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두 번째 비행기 탑승에 대한 기록
이번 대만 여행을 가기 전까지 나의 비행기에 대한 경험은 총 1번이다. 30년 전 신혼여행으로 제주도를 갈 때 처음으로 국내선 비행기를 타봤다. 대한항공을 기억된다. 흐릿하게 기억은 것은 30분 정도 되는 짧은 비행시간이었지만 약간의 멀미를 했던 것 정도다. 이 정도면 이번 여행에서 비행기를 처음 타본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살면서 집 주변을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나의 부모님은 넉넉지 않은 형편 때문에 먹고사는 게 바쁘셔서 나들이도 별로 선호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특히 엄마의 상점은 365일 문 닫는 일이 없었다. 생활력이 강했던 엄마는 하루라도 매상을 포기하고 어디 놀러 간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유년 시절, 청소년 시절, 결혼 전 시절에서 2박 3일 정도의 여행을 꼽으라면 학창 시절의 수학여행. 대학 시절의 졸업여행이 다다.
그래서일까... 결혼하고 나서도 먼 곳으로 여행을 다니거나 하지는 않았다. 신혼여행도 특별히 해외로 나가지 않은 이유는 그냥 가까운 데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나를 위한 다기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당일치기 나들이는 정도는 가끔 갔었지만 집을 떠나 멀리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더랬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자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불편하고 힘든 일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특별한 날이 아니면 명절 때라도 잠은 집에서 잘 수 있도록 돌아왔다.
집순이... 나는 안정감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내 집이 가장 좋았다.
이런 내가 외국에 대한 견문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은 TV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여행을 못 다녀서 그런 건지 아니면 언젠가는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어서 그런 것 인지 모르겠지만 드라마 다음으로 자주 보는 프로그램은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난 TV로 웬만한 광관지는 다 가봤다.
그랬던 내가, 지금 "real"로 대만에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있다.
생애 두 번째 비행기 탑승이다. 아니 첫 경험이라 해도 무방하다. 첫 비행기 탑승 후 30년 만이니까..
친구는 가고 오는 길 편안하고 안전하게 가자고 대한 항공을 예약했다. 창가 쪽 자리이다. 왜 있지 않은가? 드라마를 보면 가끔 나오는 비행기 장면에서 주인공 배우들은 항상 창가 쪽을 앉았더랬다. 그리고 그들은 곧 사색에 잠기거나 책을 보거나 자거나 했었다.
그리고 기내식을 먹을 수 있단다. 도착 시간이 늦은 8시 이후라 도착 후 저녁 먹기가 애매하여 친구가 비행기 안에서 저녁을 해결하자고 했다. 말로만 듣던 기내식이다. 우후훗~
탑승교를 따라 들어가니 비행기 안으로 들어서는 문 앞에서 스튜어디스가 밝은 미소로 환영인사를 한다. 나도 같이 인사를 하고 비행기 좌석을 찾아 앉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스튜어디스들이 돌아다니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 필요한 사람들에겐 좌석에 꽂아 사용할 수 있는 이어폰도 주었다. 앞 좌석 뒤에 작은 스크린이 있어서 영화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저기 앞에 화장실도 보인다. 화장실을 본 나는 이유는 없지만 그냥 '내리기 전 반드시 화장실도 가보리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튼, 앉아 있으니 기내에서 방송이 시작되었다. 기장이 머라 머라 말한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 방송이 나왔다. 그리고 비상시 대처 행동에 대해 스튜어디스들의 시범을 보여 준다. 내 앞의 작은 스크린에서도 아이돌이 나와 스튜어디스들처럼 안전 수칙에 대해 가르쳐 준다. 이와 동시에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생전 처음 경험해 보는 엔진 소리이다. 엔진 소리가 어마무시하게 크다. 손가락으로 귀를 막아도 엔진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다. 이 정도 소리면 옆사람과 대화도 못 할 것 같다. 드라마에서는 비행기에서 책도 보고 잠도 자고 하던데 다 뻥이었나 보다. 엄청나게 큰 엔진 소리로 인해 나는 계속 손가락으로 귀를 막고 있었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며 기압으로 인해 귀가 먹먹할 때 하는 침 삼키기를 했다. 귀가 아직 먹먹하진 않은 것 같았지만 미리 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엄마, 이것 봐봐. 여기도 게임을 할 수 있나 봐"
옆에 있던 딸이 나를 툭툭 쳤다. 그제야 나는 귓구멍에서 손가락을 빼고 딸을 보았다. 딸은 스크린을 톡 톡 치면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아... 안 되나 보네. 나 전에 뉴질랜드 갈 때는 게임이 돼서 게임하면서 갔는데.. 그냥 음악이나 들으면서 그냥 좀 자야겠어"
"엄마는 너무 시끄러운데. 너는 안 시끄러워?"
"이어폰 꽂고 음악 들으면 괜찮아"
나는 소리에 좀 예민한 편이라 이렇게 큰 엔진 소리를 계속 듣고 가야 한다면 너무 괴로울 것 같지만 딸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앞 좌석의 친구와 친구딸을 살펴보니 그들도 그다지 힘들지 않은가 보다. 역시 비행기 경험이 한 번이라도 더 있는 자들은 좀 다르다.
비행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은지 얼마나 지났을까 비행기가 어느 정도 고도에 올라온 듯했고 엔진 소리도 좀 작아진 것 같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여기 지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비행기 작은 창으로 보이는 구름과 노을빛, 그리고 비행기 날개....
저 멀리 구름바다 끝에 노을이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보였다.
내가 살고 있는 곳도 노을은 너무너무 예쁘다. 노을은 퇴근할 때, 나의 지쳐있던 영혼을 위로해 주었더랬다. 신호에 걸려있을 때 잠깐 하늘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평온해지던지...
하늘 위에서 보는 노을은 무언가 달랐다.
뭐라 말해야 할까... 퇴근길 노을을 보며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다르다.
비행기 엔진 소리와 구름의 바다, 저 멀리 보이는 넓게 펼쳐진 노을을 보고 있으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다만, 다 괜찮고, 다 괜찮고, 다 괜찮은 마음만 들었다.
사람들이 이래서 여행을 가나 보다.
너무 예뻐서 핸드폰으로 여러 장 사진을 찍었지만 이 풍경을 진실하게 담아낼 수 없었다.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르니, 지금의 풍경과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한 참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조금 있으니 밤하늘이 되었다.
밖이 깜깜하여 유치창에 내 모습만 보인다.
화면을 이것저것 터치해 보니 비행기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었다.
핸드폰은 어느 순간 대만 시간에 맞춰져 있었다.
창밖의 깜깜한 하늘,
침침한 조명,
나름 편안한 좌석,
비행기 탑승객들이 소근소근 말하는 웅성거림,
가끔 돌아다니는 스튜어디스들,
기내식으로 인해 풍기는 음식 냄새...
비행기 안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것들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이것저것 만져보고 기내식도 먹고 친구랑 딸이랑 이야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벌써 하늘에 떠 있은지 2시간이 다 됐다. 곧 대만공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창밖을 보니 도시의 불빛이 보인다.
대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