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 살랑.
나의 꼬리는 부드럽게 물결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쫙-
물이 쏟아졌다.
파닥, 파닥.
차가운 타일 바닥 위에서 나는 버둥거렸다.
“어? 어항에 금붕어가 있잖아!”
그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차가운 바닥에 내팽개쳐진 채, 나는 황당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난감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정쩡한 몸짓으로 수도꼭지를 틀었다. 어항에 물이 차오르자, 그는 나를 다시 그 안으로 옮겨 놓았다.
‘휴. 조금만 늦었어도 숨이 막혀,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했네.’
나는 작지만 붉게 빛나는 꼬리를 흔들며 어항 안을 빠르게 돌았다. 놀란 가슴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한참을 바라보던 그는 어항 옆의 플라스틱 통을 열었다. 무언가가 물 위로 흩뿌려졌다.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어디선가 전해진 기억이 입안을 자극했는지 군침이 돌았다. 나는 물 위에 떠 있는 것들을 뻐끔, 뻐끔 주워 먹었다. 맛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깨끗해진 어항이 마음에 들어, 나는 그 안을 빙빙 돌았다. 그러다 투명한 벽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았다.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기억을 더듬었다. 방 하나에 작은 싱크대가 딸린 공간. 아마 원룸일 것이다.
햇볕이 방 안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너무 환해서, 방 주인임이 분명한 그의 얼굴은 오히려 어둡게 보였다.
그가 다시 다가왔다.
또 먹이를 주려는 걸까.
나는 물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휴... 나 살기도 힘든데, 이 금붕어를 어쩌지.”
그는 마른세수를 하더니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사를 가면 기르던 건 가져가야 하는 거 아니야?”
“금붕어는 왜 두고 간 거야.”
“그냥... 버려 버릴까?”
그 말이 귀에 꽂혔다.
‘나... 유기어였어?’
가슴 깊은 곳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나는 더 이상 꼬리를 흔들지 못했다. 그가 어항을 들었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
‘안 돼. 안 돼!“
’나를 변기에 버리지 말아 줘.‘
’난 이제 막 태어났단 말이야-’
나는 물속에서 몸을 떨었다.
‘많이 먹지 않을게.’
‘착한 금붕어가 될게.’
‘그러니까... 나와 함께 있어 줘.’
나의 절규를 들은 걸까. 그는 걸음을 멈추고 어항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그는 먹이통을 힐끗 보며 낮게 말했다.
“먹이가 다 떨어질 때까지만 놔두자.”
잠시 어항을 들여다보던 그는 덧붙였다.
“겨우 눈에 보일 정도네. 새끼 금붕어인가.”
어항은 식탁 위에 놓였다.
그는 찻잔을 가져와 무엇인가를 마시며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시선은 오래 머물렀지만, 따뜻하지는 않았다.
“이름을 불러 줘야 할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처럼 ‘야’라고 불리면 싫겠지...”
잠시 생각하던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턱을 괴었다.
“말지.”
“너 이름은 말지로 하자.”
“태어나지 말지.”
그 말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슬펐다.
내게 남아 있던 기억들은 늘 이렇게 말해 왔다. 태어나 세상을 구경하는 일은, 가슴이 콩콩 뛸 만큼 좋은 일이라고.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회색빛 어둠 같은 것일까.
그곳에서는 가슴이 뛸 일 따위는 없다는 걸까.
말지라는 이름은, 이 세상에 눈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내게 처음으로 알려 주는 말 같았다. 그가 어항 가까이 손가락을 가져와 물 위를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글자를 쓰는 것처럼.
그 때문이었을까.
가슴 깊은 곳에서 슬픔이 차올랐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갔다. 어항 바닥에 몸을 붙이고 눈물을 삼켰다.
따르릉.
다음 날, 알람 소리가 울리자 그는 이부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나도 덩달아 잠에서 깨어 부산스럽게 꼬리를 흔들며 어항 안을 돌았다.
그는 모자와 목도리를 챙기다 말고 다시 돌아와 식탁 위의 나를 보았다. 먹이통을 열어 조심스럽게 몇 알을 떨어뜨렸다.
“말지야.”
“늦게 올 거니까, 아껴서 먹어.”
탁.
문이 닫히며 겨울의 찬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살랑, 살랑.
나는 꼬리로 가볍게 물살을 가르며 잠시 돌다가 이내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햇살이 방 안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다시 눈을 뜨면 어둠이 아무 말 없이 내려앉아 있었다.
삑, 삑, 삑.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가 났고, 곧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검은 비닐 봉지에서 편의점 도시락과 캔맥주를 꺼냈다. 그는 식탁에 앉아 도시락을 열고, 아무 표정 없이 음식을 씹었다.
우적. 우적.
멍한 얼굴로, 멍한 눈으로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먹이를 달라는 뜻으로 그의 눈앞을 오갔다.
왔다 갔다.
또 왔다 갔다.
급기야 꼬리로 어항을 톡, 톡 두드리자 그는 그제야 먹이통을 열어 몇 알을 물 위에 흩뿌렸다.
그는 그대로 바닥에 웅크려 누웠다. 잠은 빠르게 찾아왔다. 편의점 도시락 쓰레기와 빈 캔은 비닐봉지에 대충 밀어 넣은 채, 식탁 옆에 남아 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는 여전히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왔다. 식탁에 앉아 도시락을 꺼내기 전에 어항 옆 먹이통을 열어 먼저 먹이를 뿌려 주었다. 그다음에 휴대폰을 켜 유튜브를 틀었다.
“말지야.”
“이거 보면서 먹어.”
화면 속에서는 단란한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웃고 있었다.
“여기서는 다 같이 저녁을 먹잖아.”
“이 집에선 말이야.”
그는 젓가락으로 도시락의 계란말이를 집어 들었다. 눈은 화면 속 잡채 접시에 둔 채 말했다.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잡채인데.”
“정말 맛있다.”
후루룩.
그는 혼자 웃으며 계란말이를 입에 넣고, 집채를 먹는 흉내를 냈다.
유튜브 영상이 끝났을 때 도시락도 바닥을 드러냈다. 그는 빈 플라스틱 용기와 캔맥주를 다시 검은 봉지에 넣어 한쪽으로 밀어 두었다. 그리고 바닥에 웅크린 채, 아무 말 없이 잠이 들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그는 새벽이 되었는데도 일어나지 않았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부스스 눈을 뜨고, 멍하니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이내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저... 네.”
“혹시 일 생기면 꼭 연락 주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고, 그는 다시 바닥에 몸을 접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낮에는 집 안에 웅크려 있다가, 어두워지면 밤고양이처럼 살그머니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늘 같은 것을 사 왔다.
편의점 도시락 하나, 캔맥주 하나.
그것을 먹고,
웅크리고,
잠들었다.
그런 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부터, 나는 더 이상 어항 안을 돌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하루는 흘러갔다. 방 안의 햇살도 더 이상 벽에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검은 편의점 봉지들이 방 안을 가득 채워, 빛은 바닥까지 닿지 않았다.
그는 이제 편의점 쓰레기 봉지 위에 몸을 얹고 웅크려 누워야 했다. 방 안은 쓰레기로 가득 차, 몸을 둘 자리마저 잃어 가고 있었다.
어항의 물은 탁해졌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물속에서 세상이 흐려져 사라지는 것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그때, 음악 소리가 울렸고 그는 전화를 받았다.
“네... 알고 있습니다.”
“이달 말까지가 기한이지요.”
“이자는 통장에서 빠져나가고 있잖아요?”
“입금이 안 됐다고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곧 일을 하게 됩니다.”
“정말입니다.”
“돈을 받으면 원금도 바로 갚겠습니다.”
“조금만... 사정을 봐 주세요.”
“약속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날 이후로, 같은 시간마다 전화기의 음악 소리가 울렸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전화를 끊은 그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비틀거리듯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갔다.
물 내려가는 소리가 울렸고,
그 사이로 “하하하...”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섞여 나왔다.
나는 온 지느러미에 서늘한 기운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그는 쓰레기 봉지 더미를 헤치며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식탁 위의 검은 봉지를 손으로 쓸어 떨어뜨리고 어항 앞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말지.”
“너... 아직 살아 있니?”
나는 흐려진 물살을 가르며 겨우 고개를 내밀었다.
그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투둑. 투둑.
어항 위로 그의 눈물이 떨어졌다.
“말지야.”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
그의 목소리는 물속까지 잠겨 들었다.
“하루를 버티는 게 너무 힘들어.”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숨을 삼키듯 울었다.
“이렇게 안녕이라고 말해서...”
“너도, 나도... 살 수 없는 게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의 눈에 처음으로 망설임이 아닌 미안함이 스쳤다. 그는 내가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잊지 않고 있었다. 눈물로 온통 흐려진 얼굴로, 그는 말을 끝내자 베란다 창을 열었다. 창가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천천히 그 위에 올라섰다. 마지막 인사처럼 그는 힐끗 나를 바라보았다.
‘안 돼!’
나는 온 힘과 온 마음으로 외쳤다.
그 순간-
팍.
쨍그랑.
어항이 깨지며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바닥 위로 쏟아지는 물살에 휩쓸리고, 유리 파편에 부딪히며 나는 밖으로 튀어나왔다.
놀란 그는 곧장 식탁으로 달려왔다. 깨진 유리 조각 사이에서 파닥이며 숨을 몰아쉬는 나를 손으로 잡으려는 순간-
띠리링.
휴대폰에서 음악이 울렸다.
그는 멈췄다. 나를 본 채로, 주저하듯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접니다.”
“...정말요?”
“면접을 보러 가도 되나요?”
“네, 바로 일할 수 있습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도 그는 한동안 휴대폰을 쥔 채 고개를 숙였다. 마치 절을 하듯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의 눈앞에서 나는 숨을 끌어모으며 절규했다.
‘물...’
‘나에게 물을...’
‘숨을 쉴 수가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