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기사님을 잘 부탁해
내가 지금 잠을 잔 것인가.. 안 잔 것인가..
높은 습도로 인해 에어컨을 상시로 틀지 않으면 이불이건 옷이건 눅눅해진다고 하여 에어컨을 계속 틀고 잤다. 잠자리가 바뀐 탓도 있었고 몸이 피곤한 탓도 있었지만, 밤새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 것도 내가 잠을 설친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이유가 무엇이든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아침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일찍 일어난 김에 씻고 딸과 함께 아침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아.... 이런....
세수를 하며 거울을 보니 어제 올라왔던 입술 물집이 더 커졌다. 입술가에 생긴 물집이 커져서 입을 벌리기가 참 애매하다. 이제 진짜 마스크를 써야 하는가 보다.
식당에 가니 친구는 아직 인가 보다. 나와 딸은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담아 왔다. 오늘은 택시 투어를 하니 혹시라도 배탈이 나지 않게 익숙하지 않은 음식은 패스했다. 접시에 음식을 담아 자리에 앉으니 친구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 와~ 너 입술이 왜 그래?"
" 나도 몰라. 엄청 피곤한가 봐 "
" 어제 나이트 하고 온 건 난 데, 누가 보면 네가 나이트 한 줄 알겠어 "
" 그르게.... 하하 "
친구는 준종합 병원 중환자 실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이다. 친구는 이 여행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해 왔고 여행 전날에는 나이트까지 해서 밤을 꼴딱 새웠더랬다. 정작 잠을 못 자서 피곤한 것은 친구인데 내가 입술이 터지고 있다.
아침을 다 먹은 우리는 각자 준비를 마치면 1층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대만에서는 관광객을 상대로한 택시 또는 버스 투어가 잘 되어있다고 한다. 택시투어 역시 카카오톡을 이용하여 한국에서 예약하면 되니 예약도 편하다. 우리도 한국에서 하루만 택시 투어를 예약하고 가고 싶은 여행지도 일정에 추가하여 정했더랬다. 오늘은 기사님이 우리를 모시고 다녀 주시기 때문에 편안한 관광에 대한 기대가 크다. 특히 가고 싶었던 곳들을 정해서 갈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호텔 현관문 쪽을 살펴보니 도로에 택시가 있다. 우리를 기다리는 택시 인가 보다. 택시문에 커다랗게 한글로 이름이 쓰여 있었다.
< 고 복 수 택시투어 >
택시 기사님 이름이 고복수 인가 보다. (나중에 아러게 되었는데 택시회사명이 고복수 택시였다.)
택시를 타자 기사님이 반갑게 인사를 하신다.
"어서 오세요."
억양에 조금의 어색함이 없는 것이 한국분 이시다. 친구가 택시 투어 예약 시 한국어가 되는 기사분으로 예약을 해서 가격이 조금 더 비싸다고 했는데 아예 한국인 기사님이 오실 줄은 몰랐다.
" 오늘 가실 곳이 예류지질 공원, 스펀, 고양이 마을, 지우펀 이렇게 되시는 거죠? "
"네."
" 그럼 예류 지질 공원부터 가겠습니다. "
" 네. 잘 부탁드립니다. "
기사님은 목적지로 가면서 대만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우선 기사님 자신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 부터 시작해 대만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까지 대화의 내용은 두서없고 다양했다. 가끔 보이는 건물이나 풍경에서 재미있는 것들이 보이면 소소한 퀴즈도 내가면서 재미있는 여정이 되기 위해 노력하셨다.
대만은 비가 많이 오는 나라라서 건물 외벽이 대부분 타일로 되어 있고 물때가 많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건물이 좀 낙후되어 보이고 지저분해 보인다고. 그리고 비가 많이 오는 나라만큼 우산 퀄리티가 좋아서 관광객들이 우산을 많이 사간다고 한다.
대만이 스쿠터가 많은 이유가 겨울이 춥지 않아서 그렇다고.
대만은 학구열이 높아서 인구의 80% 이상이 대학을 졸업한다고.
대만은 땅값도 집값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비싸다고. 특히 타이베이 쪽은 정말 집값이 비싸다고.
대만은 바나나 나무가 우리나라 진달래처럼 곳곳에 자연적으로 자라난다고.
대만은 개미집이 나무 위에 있다고. 비가 많이 와서 그렇다고.
기사님이 대만에 대한 재미 있는 이야기를 해 주시는 동안 조수석에 앉은 내 친구는 열심히 리액션을 해 주었다.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사실 친구가 조수석에 타게 된 이유는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나이 먹도록 낯을 가리는 나 때문이다.
택시 투어가 결정된 이후 마음속에서 계속 걱정되던 것은 택시에서의 자리 배치였다. 낯선 사람과 함께 나란히 앉아 오늘 하루 긴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이, 중년 정도 되는 성인이라면 조수석에 앉을 때의 예의가 가이드 기사님의 이야기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지는 나에겐, 즐거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들은 나이가 50이 되는 아줌마가 되어서 아직도 낯가림을 한다면 웃을 일이겠지만.
이럴 때 외향적 성향을 가진 친구딸이 조수석에 앉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친구딸도 부담스럽다면서 뒷좌석에 앉아 잠을 청했다.
아니 어제밤에는 그렇게 신나서 기분이 up 되어 있더니 오늘 아침은 왜 낯을 가리는 소녀가 되어 있는거냐고.. 자신은 모르는 사람과도 말도 잘하고 서로 sns도 주고 받는다면서 왜 지금은 새침한 소녀가 되어 있는 것이냐고...정작 "E" 성향의 사람이 필요할때 친구의 딸은 선택적으로 "I" 가 되었다.
어쨌든 친구야, 택시 안에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지 않도록 기사님을 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