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참 거창하다. 제주도에 집 하나쯤 장만해 두고 매번 제주도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람으로 오해할 소지가 다분한 다소 자극적인 제목이지만, 현실은 좀 더 저렴하고 깨끗한 숙소를 찾아 인터넷 바다를 헤매고 다닌다는 사실. 방학 기간 동안 2주 정도의 시간을 보내는 제주의 숙소를 아이들은 '제주도 우리 집'이라고 부르기에 제목을 그리 지어보았다.
제주에서 휴식과 여행을 겸한 일상을 보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숙소를 정하는 일이다. 여름에는 1일 1바다 1카페, 겨울에는 1일 1체험을 하는 것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숙소와 숙소가 있는 마을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처음 아이들과의 제주여행을 떠날 때에는 무조건 호텔만을 고집했다. 눈 뜨면 일어나 호텔에서 제공되는 조식을 먹고 호텔에서 수영하고 산책하며 고급진 휴가를 보내는 것으로 휴식을 대신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면서 '가성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좁은 호텔방안에 갇혀 지내는 걸 힘들어하니 투덜대는 아이들을 어디든 데리고 나가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이럴 거면 호텔이 무슨 소용이냐. 단칸방이라도 아이들이 나가 놀 수 있는 마당이 있고 동네를 산책할 수 있는 작은 마을이 있는 숙소가 낫겠다 싶었다.
사실 말이 좋아 독채펜션이지 우리가 대부분 머문 곳은 작은 부엌, 거실, 침실 1개가 있는 작은 민박집이었다.
감성이나 호텔과 같은 청결함 등은 포기하고 아이들이 나가서 놀 수 있는 작은 마당이 있냐를 가장 큰 선택 기준에 두고 성수기 기준으로 1박에 평균 15만 원 정도로 예산을 잡고 숙소를 찾는다.
우리가 머물렀던 '제주도 우리 집'들 중 좋았던 곳 몇 군데 소개해본다.
(길게는 6년 전 숙소이기에 지금과는 가격과 시설이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봐주시길)
# 레아펜션(협재)
첫째가 4살일 때 우리 가족이 처음 방문했던 독채펜션이었다.(6년 전) 협재해수욕장 근처라 여러 맛집과 편의시설들이 많이 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협재, 금능 등 동쪽바다로 나가기도 쉬운 위치이다. 무엇보다 이 숙소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잔디가 깔린 작은 앞마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잔디밭에 있는 작은 모래사장에서 놀기도 하고 잔디에 연결된 수돗가에서 물총놀이도 하고 대야에 물을 받아 놀기도 했다. 이런 진정한 쉼이 있는 여행을 이 숙소에서 처음 느꼈다. 아침이면 부엌 쪽 창밖으로 "여기는 제주도야!"라고 느끼게 해주는 돌담으로 둘러싸인 앞마당을 보며 느긋이 아이와 아침을 먹을 수 있다. 오후가 되면 발코니 벤치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잔디밭에서 뛰노는 아이를 바라보며 엄마도 쉴 수 있는 곳. 아이를 위한 목욕용품, 아기의자, 아이가 가지고 놀 만한 장난감도 적게 나마 준비되어 있는 키즈프랜들리 펜션이다.
# 불란지스테이(한경면)
제주 날씨는 물론 매섭게 춥기도 하지만 햇빛이 좋은 어떤 날은 봄처럼 따뜻하기에 겨울에도 앞마당이 있는 숙소를 포기할 수 없다. 아이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넓은 잔디밭에서 공놀이도 하고 둘이서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나는 따뜻한 온돌방에서 창문 너머로 앞마당에서 아이들이 잘 노는지 바라보며 책도 읽고 여유롭게 쉴 수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충분히 넓은 마당과 어린이용 방방, 여름에는 물놀이를 위한 미니 풀장도 설치된다고 하니 제주도 관광이 아닌 휴식을 위해 찾는 가족들에게 아주 강추하는 숙소이다. 비슷한 콘셉트의 다른 펜션보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조용한 마을 안에 위치한 곳이기에 걸어갈만한 식당이나 카페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끼리 느긋하게 마을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산책하기에는 참 좋았다.
# 탐탐 56(세화)
비수기에는 1박에 10만 원으로 예약할 수 있는 가성비 훌륭한 세화의 작은 민박집이다. 발코니 앞에는 아주 작은 앞마당이 있지만 뛰어놀기에는 부적합하고, 테이블에 앉아 제주느낌이 물씬 드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곳이다. 사장님께서 펜션과 사진관을 함께 운영하시는데, 사진관 앞으로 너른 잔디밭이 있어서 손님들이 없을 때에는 이곳에서 놀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숙소가 마음에 쏙 드는 이유는 민박집이 있던 마을 때문이었다. 낮은 돌담으로 죽 이어지는 마을의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한적한 카페도 들어가 아이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아이들이 있어서 걸어가기엔 조금 무리지만, 버거킹, 스타벅스, 다이소 등 도시화되고 있는 중심지로 나가면 온갖 맛집들이 그득해서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번잡하지 않고 사람이 거의 없는 조용하고 평온한 제주의 시골스러움과 도시에서 누리던 편리함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2주간의 제주도 우리 집.
지금부터 소개할 두 곳은 '제주도 우리 집'이라는 제목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숙소이기에 추천해 본다. 조용한 시골집에서 뛰어노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에게는 수영장, 놀이시설이 있는 숙소가 또 다른 재미를 주기에 짧은 일정으로 머물곤 한다.
# 토스카나호텔
우리 아들은 물놀이를 심하게 좋아한다. 여름엔 당연히 1일 1바다를 하며 매일 물놀이를 하며 지내지만 겨울에는 불가능해서 물놀이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겨울에도 물놀이를 외치는 아들을 위해 찾은 호텔. 아들의 소원을 풀어주고자 2주의 일정 중 단 3일만 호텔을 예약했다.
겨울에도 뜨끈뜨끈한 온수풀을 운영해서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언제든 물놀이가 가능하고, 유아용 미끄럼틀도 있어 당시 3살이던 딸은 무한반복해서 재미있게 놀았다. 그리고 야간 수영장 이용고객에게는 어묵탕과 군고구마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있는데 이 또한 꿀맛! 우리는 오랜만에 호텔에서 3일 동안 수영하고 밥 먹고를 무한반복하며 제대로 호캉스를 누렸다. 1박에 20만 원 후반대 패키지로 예약하면 4인 조식포함 호캉스를 누릴 수 있어 가성비가 아주 뛰어난 편.(2년 전이니 참고하세요) 하지만 여전히 나는 호텔보다는 작은 마을 안에 자리한 민박집 같은 느낌의 숙소가 더 좋아서 2년 전 토스카나 호텔이 마지막 호캉스가 되었다.
# 흰수염고래리조트 (애월읍)
아빠 없이 여행을 가다 보니 수영장에서의 물놀이는 신경이 많이 쓰인다. 아이들 안전에 신경을 쓴다고는 하지만 둘을 동시에 봐주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둘의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정말 곤란하다. 하나는 물놀이를 계속하고 싶어 하고, 하나는 나가고 싶어 하는 경우.(우리는 두 녀석 터울차가 많은 편이라 특히 이럴 때가 많다.) 흰수염고래리조트는 1층 객실 발코니가 바로 수영장으로 연결되어 있어 발코니에 앉아 수영하는 아이를 바라볼 수 있다. 둘째가 낮잠을 자거나, 둘째가 물놀이를 안 한다고 할 때 수영하는 첫째를 방에서 편안하게 지켜볼 수 있다는 아주 큰 장점이 있는 숙소였다. 미취학아동이 즐길만한 놀이터와 방방, 여러 장난감들이 비치되어 있어 아이 동반 가족에게는 더없이 좋을 것 같은 숙소이다. 6월 평일에 10만 원 이하의 가격으로 아주 가성비 있게 머물렀던 숙소이기에 추천하지만 시설이나 룸상태는 다소 오래되었다 것을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