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이 뭐길래
코로나가 영향을 끼친 데가 한두 곳이 아니라지요.
청첩장 파는 장사꾼도 매일 아침 덤덤하게 보던 수치들을 이젠 덤덤히 볼 수가 없어 씁쓸한 날들이다.
재택근무하며 출근도장을 회사에 찍는 대신 웨딩카페에 찍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걱정이에요, 결혼식 미룹니다, 위약금 얼마나 내고 취소하셨어요?, 신행은 갈 수 있을까요.
고작 몇 자의 문자로 작성된 제목이지만 저 글을 적어가면서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눈물 흘렸을 생각 하니 남 일인데도 꽤 마음이 쓰리다.
사연은 다양하다.
친정 부모님은 결혼식 강행, 시부모님은 결혼식 미루기를 고집 중이라 머리가 아프다. 부터 신혼여행 비용만 몇백인데 그 중에 위약금이 절반 이상이고, 그냥 올 분들은 와주겠거니 강한 멘탈로 강행한다, 예식장이 위약금을 내도 예식일 변경을 못해준단다, 소비자 보호법을 찾아본 내용까지 아무튼 모든 삶이 그렇듯 결혼과 관련된 내용들도 다양하고 다채롭다.
청첩장 회사 직원으로서 찾아보는 글들은 역시 '청첩장 다시 찍어야 할까요?'
결혼 준비의 여러 과정 중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사항이라 그런지 예식장이나 신혼여행에 비해 많이 회자되지는 않지만 비용보다는 대개 이미 초대해둔 손님들에게 내용을 번복해야 하는 것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식일을 미룬 게 오히려 괜찮은 케이스인지, 그냥 강행하겠다 결정한 신랑신부에게 무식하다 무례하다 몹쓸 말 하는 손님들도 있다고 하고(개인적으로 이런 친분이라면 그냥 안 오는 게 도움이겠다 싶더라만..) 청첩장을 다시 찍으려 해도 미뤄질 날짜조차 정해지지 않은 분들도 많아 보이니 글을 읽기만 해도 내 골치가 다 아프고 속이 썩어가는 느낌.
실제로 주문 내역들을 보니 4월 예식 고객들이 모두 주문을 넣어두고 초안 디자인까지 확정했지만 결제를 안 하고 있다. 인생은 아이러니라더니 이 회사 직원(aka 장사꾼) 입장에서도 속이 쓰리고 이제 막 결혼 준비 시작한 나름 예신으로서 보자니 그것 또한 마음이 쓰리다.
당장 결혼을 할지 말지 의사결정은 물론이거니와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여부조차 모르는 고객들에게 무조건 사세요 쿠폰 줍니다 할 수도 없는 노릇.
실제로 코로나 사태가 커지면서 서비스팀은 재인쇄 어렵나요, 예식일만 다시 붙이게 택 제공이라도 안 될까요 하는 서로가 안타까운 문의가 밀려오고 있다.
연일 제자리걸음하는 매출에 윗선에서는 여러 번 긴급 회의가 열렸고, 반 쯤은 회사의 이미지와 고객 입장에서, 또 반 쯤은 의도치 않게 떠나는 고객 한 번 더 뒤돌아보게끔 하기 위해 추가주문 할인 결정이 났다.
회사 입장에서는 나름 큰 결정이었다. 이미 청첩장을 주문해 받아보았으나 코로나 이슈로 예식일이 미뤄진 고객들에게는 예식일 변경 후 재인쇄 건에 한해 50% 할인 적용을 해주고, 기타 혜택에 대한 쿠폰 재발급 등 어느 정도는 손해를 감안한 결정.
회사의 오너는 아니어도 두 해가 넘도록 장사를 해온 MD 입장에서도 과감해 보였으나,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너무 다행이라는 글들, 아직 청첩장 준비 전인데 꼭 이 업체에서 하겠다는 댓글, 안도하는 글들에 달린 눈물의 향연들을 보니 제법 뿌듯한 느낌도 든다. (나 애사심 큰가봐 어떡해)
나름 며칠 간 짱구 굴리며 결정 내린 사항인데 경쟁사에서 냉큼 똑같은 내용으로 공지 올리는 걸 보니 약은 오른다만 어쨌든 '예신예랑'들 속 썩이는 일들에 조금이나마 근심걱정 덜어줬다 생각하며 위로중.
올해 안에 결혼하자는 약속으로 예식장 보러 다니려다가 코로나 때문에 발목 묶인 개인적 사정 때문에 꽤 몰입이 되었던 것도 같고.
아무튼 이 정도 사태에 이런저런 사연들을 듣다 보니 또 궁극적으로 결혼식이 뭐길래, 하는 회의감이 드는 건 투 머치 생각인가.
'우리 두 사람 하나가 되어 잘 살자' 보다는 '우리 두 사람 하나가 되어 잘 살겠으니 보아라'라는 메시지가 우위가 되는 느낌이라. 인생에 단 하루 뿐인 날 모두의 축하 아래 팔짱 끼고 행진하며 꽃가루 받는 그림을 물론 나도 원하고 있지만, 그게 아니면 의미가 없어지는 게 결혼이라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하고 그렇다.
일단 다 모르겠고 코로나 때문에 이래저래 짜증나 죽겠으니까 제발 바이러스 좀 꺼져줬으면 좋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