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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드저널 Jan 18. 2017

나는 아직도, 사춘기

현실과 꿈 사이를, 나와 가족 사이를, 남자와 아빠 사이를... 이 어정쩡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아직도 사춘기다.


 권영민 일러스트 김지하 




선택의 무게

나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다. 결혼 후 곧장 대학원에 진학하는 바람에 경제적 자립도 완전히 되지 않은 상태라 아이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단지 학위를 곧 취득해야겠다는 계획 외에는 어떠한 현실적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결혼하고도 한동안 아이를 갖지 않자 주변에서 말이 많았다. 특히 부모님은 우리 부부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자꾸만 보채셨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처지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는 계속 공부 중이었고, 학위에는 진전이 없었으며 내 파트너도 결혼 전부터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결혼 4년 만에 첫아이가 생겼다. 상황이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이제는 하나 정도 낳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결혼하면 누구나 기르는 것이 아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그저 ‘가볍게’ 여겼다.


아이가 있다는 것은 단지 ‘누군가의 아빠’가 된다는 단순한 의미를 훌쩍 뛰어넘는 일이라는 것을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생업에 뛰어들었고, 결국 학위를 완전히 끝마치지 못했다. 공부에 조금 더 재능이 있었다면, 조금 더 부지런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육아휴직처럼 대학원에도 육아 휴학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그냥 휴학하면 되는 일이지만 내가 다닌 대학원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 휴학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성악을 하던 파트너의 경우는 더 큰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태아가 컸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수술로 아이를 낳았는데, 발성을 위해 사용하던 근육의 감각이 수술로 인해 달라져버린 것이다.


아이를 갖기로 한 것도 우리의 선택이었으므로 우리 삶은 우리가 바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출산 전만 하더라도 그 선택의 무게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이를 길러보기 전에는 육아의 무게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도 첫아이를 출산하자마자 부모님뿐 아니라 ‘정말로’ 주변의 모든 사람이 둘째는 언제 가질 것인지 물어왔다. 우리 부부는 둘째 계획이 없었지만, 다른 집 아이들이 동생과 노는 모습을 보노라면 늘 엄마 아빠가 놀아주기만 기다리는 내 아이가 서글퍼 보여 마음이 흔들렸다. 게다가 키워본 경험도 있으니 둘째는 좀 더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어느 정도의 자신감도 있었다. 당연히 부담스러웠지만, 그런 합리화를 통해 우리는 또 아이를 가졌고, 이제 둘째가 태어난 지 백일이 조금 지났다.



이상하게 포기가 안 된다


아빠로서 책임과 내 목표 사이에서, 학위와 돈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포기하려고 한 나와 달리 화가 이중섭은 아마도 아빠로서 책임도 그림도 그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중섭은 일본에 있던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살겠다는 목표로 필사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에 아이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모두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린 작품에는 유독 게가 집게발로 아이의 고추를 집으려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여기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누군가의 말대로 이중섭이 유복자로 태어나 자신의 어머니가 욕망하는 남근(phallus)을 그가 욕망한 흔적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중섭은 일본에서 자신의 부인을 독점하고 있는 두 아들에 대한 일종의 거세 위협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처지에서 보면 이 그림은 이중섭 자신의 ‘거세 불안’이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가족을 돌볼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이 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괴로워했다. 따라서 게의 집게발이 아이의 고추를 집는 모습은 그가 아버지로서 자신의 남근성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나도 그런 것이 두려웠다. 아이를 핑계 삼아 적당히 학위를 내려놓기로 마음먹은 것이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사업체가 부도 난 후에 내가 겪어야만 했던 고초를 내 아이들도 겪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다. 완전히 내려놓게 되지 않는다. 마음먹은 대로 포기가 되지 않는 것이다. 미련이 계속 남는다. 대학원에 발길을 끊은 지 벌써 수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꿈에 나온다. 프로필을 기재할 때도 대학원 재학 중이라고 적고 싶다. 학위를 취득했다는 친구의 소식을 들을 때면 “축하한다”며 건네는 인사 뒤에 내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강렬하게 요동친다. 아직은 이른 나이가 아닐까? 내게도 아직 기회가 있지 않을까? 나는 안일하게 포기해버린 것은 아닐까?

얼마 전에는 좋은 유학 기회가 생겨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두 분은 내게 “두 아이를 보고 어른처럼 행동하라”고 하셨다. 이제는 중학생 때처럼 내 방으로 달려 들어가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을 수도 없는 일이다. 아무것도 달라질 것이 없는데 애먼 문에만 분풀이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춘기가 소년과 남자 사이의 어정쩡한 시기라면, 아빠라는 존재는 남자와 아빠 사이에서, 꿈과 생업 사이의 과도기에서 살아가는 어정쩡한 사람일 것이다. 인생을 살아본 것이 처음이라 떨쳐내야 할 것과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느 하나 분명한 게 없는 것을 보니 인생 전체가 사춘기인 것 같다. 끝나지 않은 어정쩡함을 견디고, 선택하고, 불안해하고, 후회하는 사춘기보다는 코 밑에 난 여드름에 짜증 내던 그때의 사춘기라면 차라리 더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아직 봄이다


벚꽃은 버찌로 변신한 다음에야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수정되기 전 밤 서리를 맞아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여도 벚꽃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며, 그의 일을 다한 것이다.
- 나탈리 크납,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사춘기思春期라는 말에는 ‘봄’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봄은 열매를 맺는 시기가 아니고 열매를 맺기 전 꽃을 피우는 시기다. 열매도, 열매를 맺을지에 대한 확신도 아직 없지만, 열매를 꿈꾸고, 열매를 기다리고, 열매에 대한 희망이 있는 시기가 봄이다. 그래서 사춘기는 ‘봄(春)에 대해 생각하는(思) 시기’, 열매보다는 꽃에 대해 생각하는 시기, 탄생과 희망과 가능성을 담아두는 시기다.


“내 발을 허공에 디딘다. 공기가 나를 받쳐준다.” 시인 힐데 도민이 쓴 것처럼 우리 발밑에
는 공기가 있다는 정도의 확실성밖에는 없다. 매일매일이 불확실한 날들이다. 어른이 되었다지만, 어른이 되면 알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나는 아직 모른다. 나는 아직도 내 미래를 알지 못하고, 나중에 나 자신 혹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도 벚나무라면 버찌보다 벚꽃이 더 아름답다. 과정이 결과보다 더 아름답고, 모든 과정이 끝난 이후보다 때때로 과도기가 더 아름답다. 여드름에 짜증이 나던 때는 행복했던가? 좋아하던 여자아이에게 고백을 못 해 끙끙대며 괴로워하던 밤, 학교에 갇혀 주체할 수 없었던 에너지를 억누르던 나날이 행복했다면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을 귀가 터지도록 높은 볼륨으로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벚꽃일 때는 그때가 벚꽃인지 몰랐던 것이다.


현실과 꿈 사이를, 나와 가족 사이를, 남자와 아빠 사이를... 이 어정쩡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면 나는 ‘아직도 사춘기’다. 이 어정쩡함을 봄의 희망으로 긍정하고 두려움을 견디리라. 버찌가 되지 않더라도, 열매 맺는 것에 실패해도, 학위를 얻지 못해도, 실패하여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더라도 지금 도저히 손에서 꿈을 놓지 못하고 여기에서 저기를 바라보고, 지금 내일을 생각하고, 현실에 발을 딛고 다른 꿈을 꾸는 지금의 내가 바로 ‘벚꽃’이다.



* 글을 쓴 권영민은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하고, 철학을 공부하는 공동체인 ‘철학본색’을 운영하며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숙원하던 음악 공부를 위해 유학길에 오른 아내를 대신해 아들 선재를 키워낸 값진 경험을 육아일기로 기록했다. 그 기록을 엮어 <철학자 아빠의 인문육아>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6년 터울로 태어난 둘째 선율이 덕분에 다시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아이 둘이 함께하는 완전한 삶을 만들어보겠다고 매일 다짐한다.


* 오늘, 지금, 현실에 발을 딛고 치열하게 꿈꾸는 아버지들의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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