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골목을 걷던 풀잎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거리 곳곳에 놓인 오래된 물건들 사이로 외국인들이 오가며, 마치 지난 시간을 거니는 듯한 표정으로 세월의 결이 밴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신기한 듯 손끝으로 물건을 더듬으며, 낯선 시대의 숨결에 귀 기울이듯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오래된 시간을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과거와 현재가 겹쳐진 듯, 시간의 결이 어긋난 거리가 바로 이곳이었다. 그 낯설면서도 익숙한 공기 속에서 풀잎의 시선은 한 표구상 앞에 멈추었다. 유리창 너머, 동백꽃이 수 놓인 액자 곁에 고운 꽃신 한 켤레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예쁘다….”
풀잎이 조용히 혼잣말하듯 속삭이는 순간, ‘드르륵-’ 유리 미닫이문이 열렸다.
남색 치마에 흰 모시 저고리를 입은 단정한 할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쪽 찐 머리 위로 얇은 햇살이 내려앉았고, 그녀의 미소는 마치 오래된 편지처럼 다정하고 따스했다.
“꽃신, 곱지요? 가까이 와서 보셔요. 수 놓은 잎사귀 하나하나가 다 살아 있답니다.”
풀잎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테이블 위엔 미처 치우지 못한 찻잔이 하나. 할머니는 그것을 조심스레 옆으로 밀며, 진열장에서 꽃신을 꺼내 풀잎 앞에 올려놓았다.
“시집갈 때 신는 신이지요. 아주 고운 날에 신는 거랍니다.”
풀잎이 눈을 반짝이며 감탄하자, 할머니는 조용히 찻잔을 들어 풀잎에게 건넸다.
“마셔 보세요. 제가 좋아하는 차예요.”
풀잎은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구수한 현미향이 혀끝을 타고 서서히 마음속으로 번져왔다.
“맛있어요. 고소하고, 따뜻하네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여자는요,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를 닮아간대요. 식성도, 손맛도, 웃는 버릇도... 하나둘 따라가더라고요.”
풀잎은 문득 꽃무늬 바지를 즐겨 입던 엄마와 새빨간 매니큐어를 자랑하던 그 손을 떠올렸다. 어색하게 웃는 풀잎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살짝 눈꼬리를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은 몰라요.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거예요. 이 할미 말이, 그제야 가슴에 새겨질 날이 올 거예요.”
그리고는, 할머니는 테이블 위의 꽃신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마포나루, 아세요?”
풀잎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포나루 강 끝자락에, 우리 집이 있었어요.”
할머니는 시선을 창밖 먼 데로 두고, 오래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기와도 없는 초가였지만, 어머니는 부지런하고 손끝이 야무지셨어요. 뒷마당 텃밭엔 늘 푸성귀가 넘쳐났고, 부엌 아궁이엔 불씨가 꺼진 날이 없었죠. 언제 들어가도 따뜻했어요. 마치 어머니 마음 같았죠.”
그 시절을 떠올리는 할머니의 목소리엔, 그 시절의 온기가 묻어 있었다.
“아버지는 몰락한 양반 가문의 자손이셨지만, 글에 능하셨어요. 마을 서기를 맡으시고, 동네 사람들 편지도 대신 써 주셨죠. 모두들 아버지를 존경했어요.”
할머니는 살짝 웃으며 풀잎을 바라보았다.
“아침이면 어머니가 제 머리를 곱게 빗겨 주셨어요. ‘우리 딸, 참 곱다...’ 하시면서.”
그 말에 풀잎도 같이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어요.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어요. 부엌은 썰렁했고, 불씨도 사그라져 있었죠. 아버지도 안 계셨어요.
불안한 마음에 마루 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해가 지고서야 아버지가 돌아오셨어요. 술에 취한 모습으로.”
할머니의 목소리는 힘없이 떨렸고, 말끝마다 쉼표처럼 침묵이 맺혔다.
“며칠을 그렇게 술에 절어 지내시더니, 어느 날 밤, 문을 벌컥 열고 나가셨어요.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진흙투성이 옷을 입고, 산발한 머리의 어머니를 질질 끌고 돌아오셨어요.”
말을 잇던 할머니는 고개를 떨구었다. 눈가에 스며든 오래된 기억들이 조용히 번져가며, 이내 눈물이 맺혔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마당 한복판에 내던졌어요. 나는 부엌으로 달아나 숨었어요. 부엌 문틈 사이로 보았죠. 아버지가 어머니를 발로 차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어요. 담장 너머로 동네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어요. 아무도.”
잠시 침묵이 흘렀다.
풀잎은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할머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어머니가 꼼짝도 하지 않으시자, 난 겁이 나서 달려나갔어요. 어머니 몸 위에 내 몸을 덮었죠. 그러자 아버지가 한참 나를 보더니, 방으로 들어가 장도를 들고 나왔어요.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칼이었어요.”
할머니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칼을 어머니 앞에 내던졌어요. 죽은 듯 누워있던 어머니가, 그 칼을 보는 순간 천천히 몸을 일으키셨어요. 난 어머니 품에 안겨 애원했어요.
안 된다고, 죽지 말라고. 제발 그러지 말라고.”
잠시 숨을 가다듬은 할머니는, 마치 그날로 되돌아간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상처투성이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으며 울고 계셨어요. 그러고는... 나를 밀쳐냈어요.
그 힘에 떠밀려 바닥에 쓰러졌어요. 하지만 나는 두 손과 무릎으로 기어가, 아버지의 다리를 붙잡았어요. ‘제발 어머니를 살려 달라’고 울부짖었어요.”
그 순간의 공기가 다시 가게 안을 감쌌다. 고요하고, 슬픈 시간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어요.
‘바람난 여자가 자결하는 건 이 동네 관습이지.’
‘안됐지만 어쩌겠어...’
‘순이가 너무 어려서 가엾네….’“
할머니의 손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풀잎은 아무 말 없이, 그 손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짧은 비명과 함께 ‘툭‘-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돌아보니, 어머니가 쓰러져 있었어요.
어머니의 눈과 마지막으로 마주쳤죠. 아주 미약하게 웃고 계셨어요. 입술이 아주 살짝 움직였어요. 나는 그게 ’괜찮아‘라고 들렸어요.“
눈물 한줄기가 할머니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풀잎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은 때로 너무 빈약해서, 차라리 침묵이 더 깊은 공명을 만들어낼 때가 있었다.
”어머니를 뒷산에 묻고 내려오던 길에, 나는 쓰러졌어요. 열흘이 넘도록 깨어나지 못했대요.“
할머니는 입을 다문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허공을 바라보던 시선이 어느새 책상 위의 찻잔으로 옮겨와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아버지 얼굴을 한 번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어요. 동네 사람 누구에게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죠. 그러자 사람들은 말하더군요.
‘순이, 충격 때문에 벙어리가 됐다더라. 병신이래.“
할머니는 쓴웃음을 머금은 채 한동안 침묵에 잠겼다.
”세월이 흘렀고, 그런 나에게도 혼처 이야기가 들어왔어요. 뒷동네 중매쟁이가 몇 번이나 집에 찾아왔지만,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셨어요.
‘아무리 반푼이라도 재취 자리엔 줄 수 없다’고 말이죠.“
그 말엔 더 이상 슬픔이 묻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묵은 체념 같은 것이 스며 있었다.
”그날도, 아버지는 낮술에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마루에 앉아 계셨어요. 중매쟁이는 조심스레 다가와 말했어요.
‘순이 아버지... 순이 생각 좀 해보셔요. 그 일 있고 나서, 애가 아버지 얼굴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쳐다본 적 있던가요?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말문을 닫았겠어요. 이젠 좀 놓아주셔야죠. 나이 든 영감이라도 순이 예뻐해 준다면, 사랑받고 살다 보면... 사람 구실 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풀잎은 숨을 삼켰다. 그 말이 그대로 가슴에 파고들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술만 들이키다가, 조용히 몸을 일으켜 마루를 내려가셨어요. 중매쟁이만 마루에 남겨두고요.
밤이 깊어가던 무렵, 아버지가 내 방 앞에 조용히 앉으셨어요. 나는 이불을 덮은 채 숨죽이고 있었죠.
’자나…? 내 말 듣고 있제?‘
문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낮고 느렸어요. 아버지였지만, 그 목소리는 낯설게 느껴졌죠.
’중매쟁이가 말한 윗마을 그 이 말이다. 나이는 좀 있어도, 사람은 진솔하다더라. 니 엄마야 사주가 계축일주라 서방한테 그 꼴을 당했지만, 너는 을해일주라 사주가 곱다더구나. 누구한테 가도 사랑받고, 복 있게 살 팔자라고 하니...
내일, 중매쟁이 따라가서 혼례 준비나 해라.‘
말을 마친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셨는지, 삽작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어요. 문이 닫힌 뒤, 나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어요.
마루 끝에, 꽃신 한 켤레가 놓여 있었어요. 어머니가 시집오실 때 신으셨던, 바로 그 꽃신이었죠.“
할머니는 그 장면을 꺼내어 놓듯,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반닫이에 넣어 두었던 걸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신어보니, 내 발에 꼭 맞았어요.
어쩌다 이렇게 커졌나...
어머니 발만큼 자란 내 발을 내려다보며, 목이 메었어요.
꽃신을 다시 마루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나는 문을 열고 말없이 집을 나섰어요. 그 길로... 나는 마을을 떠났어요.”
할머니는 차분히 미소 지었다.
아픔을 지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하고 따뜻한 표정이었다.
“아는 것도, 가진 것도 없던 나는 마포나루 주막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했어요. 그곳에서 우연히 표구 일을 하던 사람을 만났죠. 가진 건 없지만, 성실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어요. 밥 굶기지 않는다는 말에 마음을 기대며 함께 살게 되었어요.”
할머니의 눈에 작은 빛이 일렁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아들 둘을 낳고, 목소리도 돌아오고...
지금처럼 말도 술술 하게 되었죠.”
풀잎은 그 말을 들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상처는 시간이 아니라, 사랑과 일상으로 회복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첫째 아들을 장가보내고, 폐백상을 받는데...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어요.”
할머니의 눈빛이 다시 먼 곳을 향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참 신기하죠. 나는 아버지를 완전히 잊고 살아왔더라고요. 정말, 한 번도 떠올리지 않고.”
그 말이 끝나자, 가게 안의 공기가 잠시 멈춘 듯 고요해졌다.
“그래서요... 정말 오랜만에 마포나루에서 배를 타고, 어릴 적 그 마을로 갔어요.”
할머니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호했다. 마치 시간을 되짚어 내려가는 듯한, 묵직한 발걸음처럼.
“마을은 많이 변해 있었어요. 길을 지나치는 사람들 얼굴도 낯설고, 옛 골목도 사라졌더군요. 우리 집은... 강물이 밀려드는 자락에, 폐허처럼 남아 있었어요.”
풀잎은 숨을 삼켰다.
낡고 버려진 집, 그 안에 남아 있을 기억들. 그것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지 짐작조차 어려웠다.
“뒷마당엔 잡초만 무성했고, 부엌 아궁이엔 오래전부터 불이 꺼져 있었어요. 먼지가 켜켜이 내려앉은 마루에 앉아, 아버지 방을 바라보았죠. 문짝은 뜯겨 바람만 드나들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내 방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더군요. 문밖에서요.”
그 말에 풀잎은 천천히 눈을 들어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어요. 아버지가 그 집을 떠나며, 그래도 딸 방 하나만은 지켜주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그 생각에 마음이 저릿하더군요.”
말끝에 잠시 머뭇거림이 있었다.
“기억이 흐려지니, 미움도 같이 흐려지더군요. 예전보다 훨씬 마음이 편해졌어요.”
할머니는 잔잔한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용서보다 더 깊은, 생의 수긍에 가까운 미소였다.
“집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한 바퀴 돌아보고 싶었어요.”
할머니는 찻잔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가, 다시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눈빛엔 물기가 살짝 고여 있었다.
“집 뒤편으로 돌아섰는데, 바람에 흔들렸는지 낡은 창문에서 ‘삐걱’ 소리가 났어요. 그 창, 어릴 적 달을 보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창이었죠. 마음이 이끌리듯, 나는 그 앞으로 다가갔어요.”
말을 잇는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느려졌다. 마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 깊은 숨을 삼키는 듯했다.
“조심스럽게 창을 밀어 방안을 들여다보았어요. 그런데 그 안에...”
잠시 멈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할머니는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꽃신을 가슴에 안은 채, 똑바로 누워 계셨어요. 백골이 된 채로요.”
풀잎은 말없이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가게 안의 공기마저 숨을 멈춘 듯 고요해졌다.
“몇십 년을 기다린 듯, 그 방 안에서...
꽃신을 꼭 끌어안은 채.”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조용히, 그러나 떨림 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어요. 마포나루로 돌아오는 배 위에선, 세상 모든 눈물을 쏟듯 울었죠.
그제야,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짐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녀는 풀잎을 바라보며, 늦은 깨달음의 슬픔을 담아 조용히 말했다.
“내 안에도...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요.”
그 말은 무겁지 않았고, 원망도 없었다. 다만 그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인 사람의 담담한 고백이었다.
풀잎은 말없이 테이블 위의 꽃신을 바라보았다. 손끝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녀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 고운 신발을 어루만졌다.
“... 한 번 신어 봐도 될까요?”
할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꽃신을 두 손으로 들어 풀잎의 발 앞에 내려놓았다. 풀잎은 천천히 신발을 신었다.
놀랍게도, 발에 딱 맞았다.
“할머니... 정말, 꼭 맞아요.”
풀잎은 감탄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자리에, 할머니는 없었다.
가게는 고요했다. 숨결 하나 없이.
그 순간, 안쪽 칸막이 너머에서 천이 젖혀지며 누군가 나왔다. 흰 셔츠에 앞치마를 두른, 젊은 여주인이었다.
“어머, 손님이 계셨어요? 제가 문소리를 못 들었나 봐요.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풀잎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주인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가, 풀잎의 발을 보곤 눈을 크게 떴다.
“헐, 대박... 그 신발, 발에 맞으세요?”
“... 네. 꼭 맞네요.”
풀잎이 조심스레 대답하자, 여주인은 신기하다는 듯 그녀를 위아래로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 꽃신은요, 제 시증조모 할머니 유품이에요. 백 년도 넘은 건데, 가죽 위에 직접 수를 놓아 만든 운혜라 박물관에서도 탐을 낼 정도였죠. 그런데 유언을 남기셨대요. ‘이 신이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에게 주어라’라고요.”
여주인은 자신의 발을 꽃신 옆에 가져다 대보았다.
“저도 신어봤는데요, 제 발보다도 신이 더 큰데도 안 들어가요. 뒤꿈치에서 걸려서 끝내 못 신었어요. 신기하죠?”
그녀는 직접 다시 신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꽃신은 이번에도 그녀의 발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신을 신을 사람이... 오늘, 드디어 나타난 거예요.”
여주인은 놓아주려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애틋한 표정으로, 나무 상자를 꺼내 꽃신을 정성스레 담았다. 풀잎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망설이듯 일을 열었다.
“정말... 저한테 주셔도 되는 건가요?”
여주인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유언이니까요. 시증조모 할머니의 마지막 부탁이기도 하고요.”
꽃신이 담긴 나무 상자가 풀잎의 품에 안겼다.
그 순간, 풀잎은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에 감싸였다. 한 세기를 돌아온, 아주 먼 이야기가 지금 이곳-
오래전 이야기 하나가, 발끝을 스쳐 마음속 깊은 곳에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