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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드저널 Dec 20. 2016

"저는 용감한 아빠인가요?"

육아 휴직을 선택한 세 아버지 이야기 

2015년 육아휴직을 신청한 용감한 아빠는 4872명이다. 전체 육아휴직자 중 5.6%로, 2011년 2.4%보다 두 배가량 상승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소수자다. 아이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는 부러운 선택이지만 동료들의 눈치와 승진 불이익을 생각하면 ‘넘사벽’의 세계다. 그래서 물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육아휴직을 감행한 아빠들, 그들은 정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


Editor 김경민 lllust 박은현 



1. 두 아이의 아빠, 두 번의 육아휴직

윤기혁 / 은세(9)·세빈(3) 아빠, 회사원, <육아의 온도> 저자 / 39세


“사업할 생각이야?”, “복직한 뒤에는 어쩌려고?”

육아휴직을 신청하니 동료들은 제가 일이 맞지 않아 그만두는 걸로 해석하더군요. 걱정해주는 이들은 “언젠가는 도우미를 구하게 될 텐데 지금부터 알아보는 게 좋지 않아?”, “복직한 다음에 누가 좋게 봐주겠어?” 등의 충고를 해주었고요. 과거에는 저도 그랬어요. 맞벌이인데도 아이가 아프면 나는 당연하게 출근하고 아내가 월차를 내거나 온갖 수를 써서 아이를 돌봤죠. 미안하지도 않았어요. 뭘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큰애가 다섯 살 때 유치원을 옮긴 후 많이 힘들어했어요. 우리 부부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 혼자 남아 있었는데, 아빠를 봐도 반가워하지도 않고 떨어져서 걸어가더군요. 사회의 따가운 눈초리를 감수하고라도 이번에는 제가 아이를 돌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육아휴직을 신청했고 복귀 후 이직을 했는데 둘째가 생겼어요. 지금은 아홉 살, 세 살 두 딸의 육아를 전담하고 있어요. 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육아휴직 월급은 40%, 씀씀이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육아휴직을 하려면 경제적인 부분을 철저하게 계획해야 해요.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은 기본급의 40%만 받아요. 그중 85%만 주고 나머지 15%는 복직하고 받는 형식이죠. 우리는 집은 샀지만 아직 차는 없어요. 아이와 좋은 뮤지컬을 자주 보러 가진 못하지만 집 앞 놀이터에서 함께 자주 놀고, 원하는 학원에 다 보내주진 못해도 아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시행착오도 많이 했죠. 첫 번째 육아휴직 때는 가사와 육아를 아내가 시키는 것만 하고, 마음 한편으로는 항상 복직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온전히 육아를 전담해보니 집안일이 장난 아니에요. “하루 종일 집에서 뭐 해?”라는 질문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지를 깨달았죠. 힘들 때마다 ‘아내도 정말 힘들었겠다’ 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가족에게 “미안해”, “고마워”라고 감정 표현을 더 자주 하게 됐어요.


다시 시간을 돌린대도 선택은 휴직!

한국의 직장 생활을 하는 아빠들은 휴식에 익숙하지 않아요. 사고 자체가 조직 생활에 길들여져 있어서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경쟁에 뒤처지는 것 같죠. 그렇기에 단 한 달, 일주일이라도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온전히 나에게, 가족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중요해요. 첫 번째 육아휴직을 끝내고 회사에 복귀하니 일하는 태도가 달라지더군요. 과거에는 나와 의견이 맞지 않으면 끝까지 설득하려 했는데, 지금은 상대가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내가 가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에 충실해요.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부족하거나 틀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서 배웠거든요. 사회의 시선요? 나에 대한 타인의 관심이 내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 사실을, 두 번의 육아휴직을 통해 배웠어요.



2. 초등학생 아들을 위해 육아휴직을 결심하다

유성기 / 진혁(9)·찬혁(7) 아빠, 회사원 / 48세


지금이 아니면 같이 놀 수 없을 것 같아서

두 아들이 일곱 살, 아홉 살이에요. 딱 이 시기에 아빠와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더군요. 지금 아니면 같이 놀 수 있는 시간이 없겠다 싶어서 2년간 육아휴직을 결심했어요. 먹을 음식을 챙겨주고 학교생활, 어린이집 생활을 일일이 체크하다 보니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떤 걸 느끼는지가 훤히 보여요. 아빠의 잔소리가 늘었다는 단점도 있지만 학교에서, 유치원에서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아빠 엄마가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집에 와서 바로 이야기할 수 있다며 아이들도 좋아해요. 휴직하기 전에는 저에게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말하지 않았거든요. 마음이 보이고,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어요. 둘째 아들은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는 회사 안 가고 집에서 같이 논다”라고 자랑하기도 합니다.


아빠도 주부가 되면 우울하다

휴직하기 전에는 ‘나도 집안일의 30%는 한다’라고 자부했는데 직접 살림을 해보니 3%도 안 하고 있었더라고요. 살림의 세계는 무궁무진해서 전업주부, 아내와 같은 직장맘들을 존경하게 됐어요. 살림이란 것이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대충 하면 티가 나고 꼼꼼히 하자면 정말 힘들거든요. 그러니 부부 중 한 사람이 육아휴직을 할 때 ‘휴직의 목적’을 정확하게 공유하는 것이 중요해요. 단순히 육아만 할 것인지, 살림도 할 것인지, 아이들 교육까지 책임질 것인지에 관해 많이 이야기하고 서로 공감해야 해요. 한계를 분명하게 정해두지 않으면 기대치가 서로 달라서 다투거나 서운함을 느낄 수 있어요. 저는 살림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온라인에서 엄마들과 수다로 풀어요. 체험단에 신청할 때나 기타 모임에서 “육아휴직 중인 아빠”라고 하면 엄마들이 굉장히 호의적으로 대해주고 칭찬도 많이 해주거든요. 그런데 남자들에게 “육아휴직 중이다”라고 말하면 대부분 “휴직 중에 뭐 하세요?”라고 되물어요. 엄마가 육아휴직을 했다고 하면 그렇게 물어보지 않을 텐데 말이죠. 우리나라 육아 제도는 정말 좋은데 사람들이 아직 그 제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요. 아빠도 엄마와 함께 육아를 담당하고 책임져야 할 부모라는 사실을 인식하면 좋겠어요.


육아휴직은 ‘자아 휴직’이다

20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저는 제가 마냥 좋은 아빠인 줄 알았어요. 주양육자가 되고 보니 잔소리도 많이 하고 야단도 치게 되더군요. 그럴 때는 육아 교육 세미나, 부모 교육 등에 참여하면서 단순히 놀아주는 아빠가 아니라 주양육자로서 나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아이를 키우며 얻는 소소한 행복이 있거든요. 올가을에는 두 아들과 캠핑카로 전국 여행을 떠날 겁니다. 학교를 한두 달 쉬더라도 전국의 재미있고 신기한 곳을 구경하고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친척과 지인들도 만나고요. 육아휴직은 저에게는 ‘자아 휴직’이에요. 아이를 알게 되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고 실컷 놀면서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3. 탄력 근무 제도가 가져다준 저녁이 있는 삶

김계원 / 수아(7)·세아(4)·노아(2) 아빠, 물리치료사 / 38세


2시간 빨라진 퇴근,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제가 일하는 병원에서 아빠들 중 탄력 근무 지원자 2명을 선정했어요. 저는 아내와 함께 수원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데, 아침이면 자는 아이를 아는 분께 부탁하고 출근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면 그분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주고 오후에 돌아오는 아이를 맞아주셨죠. 제가 7시가 넘어서 퇴근해서 아이를 데려와 씻기고 재우면 아내가 퇴근해 들어왔어요. 삶이 말이 아니었지요.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평일에는 거의 없었거든요. 둘째가 생기고는 제가 집 근처로 이직을 하고, 서울에 계시던 장모님도 도와주러 오셨는데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죄송하던 차였어요. 지금은 탄력 근무제 덕분에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하고 오후 4시 30분에 퇴근해요. 5시에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데려와 저녁 먹기 전까지 도서관도 가고 수영장도 가고 놀이터도 갑니다. 2시간 일찍 퇴근했을 뿐인데 아이들뿐 아니라 아내, 장모님, 저까지 모두 행복해졌어요. 주변에서 많이 부러워해요.


세 아이 육아의 달인이 되다

아이들 저녁 먹이기, 놀아주기, 재우기까지 제가 전담하고 있어요. 놀아주기는 쉬운데 요리는 아직 어려워요. 온전히 요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 아이를 돌보며 요리를 하려니 정말 어려워요. 대부분 첫째와 둘째를 함께 놀게 하고, 셋째는 거의 업고 요리하는 상황이죠. 또 세 아이와 동시에 놀아주면 꼭 한 명은 토라지기 때문에 일대일로 놀아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건 아빠의 ‘시간’

탄력 근무 제도로 일찍 퇴근한 지 3개월 차에 접어들었어요. 아이들이 쑥쑥 커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놀랍고 감탄해요. 그런데 아이들은 아빠가 열심히 재미있게 놀아줘도 결국은 엄마를 찾더군요. 서운하기보다 오히려 안심이 돼요. ‘잘 놀아줘도 이런데 안 놀아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그래서 아빠들도 육아휴직이든 탄력 근무 제도든 여건만 된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어릴 때 함께 보낸 시간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니까요. 어린 시절 추억 속에 아빠가 늘 존재한다면 아이도 두고두고 행복해하지 않을까요?




* 육아휴직 제도의 보편화를 지지하는 아버지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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