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동이와의 인연은 조용히 시작되었다.
"큰스님!“
풀잎이 부르자, 방 안에서 나이 지긋한 스님이 마루로 나왔다.
”풀잎이구나!, 오랜만이다. 동이 보러 온 거니?“
”네.“
풀잎은 웃으며 어깨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종이봉투 하나를 꺼냈다.
”스님 선물이요. 보성에 다녀오는 지인에게 부탁드렸어요.“
스님은 환한 얼굴로 봉투를 받아 안을 들여다보았다.
”오, 좋은 차구나. 같이 한잔하자.“
그는 방 안으로 들어가 다기 세트를 꺼내왔다. 곧 정성스럽게 찻잎을 우려내자, 맑고 따스한 향이 방 안 가득 퍼졌다. 두 사람은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말없이 고요한 시간을 함께 나누었다.
잠시 후, 풀잎은 자리에서 일어나 법당으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동이가 깨끗이 씻어둔 철 대야 앞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사주단자가 담긴 납채 주머니를 조심스레 대야 안에 넣었다. 풀잎이 성냥을 켰다. 작은 불꽃이 종이에 닿자, 불길은 천천히 번지더니, 이내 환하게 타올랐다.
풀잎은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그 사주단자에 얽힌 사연을 동이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불길도 점점 잦아들었고 대야 안에는 고운 재만이 남았다.
동이는 그 재를 조심스레 모아 작은 구덩이에 묻으며 말했다.
”처음에 누나가 절에 와서 물건 태워달라 했을 땐, 솔직히 좀 당황했어요. 이상한 사람인가 싶기도 했고요.
근데 이렇게 다 태우고, 재를 묻고 나니까... 괜히 속이 후련해요. 말로 설명은 안 되는데, 그냥... 비워지는 느낌?
어쩌면 이게 진짜 성불인 건지도 모르겠어요.“
풀잎은 그의 말을 들으며 잔잔히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 아래, 어딘가에서 꽹과리 소리를 울리며 혼례 가마가 천천히 지나가는 듯한 착각이 스쳤다.
빛바랜 기억 속 풍경처럼- 소리 없는 행렬이 가만히 마음 한켠을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