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런 날이 있었지

기록하고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

by 숲song 꽃song

핸드폰 메모장에 저장된 글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메모 하나를 발견했다.


서로의 산신령과 오늘의 명언(2023.5.26)


제목부터 미소가 지어졌다. 그날의 공기와 표정, 문장 끝에 묻어 있던 온기까지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아, 이런 날이 있었지. 함께 나눈 문장들로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던 날.'


내가 속해 있는 OOO 독서모임 벗 중에 '든든 씨'가 있다.
그는 수많은 영화 파일을 소장하고 있는데 아무렇게나 쌓아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바로 찾아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잘 정리된 보물창고다. 필요한 영화를 주문하면 늘 뚝딱, 산신령처럼 내어주다. 그날도 수강하고 있는 영화인문학 수업을 위해 미리 봐야 할 영화가 있었다. 급하게 [리틀 포레스트] 일본판과 한국판을 부탁드렸는데, 금세 뚝딱 하고 파일이 도착했다. 그리고 뒤이어 보내온 오드리 헵번의 한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인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최고의 것은 서로이다.


지만 묵직한 문장이, '든든 씨'의 얼굴과 겹쳐 보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최고의 것은, ‘서로의 산신령'이 되어보는 것’이 아닐까?

이 생각을 혼자만 품고 있기엔 아까워 바로 독서모임 단톡방에 번개처럼 제안했다.

'벗님들, 오드리 헵번의 말을 살짝 변형해서 우리들만의 ‘오늘의 명언’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때 나는 짧은 명언에 담기게 될 서로의 인생철학을 들어보고 싶었다. 느닷없는 제안에도 누구 하나 '웬 뜬금없는 소리?'라는 물음도 없이 잠시 후, 갓 지은 명언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메모장에는 그날, 단톡방에 올라온 [오늘의 명언]들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인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최고의 것은 ‘서로의 산신령’이 되어보는 것이다.

-상큼 씨-


인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서로 ‘틈새를 내어 주는 것’이다.

-든든 씨-


인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늘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사랑 씨-


인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꼭꼭 씹어서 먹는 것이다. 세상과 교감하는 것처럼.

-감성 씨-


인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과 자연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것이다.

- 명랑씨-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서로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창한 삶의 철학은 아니었지만, 그날의 우리는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사랑하고 있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놀랍지 않은가.

어제까지 밖으로 꺼내지지 않은 생각들이 오늘 다듬어져 문장이 되고 글로 남는 순간, 먼 훗날까지 살아 꿈틀거릴 수 있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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