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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Mar 14. 2023

국제학교에서 깨달은 아이의 영어교육

영어 배우기

AR, SR 그것이 뭐가 중헌디..

한국에서 내가 짧게나마 경험한, (학원) 영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리딩 레벨"이었다. 

- 리딩 레벨 몇이나 나와요?

- 2점대?  아..그 정도는 평균이에요

- 누구는 4점, 5점대라고요? 벌써요? 


미국 초등학교 3~4학년 정도의 아이가 읽을법한 소설책을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가 읽어야했고 이 책도 이해를 거의 못하고 있는데...3개월 뒤 레벨테스트에서 커트라인을 겨우 통과해 반이 올라가면 또 더 어려운 책을 마주하게 되었었다.

아이가 얼마나 높은 수준의 책을 읽는가...SR, AR 점수 자체가 아이의 영어실력을 증명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말레이시아 국제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며 내가 깨달은, 영어 교육에서의 가장 중요한 점은 먼저 듣기와 말하기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는 것인데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또 말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여기에서 듣기와 말하기는 다양한 나라의 영어 악센트에 대한 이해도 포함하고 있는데..이건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컴퓨터로 보는 그 읽기 능력 테스트가 뭐가 그렇게 중요해서 매달렸던걸까?

물론 비영어권 국가인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기에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부분일 수 있겠지만...

정작 이 곳 말레이시아 국제학교에 왔을 때 선생님이 내린 평가는,

reading 과 writing 에 비해 speaking 실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영어로 말하는 것에 익숙치 않아 자신감이 부족했고 또 틀릴까봐 말하기를 꺼려하는 것도 있었다.


사실 나만 생각해도 그렇다.

수능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던 나는 수능에서 외국어 영역은 만점을 받았었고, 토익도 940점이나 받았었다.

하지만 대학생 때 떠난 해외 봉사활동에서 나의 스피킹 실력에 참담함을 느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였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단어와 문법이 잘 갖춰진 문장을 생각하고 말하느라 어려운 적이 많았는데,

거침없이 말을 내뱉는 (그 때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온) 유럽 아이들을 보며...생활에서 나의 영어가 그들보다 부족하다는 생각에 내 영어 말하기 실력이 부끄러웠었다. 


한국에서 너무 힘들었던 아이의 영어 교육


우리 첫째 아이는 7살 때 영어유치원에 갔다.

사실 영어유치원에 대한 큰 정보와 준비 없이 다소 충동적으로 결정하고 간 터라, 아이가 영유를 다니는 1년 내내 우리는 꽤나 고생했다.

A, B, C.. 알파벳만 겨우 깨치고 들어간 우리 아이에 비해 다른 아이들은 어느정도 파닉스 기본기를 끝내고 온 상황이었고, 우리 아이는 빠르게 나가는 진도를 겨우겨우 헉헉대며 쫓아가는 수준이었다.

영유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시간에 아이가 배우는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데 진도만 빠르게 나가는 것 같다며 나의 고민을 토로하니 선생님도 이를 어느정도 인정하셨다. 다만, 7살에 처음 들어온 영유 1년차 반은 어쩔 수가 없다고 하셨다. 어머님들께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어느정도 퍼포먼스가 나오길 기대하기 때문에 때문에 진도를 빠르게 나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7살 영유를 졸업하고, 8살 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해당 영어유치원의 초등 영어반을 계속해서 다녔는데 그 때부터 아이는 영어에 학을 떼기 시작했다.

내가 봐도 아이의 영어 수준보다 한참 높은 소설책을 거의 2~3일에 한 권씩 읽어야 했고, 이어지는 그래머 숙제, 라이팅 숙제, 단어 시험, 그리고 3개월마다 치러지는 반 승급을 위한 레벨테스트. 아이는 영어를 점점 싫어하게 되었다.

이러다간 더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할 것 같아 결국 8살 4월에 학원을 그만두었다.


이후 아이는 6개월 정도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오는 대학생 형, 누나들과 영어 수업을 아주 즐겁게 하였는데, 덕분에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지만 영어 실력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이러다 안 될 것 같아 다시금 영어도서관, 영어학원을 알아보고 상담과 테스트를 예약했는데 그 때마다 내게 물어오는 것은 바로 SR, AR 점수였다.

한 번도 테스트를 해본적이 없어서 어떤 학원에서 한 번 받아보니 1점대 후반이라고 했다.

'어머니, 영유 1년 다닌 애들은 보통 2점대는 나오는데...아..더 열심히 하셔야겠어요.'

이게 그 때 내가 들은 피드백이었다.

조급함에 아이를 다시 영어학원에 보내놓고, 밤마다 주말마다 이어지는 아이의 영어 숙제와 테스트 준비로 우리의 끔찍한 영어 배우기는 다시 시작되었었다. 그리고 매일 저녁, 이해되지도 않는 영어 소설책을 붙들고 꾸역꾸역 책장만 넘기던 아이였다.


국제학교의 책 읽기


물론 이 곳 국제학교 선생님들도 영어 공부에서 책 읽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이는 매일 책 한권씩 들고 오는데 해당 책은 아이 영어 레벨에 맞게 주어진 책이다.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레벨 별로 다른 색깔의 띄지가 붙어져있고, 매일 오후, 아이들의 레벨에 맞는 책들이 담긴 바구니가 교실에 온다. 그럼 선생님이 각 아이들에게 레벨에 맞는 책을 나눠주고, 아이는 집에 가서 그 책을 읽고 다음 날 아침 빈 바구니에 책을 놓고, 또 새 책을 받아오는 방식이다.


한국에서 영어책 읽기를 너무 싫어했던 우리아이가 이 곳에 와서 처음 받았던 책은 7살 영어유치원에서 읽었던 수준의 책이었다. (솔직히 속으로..이거 쫌 너무한대..싶었다)

오랜만에 쉬운 수준의 책을 읽어서일까 아이는 룰루랄라 재밌게 책을 읽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면서 아이의 책 레벨이 오렌지에서 보라색으로 바뀌게 되고, 점점 글밥이 많고 수준이 높은 책이 오고 있지만 아이는 여전히 책을 재밌게 읽는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아이가 가져오는 책은 픽션부터 논픽션, 소설에서 과학책, 사회책, 미스터리에 관한 책으로 주제도 다양하다.

"엄마, 나 한국에 있을때는 몰랐는데 지금 여기서 보니깐 영어 책 읽는거 쫌 재밌는거 같아"





한국에서 아이의 SR, AR 점수가 높지 않았을 때, 아이의 영어실력에 불안해하던 나에게 뭘 그렇게 조급해 하냐며 이야기해주고 싶다. 3개월마다 보는 레벨테스트에서 혹시나 통과를 못해 혼자만 반이 못 올라갈까봐 전전긍긍했던 날 생각하면 그게 뭘 그렇게 중요했었나 싶다..(사실 학원비를 그만큼 내니 투자에 대비 성과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 아이는 한국 영어 학원에서 꾸준히 영어를 공부한 아이들에 비해 낮은 SR, AR 점수를 받을 것이다. 그래도 그 때는 의연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말하고, 듣고, 쓰고, 읽는 것으로 완성되는 언어에서 어떤 특정 한 분야가 그 실력을 오롯이 대변하는 것은 아니니깐.


우리 아이들은 지금 본인 수준에 맞는 영어책을 읽으며 재미를 찾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영어 만화 영상을 본다. 그리고 본인이 읽은 책과 만화에 대해 영어로 설명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이렇게 말레이시아에서 나만의 영어 교육 루틴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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