정수는 자신을 옵티미스트라고 했다. 개그맨, MC, 배우, 블로거에 이어 최근 에세이 <결혼해도 좋아>를 통해 작가로 데뷔까지 한 그의 활동상을 봤을때 일단 수긍이 가는 소개였다. 아침 일찍 자신의 집에 들이닥친 촬영팀을 식탁 건너편에 앉혀놓고 그가 처음 꺼낸 이야기는 아내에게 줄 카푸치노에 어떻게 하면 시나몬 가루를 예쁘게 뿌릴 수 있는가였다. 그와 오랜 친구처럼 마주 앉아 고민하다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생각하곤 곧 혼란스러워졌다.

보통 부모에게서 자식에게 대물림되는 것은 끊어내기 어렵다고 한다. 유전인자에 숨어 있어 태어날 때부터 지니게 되는 것에 국한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든 ‘금수저’와 ‘흙수저’ 역시 부의 대물림이 가져온 상대적 박탈감이 만들어낸 단어가 아니던가. 어린 시절 철저히 ‘바깥사람’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않기 위해 자신은 꼭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고 다짐한 이정수의 하루는 아내에게 줄 커피를 내리고 딸의 입에 밥을 넣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이에게 물질적 풍요로움은 물려주지 못해도 심리적 풍요로움은 꼭 물려주고 싶다고 말하는 아빠 이정수는 그의 SNS 팔로어들이 붙여준 사랑꾼, 아내 덕후, 딸바보, 만능 육아 대디, 보급형 훈남(편) 등 모든 애칭 그 자체였다.


https://vimeo.com/196393144


아내가 일을 하는 맞벌이 부부인데, 육아나 가사 분담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그때그때 서로 도와가며 같이 하는 편이에요. 다행히 저희는 둘 다 근무시간이 자유로운 편이라 시간을 잘 조절하면 아이도 케어할 수 있고 짧게나마 여유를 즐길 수 있거든요. 제가 저처럼 맞벌이 부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중요한 건 ‘시간을 만드는 기술’이라는 거예요. 사실 저도 진짜 바빠요. 바쁜데 시간을 쪼개어 블로그에 매일 제 일상을 올리는 이유는 이 이야길 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자, 봐. 오늘은 이랬어. 어제는 이랬어. 근데 나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행복하게 지내. 지낼 수 있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보통 행복을 이야기하는 전문가분들은 “이렇게 하면 행복해집니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어떻게 행복한지 직접 보여주지 않잖아요. 저는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 블로그를 보시면 진짜 시간을 꾸준히 만들어내요. 아이랑 놀 시간을 만들어내고 아내랑 놀 시간을 만들죠. 근데 그게 결혼 생활에 꼭 필요한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학창 시절엔 가족이 어떤 의미였나요?

저는 가족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거든요. 영화 속에서 보이는 완벽한 환상적인 힘의 존재랄까? 그런데 어린 시절 제 가족은 그렇지 않았어요. 가족이라는 존재가 그냥 한집에 숙박하는 사람들 같은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성장하면서는 귀가 공포증처럼 집에 들어가는 게 싫어서 친구들이랑 늦게까지 밖에서 놀고 그랬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집은 이런 곳이 아닌데, 가족이 이런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내가 내 가정, 가족을 꾸렸을 때는 집이란 곳이 굉장히 들어오고 싶은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남들이 놀러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 가정이 되게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책에 보면 아버지를 반면교사로 삼았다고 했어요.
맞아요, 저희 아버지는 성실한 분이셨지만 ‘아버지=바깥일만 하는 사람’의 개념이 강한 분이셨어요. 집안일은 신경 쓰지 않으셨죠. 집안일을 부부가 함께 상의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계획을 짜는 모습이 분명히 필요한데, 그걸 다 외면하셨죠. 자식에게도 유대감을 형성하고 보듬어주는 스타일이 아니셨어요. 가끔 술 한잔 하시면 “내가 말은 없지만 마음은 따듯한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하시는데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표현하지 않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보지 않거든요. 저도 아버지 입장이 돼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일 바쁘면 다 귀찮고 쉬고 싶은 그런 느낌이 들 수 있잖아요. 그래도 내 가족이고 내 아이면 그럼에도 사랑하고 표현해야죠. 시간이 흐르면 다 감당해야 할 일이에요.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경우 나중에 그 자식도 표현하지 않는 사랑으로 보답한단 말이에요. 그건 돌려받게 되어 있어요. 그럼 결국 나이 먹고 외톨이가 되는 거죠. 지금 대한민국의 많은 아버지가 그렇거든요. 은퇴하고 왜 외로워하겠어요. 자식도 내 편이 아니고 아내도 내 편이 아니잖아요. 그걸 막고 싶어서 제가 이렇게 떠들고 있는지도 몰라요.


사춘기는 어떻게 보냈나요?
아마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였던 것 같은데, 크게 반항했다거나 특별할 만한 것도 없었고 사춘기가 짧게 끝났어요. 일곱 살 위 형이 있는데 저를 많이 통제했거든요. 조금이라도 비뚤어지거나 반항의 기미가 보이면 맞았어요. 제가 힘으로 형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사춘기가 빨리 지나갔죠. 형은 되게 바른 사람이었어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효자로 자랐죠. 제가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틀을 잡아준 사람도 형이고 아버지 역할을 일부분 해주기도 했어요.


보통 남자들은 결혼, 첫아이 탄생 시기가 제2의 사춘기라고 부를 만큼 인생의 과도기라고 하더군요.
아이 낳고 나서 과도기가 좀 있지요. 여자는 임신과 동시에 엄마가 되는 과정을 서서히 겪기 시작하는데, 남자는 아이가 태어나면 갑자기 아빠가 되는 기분이거든요. 주변에도 사춘기를 겪는 친구가 많았어요. 거의 대부분 겪는다고 보는데요, 비슷한 상황에 처한 또래들과 고민을 이야기하고 자기 푸념을 늘어놓기도 하죠. 저 역시 아빠 될 준비가 약간 덜 된 상태였고 당황스럽던 시기에 남의 힘든 얘기까지 쌓아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당시엔 친구를 안 만났고, 대신 저희 부모님을 생각한 것 같아요. 부모님은 진짜 평생을 싸우면서 지내셨거든요. 항상 서로가 원수였고 서로가 죽이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그런 분들 밑에서 자식으로 자라다 보니까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이 굉장히 강했는데, ‘내가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방황하면 결국 내 부모의 뒤를 따라가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일 끝나고 집에 바로 안 들어가고 밖에서 5분이라도 시간 때우곤 하던 방황을 2~3일 만에 끝냈어요. 아마 그때가 짧지만 제2의 사춘기였던 것 같은데, 내가 되고 싶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현재 3040 남자분들이 성장할 때 사회에서 가르친 아버지, 즉 가장으로서 역할과 실제로 아버지가 된 이후 역할 사이의 갭이 꽤 커요.
맞아요, 지금 3040 사람들은 아버지 세대 때 바깥사람을 보고 자랐는데, 결혼하고 나니 바깥사람 안사람 개념이 없어졌잖아요. 맞벌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게 아마 30년도 채 안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죠. 여자들 입장에서는 변화된 세계를 좀 더 진보적으로 빨리 받아들이고 ‘당연히 맞벌이니까 이렇게 해줘야지’ 한다면, 남자들 입장에서는 솔직히... 기득권인 거죠. 내 아버지 세대는 이렇게 다 누렸는데 나는 못 누린다고 하니까 충돌이 일어나는 건데, 변화된 걸 빨리 받아들여야죠. 결국 빨리 받아들이고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우리는 어떻게 보면 지금 과도기에 있는 거니까 너무 서둘러서 “지금 바뀌어야 해! 세상이 바뀌었으니까 너도 바뀌어!”라고 다그치지 말고 변화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어요.


평소 일 말고, 인간 이정수에게 할애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말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요?
글쎄요, 저는 지금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인생의 전환점은 결혼이었거든요. 내 취미 활동이 사람들과 노는 거예요. 다들 친구랑 놀고 싶잖아요. 그런데 저는 제일 편하고 좋은 친구가 제 아내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 사람이랑 노는 시간이 가장 즐거워요. 그리고 아이랑 노는 것도 아내랑 노는 것보단 덜 재미있긴 하지만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어요. 제 개인 행복의 광산을 아내와 아이에게서 캐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게 자주 바뀌는 성격이었는데, 결혼한 후에는 가족 안에서 다양한 재미를 찾는 것 같아요.


아이가 품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많은 아빠가 또 한 번 사춘기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해요.
그게 저는 별로 걱정이 안 돼요. 제일 걱정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얼마 전 부부 모임에서 제가 아이와 살갑게 장난치는 모습을 보고 다른 부부가 “야 그래 봤자 이제 다 떠난다, 나중에 사춘기오면 다 떠난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어 괜찮아. 나는 아내가 있으니까”라고 했어요. 저는 딸바보가 아니라 아내바보예요. 제 아내랑 결혼한 게 인생의 전환점이었고, 내 아이를 사랑하는 게 당연하지만,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당연히 제 딸에게 무한 사랑을 주겠지만, 저는 딸보다 아내를 더 사랑해요.
그리고 제 딸도 언젠간 아빠, 엄마의 울타리를 떠나서 한 남자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어요.


책에서 행복을 대물림해주고 싶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리예에게 어떤 아빠가 되고 싶으세요?
저희 집은 아주 못사는 건 아니었지만 그리 넉넉한 편도 아니었어요. 보통 가난이 대물림된다고 하잖아요. 근데 저한테 가난이 대물림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제가 벌면 되니까. 문제는 ‘사랑의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이었어요. 아이는 자라나면서 자신의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과 방식을 보고 습관화한다고 생각해요. 부모 사랑의 가난이 자식에게 유산처럼 남겨진단 말이죠. 전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그 가난을 제 대에서 끝내고 싶었어요. 제 딸은 사랑의 가난을 경험하지 않길 바라요. 영어 몇 점 받는지가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곧 구글이 다 번역해줄 텐데. 앞으로도 기술은 계속 발전할 거고, 결국 사람의 감정에 능통하고 능숙한 사람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이 아이에게 그걸 주고 싶어요. 행복을 대물림해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제가 남겨줄 눈에 보이지 않는 유산을 통해서 아이가 평생 자기 인생을 능동적으로 아름답게 만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 행복을 대물림하고자 노력하는 아버지들의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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