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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 실천하는 모던 파더 이야기
by 볼드저널 Apr 04. 2018

아빠는 가족의 ‘감독’이 아니다 : 모던파더 최동익


words 김경민 illust 김소희 



문을 열면 어떤 날은 꽃밭, 어떤 날은 전쟁터였다. 나이 오십의 가장 최동익 씨는 집을 팔아 마련한 미니버스에 가족을 태우고 국경을 넘었다. 매일 다른 도시에서 348번의 새 아침을 맞이하며 유라시아 대륙 163개 도시, 25개국을 횡단하고 돌아왔다. 한국인 최초다. 

그는 왜 갑자기 집과 일을 버리고 가족과 여행을 시작했을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이 가족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Q. 가이드가 있거나, 숙소를 예약해둔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그 흔한 내비게이션도 없이 캠핑카를 타고 가족과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10년 전 UN 산하 국제기구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 UN ESCAP에서 ‘아시안하이웨이’라는 신 新 실크로드를 만들었어요. 우리나라와 북한 등 30개국이 가입했고 8개 주요 노선, 14만1714km를 연결했습니다.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를 활용한 AH 1번 도로, 동해안 국도 7호선을 활용한 AH 6번 도로를 이용하면 유럽까지 갈 수 있는 거죠. 아무도 일주한 사람이 없었어요. 

아이들에게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유럽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대한민국이 대륙의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인 울산 간절곶을 출발해 서쪽 끝인 포르투갈의 호카곶 Cabo da Roca에 도달하는 여정을 계획했어요. 여행하며 아시아와 유럽 사람들에게 우리나라가 아시아 대륙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알린 것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길을 모른다고 길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Q. 여행 준비 기간만 2년이 소요됐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준비했나요? 


여행 경비를 1억2000만 원 정도로 예상하고,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전 재산인 아파트를 팔았죠. 저는 20년간 해온 전시 디자이너 일을 접었고, 아이들은 공교육의 궤도에서 잠시 벗어났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살 집이 필요해서 온 가족이 힘을 모아 시골에 작은 집을 지었죠. 그리고 12년 된 25인승 버스를 구입해 ‘무탈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그렇게 2년 동안 줄이고 줄인 세간살이를 ‘무탈이’에 싣고 출발한 거죠. 


Q. ‘무탈이’는 가족의 교통수단이고 숙소이기도 했는데요, 어떻게 개조했나요?


무탈이는 8만km를 주행한 2002년식 ‘기아 파워콤비’이고, 4인승(이동 사무실)으로 구조 변경한 버스였어요. 자동차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이 전기인데요, 우리는 30A 주행 충전기를 이용해 노트북과 카메라, 무시동 히터(시동을 끈 상태에서 실내 공기를 데우는 온풍기) 등을 모두 사용했어요. 특히 난방에서는 이 무시동 히터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1년 이상의 장기 여행을 준비한다면 ‘냉각수 난방 시스템’을 선택하는 것이 좋아요. 


캠핑카의 물탱크 크기도 고민거리였는데 우리는 차에 있던 200L 물탱크 대신 78L 물탱크를 사용했습니다. 그것으로도 충분했지요. 실제로 여행해보니 물탱크 크기보다 물을 차량까지 쉽게 가져올 수 있는 접이식 비닐 용구가 더 유용해요. 또한 개조할 때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과제는 ‘고정’입니다. 우리나라 도로를 생각하며 캠핑카 내부를 개조하면 정말 위험해요. 모든 수납장에 잠금장치가 있지만 물건을 일일이 고무 밴드로 묶고 박스에 넣어 보관해야 안전합니다. 

캠핑카 외부를 꾸미는 것도 고민 사항인데요, 고민한 끝에 태극기와 코리아라는 글자 등으로 무탈이를 꾸몄어요. 실제로 이 외관 덕분에 여러 번 위기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죠. 특히 예상 루트를 표시한 지도는 현지인과 스스럼없이 소통할 수 있는 연결 고리가 되어주었어요. 



Q. 당시 아이들이 중학생, 고등학생이었어요. 한창 공부할 나이인데 학교를 떠나 여행을 시작한 것도 큰 화제였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너희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 줄 아니?”라고 말하는 아빠였어요. 명함에 사장이란 직함을 넣고 싶어서 늦게 집에 들어오고 일찍 나가면서 어쩌다 외식하고 여행을 하며 “우리 가족 다 행복하지?” 하고 물었습니다. 아마 그때도 행복이었겠죠. 

그런데 나이 오십이 되고 보니 ‘정말 내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여행을 떠날 때 아이들이 고3, 고1, 중3이었는데, 아이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니까 그 중심에 가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바라보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로 1년간의 세계 여행을 선택했습니다. 모두 “무모하다”고 했지만, 돌아와서 보니 엄청난 가르침이었다고 생각해요.  



Q.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텐데 아이들은 잘 적응했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지금도 “정말 힘들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있어요. 좁은 숙소와 낯선 음식, 여행 후의 삶이 아니라, 화장실이 가깝고 경치도 좋은 정박지를 떠나는 일이었죠. 다음 정박지가 이보다 못할 것을 뻔히 아는데 떠나기가 정말 쉽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여행은 버리는 일의 연속이고, 버려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그러면서 성장해가는 거죠. 



Q. 모두들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합니다. 최동익 씨도 여행을 떠나기 전 “출발하면 성공, 무사히 돌아온다면 행운”이라고 표현했는데요, 가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더 힘든 적은 없었나요?


절친도 3일이면 헤어진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혼자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학생을 많이 봤어요. 친구하고 같이 왔는데 싸우고 혼자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여행에서는 별것 아닌 일도 어마어마하게 크게 느껴져요. 두려움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별것 아닌 일도 해외에서는 두려움 때문에 더 많이 상처받고 더 버거워요. 친구와는 잠깐 떨어져 지내면 되지만 가족은 그럴 수 있나요? 문 닫고 들어갈 방도 없고요. 역으로 그 모든 시시콜콜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그래서 더 끈끈해질 수 있는 것이 가족 여행이더군요. 꼭 세계 여행이 아니어도 됩니다. 가족만의 끈끈함을 확인하고 아이들이 인생에 맞설 두둑한 맷집을 단련할 수 있다면 북한산도 좋고 놀이동산도 좋은 거죠. 



Q.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아버지 여행자들을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아버지가 있나요?

시베리아에서 2인승 자전거에 아내와 네 살 아이를 태우고 7년 동안 세계 여행을 하는 아버지를 만났어요. 서른다섯 살의 아르헨티나 사람이었는데 아이도 인도 여행 중에 태어났고, 아내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어요. 감탄한 건 여행 내공이 아니라 가족을 대하는 그 아버지의 태도였어요. 저는 ‘나는 온종일 운전했으니 이제 좀 쉬어야 해’라고 생각해 당연하게 저녁 7시부터 잠을 잤어요. 

그런데 그 아버지는 “내 자전거에 타고 온 가족이 피곤할 테니까 가족이 먼저 쉬어야 해” 하며 새벽까지 가족들을 챙기고 맨 마지막에 잠을 청했더군요. 가장 먼저 일어나 다시 여행을 준비했고요. 또 독일에서 만난 한 아버지는“한 달 동안 가족과 여행하기 위해 11개월을 열심히 일한다”고 하더군요. 

아버지들 대부분이 살아가는 목적 자체가 가족이었고, 우리 아버지들이 말로 하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여행하며 만난 모든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저를 돌아보게 한 스승이었죠. 



Q. 가족 간 특히 아이들과의 여행이 주는 선물 중 하나가 대화인데요, 평소와 비교해 대화를 많이 나누었나요?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아이들에게 대화가 아니라 ‘명 命’을 했지요. “내가 넘어져 봐서 아는데 넘어지면 아프니까 너는 넘어지지 마라” 같은 아버지로서의 바람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윗사람의 명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여행에서는 명을 할 수가 없어요. 

여행 초기에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무서워서 저는 매일 술을 마시고 잠들었어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무서운 장소에 있으면 아빠가 가족을 위해 불침번을 서야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무섭지 않은 척하면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고 권위를 세우게 되더군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아빠 무서워. 너희들이 좀 지켜줘”라고 솔직하게 말했어요. 교대로 불침번도 섰죠. 사방 천지 도움 청할 사람이 없는 벌판에서 차가 멈췄을 때도 “아버지는 못 고치겠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더니 순간 아이들 얼굴에 상실감이 짙게 드리워졌어요. 그러다 갑자기 “우리도 아버지를 도와보자”라며 팔을 걷어붙이더라고요. 전문가 3명이 탄생한 겁니다. 그런 사건들을 겪고 이제 아이들에게 명을 하지 않아요. 한 팀이라 생각하고 대화하며 저는 그저 듣습니다. 





Q. 사람들은 긴 여행을 하면 많은 변화를 기대합니다. 실제로 변화가 필요해 여행을 시작하기도 하고요. 여행 후 가족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지요. 아이들은 뒤처진 공부를 하느라 고군분투 중이고 아내는 전업주부로 돌아갔어요. 변화가 있다면 아이들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배려한다는 것입니다. 큰딸(22)은 여행 중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찍은 동영상을 편집하며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고, 큰아들(20)은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1년씩 새로운 직업을 체험한 뒤 자신에게 맞는 직장에 다니거나 공부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막내아들(19)은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여행 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되고 싶은 꿈이 생겨 고등학교로 복귀했습니다. 가족에게 공통적으로 생긴 변화는 여행 후의 혹독한 대가 또한 여행의 일부라 여긴다는 겁니다. 가족 모두에게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Q. 아버지로서 최동익 씨에게도 변화가 있나요? 


여행 후 가장 많이 변한 사람이 아버지로서 저예요. 여행하는 내내 아이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담대함에 감탄했습니다. 이제 아이들을 존중하고 의지합니다. 아버지는 가족의 ‘감독’이 아니라 가족보다 더 많이 뛰는 ‘주전 선수’쯤이면 된다는 사실을 안 거죠. 가족은 아버지의 짐이 아니라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든든한 동료고, 함께 성장하는 한 팀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아이들이 저에게 “명함에 아버지라고 적으세요”라고 말해주더군요. 그래서 기쁘게 ‘직함 : 아버지’라 적힌 명함을 만들었습니다. 


Q. 많은 아버지가 가족 여행을 바라면서도 직장과 아이의 학업 때문에 포기하곤 합니다. 가족 여행을 떠나기에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일까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때’가 여행하기 가장 좋은 때죠. 아버지들이 저에게 가장 많이 질문하는 것이 “여행하고 싶은데 돌아와서 뭐 하지?” 하는 거예요. 대부분 하소연이죠. “아이 때문에 못 떠난다” 하고서는 “돌아오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를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내 직위와 기득권에 대한 실마리가 안 풀리니까 아이 공부며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는 거죠. 또 대부분이 여행을 통해 언어며 스펙 등을 얻으려고만 하지 지불할 생각은 하지 않아요. 여행을 꿈으로만 품고 정작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여행의 대가를 지불하고 싶지 않아서 아닐까요? 



Q. 빼빼가족을 보며 가족 여행을 준비하는 아빠가 많아질 듯합니다. 아빠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행 정보? 루트? 인터넷에 다 있어요. 가족 여행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공감대죠. 오늘부터 하루 10분이라도 아이와 대화하기,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 듣기, 아내와 산책하기 등으로 공감대를 만들어보세요. “은퇴하고 아내와 세계 여행을 떠나겠다”며 일만 하는 아버지를 봤어요. 평생을 소통 없이 살았는데 함께 여행한다고 갑자기 대화할 수 있을까요? 공감대 없이 함께 하는 여행은 지옥입니다. 실패하는 지름길이죠. 언젠가 가족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당장 오늘부터 아내와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세요. 명 命하지 말고 들어보세요. 그러면 용맹한 아이와 현명한 아내가 기쁜 마음으로 아빠와 함께 여행을 떠나줄 겁니다. 





가부장제에 반대하는 아빠,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키고자 하는 아빠, 남의 삶을 기웃대지 않는 아빠, 멋스러움을 아는 '모던 파더'들의 말과 얼굴을 모으는 미디어 <볼드저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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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Lessons for Modern Fathers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키며 창의적으로 삶을 꾸려가는 아버지들의 잡지, 볼드저널입니다. www.bol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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