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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드저널 Sep 28. 2016

너를 위한 단 하나의 장난감

만드는 기쁨을 아는 아빠 이달우의 이야기

오전 10시, 합정동 마음 스튜디오 정문 앞. 골목 끝에서 아이와 나란히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바람을 가르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동그란 안경너머 소년을 닮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한 아빠와 7살 상민이. 둘은 이렇게 자주 함께 다닌다.


Editor 이은경 Photo 이주연 Film 최소명


두 아이의 아빠 이달우는 그래픽을 기반으로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다. 그의 작업에 표식처럼 베어나는 천진난만함 덕분에 아이들을 위한 디자인이 특기가 되었다. 동대문 ‘플레이 스케이프’, 삼성동 ‘라운지 P by 뽀로로’, 영등포 타임스퀘어 ‘딸기 프루츠’···. 이달우표 어린이 디자인은 어딘지 좀 다르다.

이달우에게 상민이는 영감의 원천이자, 앞으로 더 많은 것을 함께 공유해나갈 평생의 친구다. 요즘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빠져있던 스케이트 보드를 드디어 아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단 사실에 그저 신이 난다. 주말 근무가 있는 날은 합정동 주변을, 주중에는 집 근처 홍은동을 배회하곤 한다. 업무 시간을 쪼개 짬짬이 붙어 다니다 보니 상민이는 아빠의 작업 공간의 최초 사용자가 된다.


이들의 관계는 언제나 능동적이다. 한 공간에 있다는 것 외에는 무언가를 함께 할 필요도, 아이가 무엇을 하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다 관심이 생길 때 쓱, 서로의 놀이에 참여하는 식이다. 한 달에 두 번 찾는 인천 공방은 상민이가 영월 할아버지댁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각종 공구와 목재들 사이로 껑충대는 아이가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아빠는 개의치 않는다. 이곳에서 세상 하나뿐인 아빠표 장난감이 완성된다. 잔뜩 부푼 아이의 기대 속에 이런저런 주문을 뚝딱 만들어내는 아빠가 오늘만큼은 최고의 영웅이다.


https://vimeo.com/164196310


아이 장난감을 직접 만드신다면서요?
제가 뭘 하면 상민이가 “아빤 왜 다 잘해?”라고 얘기해요. 사실 집에 신경을 많이 못쓰는 아빠예요. 그래도 아빠의 역할이 있잖아요. 그 몫을 하고 싶어서 쉬는 날이면 일단 무언가를 만들어줬어요. 직업 특성상 다양한 재료를 다룰 수 있고,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기도 하고요. 크게는 아이들 방 가구를 전부 디자인했고, 저희 사무실 일을 의뢰하는 공방에서 나오는 자투리 목재로 나무칼이나 장난감을 만들어줘요. 최근에는 제가 좋아하는 스케이트보드를 함께 타고 싶어서 아이용 보드를 만들었어요. 이렇게 만든 물건에 상민이 그림을 시트지로 출력해서 붙여주면 아주 좋아하죠. 스케이트보드나 헬멧에 장식해 주기도 하고, 아이 그림을 자수 와펜으로 제작해 옷이나 신발에 붙이기도 해요. 어린 상민이 눈에는 아직 아빠가 만능맨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아이들 소개 좀 해주세요.
첫째 상민이는 부끄럼도 많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어요. 마치 얌전히 지내는 올챙이 같았죠. 그런데 5살 무렵부터 완전 개구쟁이 청개구리로 진화하더라고요. 제가 어릴 때부터 남들한테 뭐든 퍼주는 걸 좋아했었는데, 요즘 상민이가 그래요. 저희 부모님께서 상민이를 보면 저 어렸을 때랑 똑같다고 하세요. 둘째 하림이는 이제 막 세 살이 됐어요. 얼굴은 너무 얌전하고 귀엽게 생겼는데 떼가 나면 허리가 뒤로 90도 굽어져요. 낮잠을 10분만 자도 새벽까지 지칠 줄 모르는 파워 퍼프 걸이에요.


어린이 공간을 디자인할 때는 키즈 카페를 동행하기도 하고, 장난감도 직접 만들어주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할 것 같아요.
상민이는 요란스럽게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는 아니에요. 사실 아무렇지 않은 반응이 처음엔 좀 서운했었는데, 지금은 이런 무뚝뚝함이 더 좋은 것 같아요. 괜히 업된 반응을 보여줬다면 그에 부응하고자 저도 뭔가를 더 해 주려다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렀을 것 같기도 해요. 아내가 그러는데 상민이는 제가 없을 때 아빠랑 있었던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해요. 들을 때마다 기분 좋은 얘기죠. 제가 디자인한 공간은 오픈 전에 상민이랑 자주 가서 여러 가지 것들을 점검 하기도 하고, 가족들과 함께 놀러 가기도 해요. 그런데 언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선지 평소에는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가자고 하진 않아요. 아빠로서 느끼는 건, 아이들은 키즈 카페나 놀이공간처럼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별거 아닌 것에서 즐거운 놀이를 찾는 날이 더 많아요.



그럼 평소엔 아이들과 어떤 놀이를 하세요?
주로 산책요. 저희 집이 산꼭대기에 위치해 있어요. 바로 뒤가 산 정상이고요. 상민이가 나뭇가지 줍는 걸 좋아해서 산에 자주 놀러 나가요.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능선을 넘어 지하철역이 있는 도심까지 걷게 돼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하나씩 사 먹고 돌아 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조금만 걷자 했던 것이 이마트까지 가서 장을 보고 온 적도 있어요. 요즘같이 추워서 외출이 어려울 땐 재활용 박스로 무언가를 만들고 놀아요. 자동차, 노트북, 로봇 등 상민이 요청에 따라서 만들 주제를 정하고요. 상민이와 하림이는 그곳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려서 이야기를 더하는 역할을 해요. 최근에는 박스 20개를 모아 대형 로켓도 만들어 줬어요. 장난감을 만들어주다 보니 박스가 보일 때마다 자동차 트렁크에 모아두는 버릇이 생겼어요.


상민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이 그림을 디자인에 접목한 마음드로잉의 상품들도 재미있네요.
상민이가 다섯 살부터 여섯 살 때 그린 그림을 특히 좋아해요. 아이 그림은 아무도 간섭하지 않을 때가 제일 예쁜 것 같아요. 아무래도 클수록 그림체나 표현법이 달라지더라고요. 아이는 금세 크고, 5살의 그림은 다시 그리진 못하니까 그것을 기록해두고 싶었어요. 아이들의 그림은 순수함 이상의 힘이 있어요. 정말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요. 상민이의 그림을 시작으로 아이들의 그림으로 와펜도 만들고, 파우치도 만드는 ‘마음 드로잉’을 운영하게 되었죠. 아이들의 그림을 일상에서 쓰는 물건으로 만들어주니 아이들도 부모들도 아주 좋아해요.


아이가 당신의 디자인에 많은 영감을 주는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아이와 함께한 놀이가 다음 작업에 반영이 되어 나타나요. 정말 별거 아닌 것으로 시작하는데 별거가 되는 거죠. 아이들을 존중할 때, 모든 것이 새로워져요.


한 달에 한두 번은 상민이와 함께 인천에 있는 공방을 찾는다고요? 아이가 이곳을 무척 좋아하네요. 아빠를 따라 제법 흉내도 낼 줄 알고요.
아직은 어려서 모든 과정을 함께 하진 못해요. 상민이가 나무로 칼을 만들어 주는 것을 제일 좋아해 여러 자루 만들어 주고 있어요. 아이가 참여하는 건 제가 나무를 샌딩 하면 자기도 작은 나무 하나 들고 와 흉내 내는 정도죠.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도 많고, 워낙 공구를 좋아해요. 제 나름대로 놀면서 계속 아빠가 뭘 하는지 와서 보는데, 나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 주는 아빠가 그 일을 즐거워하고 있다는 걸 아이도 느끼는 것 같아요.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요.



나무 가루에 기침을 하고, 나무판자 위를 오르고, 위험한 공구 사이를 뛰어다니는 상민이가 다칠까 봐 좀 걱정됐어요. 사실 엄마라면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거나 애초에 이런 곳을 아이와 함께 오진 않을 거 같단 생각도 들고요.
나무를 다루는 공방에서는 당연히 가루가 날리죠. 그게 싫으면 옷으로 코를 감싸거나, 저한테 뭔가의 도움을 청할 거예요. 스케이드보드를 같이 탈 때 아이는 넘어질 수 있다는 위험에 더 많이 노출돼요. 시도하는 무엇인가 때문에 우리는 넘어지고 다칠 수 있어요. 당연한 거고 자연스러운 것이죠. 저는 상민이가 유난스럽지 않는 아이였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게 자랐고요.


키즈카페, 어린이 병원 등 어린이를 위한 공간을 많이 작업했지만 ‘위험한 놀이터’를 만드는 최종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제가 작업하는 공간은 생활안전연구원에서 어린이 놀이 시설로 정해진 규정을 지켜 만들어져요. 아이들에게 안전한지 적합 여부를 따지는 곳이죠. 미끄럼틀에서는 떨어질 수 있으니 주변에 일정 공간을 두어야 하고, 규정 각도도 준수해야 하죠. 사실 이런 것들이 필요하고 중요해요. 그런데 사고라는 것은 그렇지 않은 곳에서도 많이 일어나요. 뛰다가 발을 접질리는 것처럼 실제 대부분의 사고는 부주의에 의해 일어나죠. 아이들은 위험에 대한 인지 능력이 있어요. 어떤 곳에 있으면 어떤 행동을 취하면 스스로 위험한지 아는 거죠. 그래서 더 조심하게 되고 자신의 행동에 더 주위를 기울여 놀게 되죠. 위험한 놀이터란 어른들에게 위험해 보일 만큼 흥미롭고 창의적인 공간에서 아이들 스스로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놀이터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 것 같아요.



아이들 공간을 디자인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장난감이나 집기들은 두지 않아요. 장난감이 있으면 서로 갖겠다고 싸우는 아이들이 많아요.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기엔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실컷 뛰어놀 때는 감정 통제가 더 안돼서 제어가 어려워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곳만큼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고 싶어요. 놀잇감을 제외하는 대신 이 공간에서 모두가 함께 놀 수 있는 콘텐츠에 집중해요.


아이들과의 놀이, 그리고 그러한 공간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고민한 만큼 철학도 남다를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는 동네 놀이터와 골목에서 친구들과 많이 놀았어요. 요즘은 모래 놀이터도 찾아보기 힘들어요. 동물 배설물로 인한 위생 관리와 안전 기준 등을 이유로 점점 탄성 있는 재료로 놀이터 바닥을 마감하죠. 자연적인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요. 주거 환경도 대부분 아파트나 공동주택이다 보니 층간 소음 때문에 집에서 절대 뛰거나 장난칠 수가 없잖아요. 아이들에게도 해방구가 필요해요. 사실 아이들은 어디서든지 잘 놀아요. 장소는 중요하지 않죠.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한 가지를 하고 싶어 하지만, 엄마들은 아이가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길 바라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다양한 놀이 경험을 알려주는 것보다는 함께 참여하고 지켜봐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빠의 삶은 어떤가요?
저는 제 일을 굉장히 좋아하고 즐겁게 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다 보니 총각 때는 일 이외의 것들을 잘 챙기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일 이외의 것들이 채워져서 좋더라고요. 삶이 안정되어가는 기분이고 실제로 그래요.

권위적이라거나 어떤 것을 가르치려고 하기 보다는, 아이와의 관계가 마치 허물없는 친구처럼 보여요.
새로운 곳에 가서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설교를 늘어놓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상민이는 귀신같이 그걸 알고 몸으로 거부하더라고요. 아이와 놀다 보면 제가 더 빠져들 때도 많아요. 레고를 조립하거나 블록놀이를 하거나 심지어 아이 책을 읽어줄 때도 그래요. 그저 각자의 재미를 찾아서 함께 노는 거죠. 좋지 않은 예로는 제가 아이를 데리고 놀러나가면 꼭 한 번씩 상민이를 잊어버려요. 공룡 전시장에서 한참 전시를 관람하다가 갑자기 찾아보니 상민이가 없더라고요. 그때 상민이가 많이 놀랐는지 엄마 없이 아빠랑 둘이 외출하기 싫다고 한 적도 있어요. 제 기준에서는 잠깐 길이 엇갈린 정도였는데.


그러고 보니 아빠와 아들 각자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고요.
저흰 블록놀이를 함께 시작했지만, 상민이는 높이 쌓는 것에, 저는 컬러를 맞추느라 집중하며 각자의 놀이를 하는 식이에요. 상민이랑 2~3시간은 기본으로 놀 수 있는 이유인 것 같아요. 아이에게 맞추는 게 아니라 서로의 놀이법을 자연스럽게 공유한달까요? 한 공간에서 아이는 아이대로 저는 저대로 놀다가 서로의 것이 더 재미있겠다 생각이 들면 제가 상민이에게 붙거나 상민이가 저한테 다시 붙어요. 그건 상민이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스스로 놀이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상민이가 어떤 아이로 성장하길 바라나요?
상민이라는 이름이 서로 상(相)에 온화할 민(旼)이에요. 살아가면서 여러 일들을 겪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텐데 그럴 때마다 이름처럼 모두를 보듬어 가는 친구였으면 좋겠어요. 그러한 것이 이롭게 돼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아이가 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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