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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드저널 Sep 12. 2016

질문을 던지는 아버지 영화

추석 연휴에 영화 한 편 어떠세요? 

아이가 태어나고 저절로 아버지가 되었다. 마땅한 아버지의 역할과 덕목을 누군가 정해주진 않았지만, 그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 

가끔은 자문해본다. 나는 어떤 아버지로 살아갈 것인가? 이 시대 아버지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네 편의 영화를 꼽았다.



1. 아버지의 한마디_<다크나이트> 시리즈


최근작 <배트맨 대 슈퍼맨>으로 조금 스타일을 구기긴 했지만 배트맨은 누가 뭐래도 슈퍼히어로계의 지존이다.

사실 배트맨, 즉 브루스 웨인은 대표적인 아버지의 피조물이다. 적잖은 슈퍼히어로들이 파파보이다. 

슈퍼맨만 해도 외계인 친부와 지구인 양부의 길을 따른다. 아이언맨 역시 어릴적엔 아버지와 불화로 망나니짓만 골라하다가 결국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슈퍼히어로로 거듭난다. 

브루스 웨인은 더하다. 그가 배트맨이 된 것 부터 범죄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때문이다. 그때부터 고담시에서 범죄를 소탕해야한다고 믿게 된다. 아버지가 아꼈던 고담시를 지켜야한다고 느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걸작 <다크나이트> 시리즈에선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기억들이 브루스의 심리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는지가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어릴 적 브루스는 실수로 깊은 구덩이 속으로 추락한다. 그때 브루스를 구하러 구덩이 밑바닥까지 내려오는건 아버지다. 그때 아버지는 브루스한테 이렇게 말한다. 

“바닥으로 떨어져도 괜찮아. 두려워하지마. 올라올 길을 찾으면 되는거야.” 

이 한마디가 평생토록 브루스를 지배한다. 배트맨은 한없이 추락하지만 끊임없이 부상하는 슈퍼히어로인건 아버지의 한마디 덕분이다. 이렇게 아버지의 한 마디가 평생 아들 인생의 나침반이 될 수도 있다. <다크나이트>를 다시 보며 되묻게 된다. 아버지로서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줄 것인가.


- <다크나이트> 속 '아버지의 한마디' 들으러가기 : 

https://player.vimeo.com/video/163658780



바닥으로 떨어져도 괜찮아. 두려워하지마. 올라올 길을 찾으면 되는거야.


2. 아버지의 희생_<빌리 엘리어트>


“우리는 이미 끝났지만 빌리는 아니야. 빌리를 이렇게 끝나게 할 순 없어.” 아버지는 큰 아들을 붙잡고 오열한다. 큰 아들도 아버지의 말뜻을 알아챈다. 막내 빌리는 발레에 재능이 있다. 아버지는 한가지만큼은 안다. 빌리의 그 발레 재능이란게 빌리가 막장 인생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희망이라는 걸 말이다. 

아버지는 빌리를 위해 파업대오에서 이탈한다. 스스로 침을 뱉었던 변절자들 틈에 서서 막장으로 내려간다. 자신의 인생은 이렇게 끝날테지만 자식의 인생은 이렇게 끝나지 않게 해주고 싶어서다. 

<빌리 엘리어트>에서 아버지의 선택이 감동적인 것은 단지 자식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인 아버지는 발레가 무엇인지 모른다. 처음부터 사내녀석이 기집애처럼 깡총거리는 짓거리라며 싫어했다. 아버지는 남자놈은 권투를 배워야한다고 믿는 남자다. 세대적 정서적 문화적으로는 자기 아들이 발레를 한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 아버지란 말이다. 


자신은 이해할 수도 없고 믿지도 않는 가치지만 자식이 믿는다는 이유로 무조건 믿고 응원해주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많은 아버지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자식에게 강요한다. <빌리 엘리어트>의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세계를 포기했다. 

스팅은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처럼 우유배달부로 살아가길 원했던 아버지에 대한 노래를 썼다. 스팅의 아버지는 스팅이 세계적인 팝스타가 되는걸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스팅은 노래한다. “나는 왜 당신을 위해 눈물짓고 있을까요.” 자식의 삶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교차한다.

어쩌면 아버지로서 자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희생은 자식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빌리 엘리어트> 속 '아버지의 오열' 장면 보러가기 : 

https://player.vimeo.com/video/163659468


아버지는 한가지만큼은 안다. 빌리의 그 발레 재능이란게 빌리가 막장 인생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희망이라는 걸 말이다.


3. 아버지의 인생_<국제시장> 


<국제시장>의 아버지 덕수는 대한민국의 전통적 아버지상이다. 한국의 아버지들은 한국전쟁부터 현재까지 온갖 현대사의 굴곡을 관통하며 살아왔다. 

아버지 세대가 경험했던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사독재, 월남전,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국제화와 선진화 시대를 그 시대를 겪지 못한 다음 세대가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다음 시대의 잣대로 이전 시대를 평가한다는 것도 온당치 못한 일이고 말이다. 

<국제시장>은 산업화 세대라고 불리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상업적으로 잘 버무린 드문 영화다. <국제시장>을 보고 아버지 세대를 처음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는 젊은 관객들이 많았다. 반면에 끝까지 <국제시장>을 구시대적인 영화라고 비판했던 젊은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은 젊은 아버지의 입장에서 다시 보면 <국제시장>이 좀 다르게 읽힌다. 아들딸에게 아버지의 인생을 설명해주고 이해받는다는 게 얼마나 난해한 일이지 생각해보게 된다. 

엑소에 미쳐있는 아이 앞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대를 얘기한다면 시대착오적인 아버지로 비춰질게 뻔하다. 이효리에 열광하는 아들 앞에서 “미모로 보나 노래로 보나 패티김이 최고”라고 중얼거렸던 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인생을 자식 앞에서 설명하고 이해받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자식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게 하려면 그만큼 노력이 필요하다. 설교나 훈계로는 부족하다. 재미있어야 하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자신에게 진실해야 하고 자식 앞이라도 겸허해야 한다.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따위로 미화된 이야기를 시작하면 따분해하기 일쑤다. 끝내 이해받지 못하는 아버지로 전락한다. 아버지들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 이야기꾼이 돼야 한다. <국제시장>이 좋은 사례다. 그렇게 아버지로 기억된다. 


- <국제 시장> 속 '이해받고 싶은 아버지' 보러가기 : 

https://player.vimeo.com/video/163661159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따위로 미화된 이야기를 시작하면 따분해하기 일쑤다. 끝내 이해받지 못하는 아버지로 전락한다. 아버지들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 이야기꾼이 돼야 한다. 


4. 아버지의 선택_<4등> 


수영선수 준호는 언제나 4등이다. 준호는 괜찮다. 이기면 좋지만 져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준호 엄마는 다르다. 승부욕이 없는 준호가 답답하다. 금은동메달 바로 아래인 4등에만 머무는 준호를 어떻게든 1등으로 바꿔놓고 싶다. 준호를 수영 코치 광수한테 맡긴다. 광수는 준호 엄마한테 호언장담한다. 

“대회 1등은 물론이고 대학까지 골라가게 해드리겠습니다.” 

정말로 준호의 성적은 일취월장한다. 준호 네는 신이 난다. 파티까지 한다. 그때 준호의 동생인 기호가 한마디 한다. “예전에는 안 맞아서 4등을 했던거야, 형?” 광수는 준호를 때린다. 코치한테 안 맞으려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 준호는 맞기 싫어서 죽도록 헤엄친다. 

사실 준호 엄마도 체벌을 알고 있다. 1등을 원하는 마음에 모른채한다. 사실 광수도 매 맞으면서 수영을 했다. 천재수영선수로 주목 받았지만 맞는게 싫어서 때려쳤다.



<4등>은 이른바 모자 교육 공동 운명체에 대한 이야기다. 교육열이 극성스런 엄마와 희생양이면서 동시에 수혜자인 아이는 새삼스러운 존재도 아니다. 정작 아버지의 눈엔 좀 다르게 비친다. 

“아이의 성적은 어머니의 노력과 아버지의 무관심에 정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아버지가 개입해봐야 자식 교육만 망친다는 얘기다. 엄마의 극성을 못본채 하는게 아빠의 역할이란 말이다. 과연 그럴까. 

<4등>에서 준호 아빠는 준호 엄마와는 전혀 다른 교육관을 갖고 있다. 심지어 그는 수영부의 구타에 관해 취재한 적이 있는 사회부 기자다. 정작 준호 아빠도 준호 엄마와 대립할 뿐 설득하긴 어렵다. 체벌 사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만 준호 엄마는 준호 아빠한테 이렇게 답한다. 

“애가 맞는 것보다 4등하는 게 더 무섭다.” 

부모가 용인한 체벌에 브레이크가 있을 리 없다. 사회부 기자로서는 체벌에 대해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준호 아빠도 자식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어렵다. <4등>은 아버지에게 되묻는다. 모자 교육 공동 운명체에서 아버지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 <4등> 예고편 보러가기 : 

https://www.youtube.com/watch?v=pjPdBRnk8Ik


“아이의 성적은 어머니의 노력과 아버지의 무관심에 정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아버지가 개입해봐야 자식 교육만 망친다는 얘기다. 엄마의 극성을 못본채 하는게 아빠의 역할이란 말이다. 과연 그럴까. 


이 글을 쓴 신기주

<에스콰이어> 기자. 딸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진 못하지만 아이가 살아갈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 아빠의 몫이라 믿는다. <월스트리트저널>, <시사IN>의 칼럼리스트이며, 인문사회 비평서 <우리는 왜>, 정치경제 평론집 <장기보수시대>, 인터뷰집 <생각의 모험>을 썼다. 최근 작으로 글로벌 게임기업 넥슨의 성장기를 기록한 <플레이>를 펴냈다.



* 가족을 위해 질문을 멈추지 않는 아버지들의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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