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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테크 컨퍼런스 '테크크런치'에서 느낀 인사이트

by uibo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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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UI/UX 레퍼런스 플랫폼 유아이볼을 운영하고 있는 민현경이에요. 서비스를 운영한 지 1년 반이 넘다 보니, 해외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UI/UX 레퍼런스를 탐색하고, 현업 디자이너들은 어떤 툴과 프로세스로 일하는지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테크크런치(TechCrunch) 컨퍼런스에 다녀왔어요.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 망설이기도 했지만, 함께 운영 중인 영어에 능숙한 디자인 인턴과 함께 부딪혀 보기로 했어요. 이번 글에서는 현장에서 체감한 분위기와 배운 점, 그리고 제가 얻은 인사이트를 정리했어요. 저도 오기 전에는 제대로 된 후기나 정보가 없어 막연히 도전했는데, 이 글이 앞으로 테크크런치나 미국 컨퍼런스를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참고가 되면 좋겠어요.



테크크런치 현장에서 느낀 여섯 가지 생생한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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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과 다른, 미국의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식

한국 스타트업이 효율과 구조 중심이라면, 미국에서 본 스타트업들은 “이렇게도 아이디어를 낸다고?” 싶은 제품이 많았어요. 예를 들어, 어떤 팀은 ‘찾고자 하는 사람의 직군이나 경력을 입력하면 인스타그램, X(트위터), 링크드인 계정을 연결해주는 AI 검색’을 만들고 있었고, 또 어떤 팀은 ‘유튜브 링크를 넣으면 영상 내용이 사실인지 자동으로 팩트체크해주는 툴’을 선보였어요. 이런 아이디어는 한국에서는 아직 보기 어려운 형태였는데, 이들의 접근법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문제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태도’에 가까웠어요. 한국에서는 보통 “이 시장의 문제는 무엇인가?”에서 출발하지만, 미국 팀들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불편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했어요. 즉, 해결책보다 ‘문제 발견 능력’에 더 집중하는 문화였어요.


2️⃣ 모두가 외치는 AI

한국에서도 ‘AI’는 익숙한 단어지만, 미국에서는 AI가 선택이 아니라 전제였어요. 테크크런치 현장에서는 AI가 들어가지 않은 제품을 찾는 게 오히려 더 어려웠어요. 거의 모든 팀이 AI를 제품 설계의 중심에 두고 움직이고 있었는데 실리콘밸리의 기업 담당자들과 개발자들은 AI를 정말 다양한 시선으로 이야기했어요. 어떤 사람은 AI를 새로운 비즈니스의 엔진으로 봤고, 또 어떤 사람은 위협이자 불안의 원인으로 받아들였어요. 실제로 몇몇 개발자는 “AI 때문에 우리가 곧 일자리를 잃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만큼 AI는 더 이상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모든 산업의 공통 언어이자 존재 이유처럼 느껴졌어요.


3️⃣ 메인 행사보다 풍성했던 밋업 문화

테크크런치 주간에는 피자와 맥주가 나오는 밋업 이벤트가 정말 많았어요. 티켓 없이도 참여할 수 있는 곳이 많았고, 투자자, 개발자, PM, 학생 등 다양한 직군이 한자리에 섞여 있었어요. 메인 행사보다 밋업이 훨씬 다양해서, 여러 분야의 파운더들과 교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더 좋은 기회였어요.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이 밋업들이 테크크런치 티켓 구매자 전용이 아니라 ‘테크크런치 방문자들을 위한 공개 밋업’이었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막상 현장에 가보면 테크크런치 참가자가 아닌 현지 창업자나 업계인들도 정말 많이 참여하고 있었어요. 단순한 네트워킹 자리를 넘어서, 샌프란시스코 로컬 커뮤니티와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였어요.


4️⃣ 데모 제품에서도 느껴진 확신

행사장에서 본 제품의 상당수는 아직 데모 버전이었어요. 상용화되지 않았고, 화면도 미완성이었죠. 그런데 부스에서 만난 담당자들은 오히려 더 당당하게 제품을 소개하고 있었어요. “완벽해서 나온 게 아니라, 고객 반응을 보기 위해 나왔다”고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일부 제품은 데모 버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바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매력적이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한국에서도 과연 이렇게 미완성된 제품을 자신 있게 공개할 수 있을까? 완벽하지 않아도 시장에 내놓고, 피드백을 성장의 재료로 삼는 태도 — 그게 바로 미국 스타트업들의 가장 큰 힘처럼 느껴졌어요.


5️⃣ 필수로 자리잡은 스몰톡

로비, 세션, 엘리베이터, 커피 기다리는 줄처럼 어디서든 대화가 시작됐어요. “Hi, where are you from?”, “How’s the event so far?”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오갔어요. 처음엔 피곤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짧은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요. 한국에서는 처음 본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게 다소 조심스러운 일로 여겨지지만, 미국에서는 먼저 말을 걸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어색한 일처럼 느껴졌어요. 발표를 기다리며 앉아 있을 때나 점심을 먹으러 줄을 설 때도, 옆자리 사람에게 “What brings you here?”(오늘은 어떤 이유로 오셨어요?)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게 자연스러웠어요. 물론 모든 대화가 깊어지진 않았어요. 몇 번은 짧게 인사만 나누고 끝났고, 어떤 경우엔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 금세 대화가 끊기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이곳의 스몰톡은 관계를 맺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순간을 공유하고 분위기를 만드는 하나의 문화라는 걸 느꼈어요. 테크크런치 같은 글로벌 컨퍼런스에서는 말을 얼마나 잘하느냐보다, 먼저 말을 걸 수 있는 용기가 더 중요했어요. 준비된 피치보다 준비되지 않은 대화가 더 많은 인사이트를 줄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괜찮았어요.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대화를 시도하는 태도 자체가 이미 네트워킹의 시작이라는 점이었어요.


6️⃣ 종이 명함보다 활성화된 링크드인

네트워킹 방식이 한국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한국에서는 아직 종이 명함을 주고받는 문화가 일반적이지만, 이곳에서는 명함을 꺼내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어요.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링크드인(LinkedIn) QR 코드를 바로 열어 보여주며 서로 연결했고, 몇 초 만에 팔로우하거나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자연스러웠어요. 덕분에 네트워킹이 훨씬 빠르고 가벼웠어요.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지도 프로필만 보면 바로 알 수 있었고, 대화가 끝난 뒤에도 관계가 끊기지 않았어요. 그래서 테크크런치에 참가하려는 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종이 명함보다 ‘잘 정리된 링크드인 프로필’과 ‘QR 코드 준비’가 훨씬 중요해요. 현지에서는 명함이 아니라 ‘디지털 존재감’이 신뢰의 첫인상이었어요.



피치 무대에서 배운 다섯 가지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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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과 달랐던 피치 방식

한국에서는 보통 “문제 정의 → 시장 분석(GTM) → 팀 구성” 같은 교과서적인 구조로 발표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미국 무대는 완전히 달랐어요. 발표자들은 “나는 어떤 사람이고, 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가, 그리고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어요. 즉, 사업보다 ‘사람’에서 시작되는 스토리텔링 중심의 피치였어요. 청중도 발표 자료보다 창업자의 스토리와 동기에 더 집중했어요. ‘이 사람이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인가?’를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분위기였죠. 결국 프레젠테이션은 논리의 싸움이 아니라, 태도와 진정성의 싸움이었어요.


2️⃣ 다양했던 영어 억양

미국 테크 업계에는 정말 다양한 국적의 창업자와 개발자들이 있었어요. 인도, 유럽, 중동, 동남아, 남미까지 — 모두 각자의 억양으로 영어를 사용했어요. 처음엔 솔직히 알아듣기 쉽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technology’를 어떤 사람은 ‘떽놀로지’, 또 다른 사람은 ‘떡날러지’처럼 발음했어요. 같은 단어인데 억양과 리듬이 달라서 순간 “이게 무슨 단어였지?” 싶을 때도 있었죠. ‘미국식 영어’ 위주로 공부하고 왔던 저는 그때 깨달았어요. 영어 실력보다 다양한 억양에 익숙해지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걸요. 결국 이 무대에서 중요한 건 발음의 완벽함이 아니라, 메시지가 얼마나 명확하게 전달되는가였어요.


3️⃣ 시간 관리의 철저함

Battlefield 세션에서 발표자가 시간을 조금 넘기자, 모더레이터가 단호하게 “Time’s up”이라고 말하며 바로 발표를 끊었어요. 한국 행사였다면 “한 마디만 더요”가 통했을지도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정해진 시간을 넘기면 예외 없이 바로 종료됐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시간을 지키는 것’이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발표 실력의 일부로 평가된다는 걸 느꼈어요. 짧은 시간 안에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곧 설득력으로 이어졌고, 미국 무대에서는 이 ‘타임 매니지먼트’ 자체가 프로페셔널리즘의 기준처럼 보였어요.


4️⃣ 정말 솔직했던 리액션

발표가 좋으면 청중의 반응이 바로 나왔어요. 큰 박수, 웃음, “That’s great!” 같은 리액션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고, 그 에너지가 공간 전체를 바꿔놓았어요. 청중은 완성도 높은 슬라이드나 화려한 시각 자료보다 전달력과 진정성을 더 중요하게 봤어요. 발표가 진심인지 아닌지는 10초 안에 드러났고, 집중이 끊기면 공기도 바로 달라졌어요. 발표자들은 청중의 리액션을 일종의 피드백처럼 받아들이며 즉석에서 텐션을 조절했고, 그 즉흥적인 흐름이 오히려 무대를 더 생생하게 만들었어요. 이곳에서는 ‘발표’가 아니라, 대화하는 무대라는 느낌이 더 강했어요.


5️⃣ 완벽함보다 진심의 순간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도 무대에서는 모두 긴장했어요. 몇몇 발표자는 말을 더듬거나 준비한 스크립트를 보며 읽기도 했지만, 그걸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오히려 청중은 그런 모습을 보며 더 진심을 느끼고, 박수로 응원했어요. 결국 이 무대에서 중요한 건 유창한 영어가 아니라, 확신을 갖고 말하는 태도였어요. 발음이나 문법보다 자신이 왜 이 일을 하는지, 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에 대한 진심이 훨씬 더 강하게 전달됐어요. 언어보다 마음이, 기술보다 태도가 사람을 움직였고, 그게 무대를 완성시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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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크런치에서 배운 한 가지, 시장 이해의 시작은 사람과의 대화였습니다.

테크크런치 현장에 와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진짜 인사이트는 책이나 데이터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야 생긴다는 거였어요. 한국에서는 트렌드 리포트나 사용자 데이터를 보면 어느 정도 시장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에서는 그 공식이 통하지 않았어요.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고, 그들의 일하는 방식과 가치관을 듣는 과정이 훨씬 더 많은 걸 알려줬어요. 부스를 하나하나 돌며 여러 창업자들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어떤 사람은 AI 기반 SaaS를 만들고 있었고, 또 다른 사람은 로보틱스로 제조 자동화를 시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흥미로웠던 건 대부분의 대화에서 ‘디자인’이 주제로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기술, 투자, 스케일업 전략에는 익숙했지만, 사용자 경험(UX)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어요. 심지어 “UX 리서치 플랫폼”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다는 사람들도 꽤 있었어요.

솔직히 저는 유아이볼 같은 UX 플랫폼이 업계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여러 팀과 대화를 나눠보니, UX 리서치 플랫폼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고, UI 디자이너와 UX 디자이너의 차이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디자인을 단순히 ‘예쁜 화면을 만드는 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고, 리서치 기반 설계나 사용자 중심 사고는 아직 낯선 개념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시장은 ‘설명’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대화’를 통해 이해되는 것을 깨달았어요. 테크크런치에 오기 전에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상대가 어떤 시장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듣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짧은 대화 한 번에도 그 사람이 어떤 문화를 살아가고, 어떤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그대로 드러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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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크런치 현장은 이미 각자의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는 AI, SaaS, 로보틱스 팀들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곳이었어요. 그들은 완벽한 제품보다 방향성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비전을 이야기했어요. “이 시장은 이런 이유로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적인 설득보다, “나는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 싶다”는 확신으로 무대에 서 있었어요. 저보다 몇 걸음 앞서 있는 그들을 보며, 유아이볼이 앞으로 어떤 시장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 그리고 우리의 강점이 무엇인지 훨씬 더 명확히 보였어요. 결국 제가 얻은 가장 큰 배움은 ‘대화의 힘’이었어요. 데이터를 읽는 것도, 트렌드를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시장은 사람들의 언어 속에서 움직인다는 걸요. 시장 이해의 시작점은 숫자나 그래프가 아니라, 사람의 말 한마디였어요.


또한 시장과 사람을 이해하려면,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이제는 그 대화를 더 많은 디자이너, 더 많은 팀, 그리고 더 많은 사용자와 이어가고 싶어요. 유아이볼이 그 대화의 장이 된다면, 그게 이번 여정에서 제가 얻은 가장 큰 의미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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