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하는 디자이너의 시작은 바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입니다.
하얀 도화지 앞에 선 우리는 종종 막막함부터 느낍니다. ‘무엇을 그려야 하지?’라는 질문보다 더 깊숙이, ‘어떤 마음을 담아야 하지?’라는 고민이 일어나곤 하죠.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결과물을 뽑아내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출발선에는 내 안에 숨어 있는 작은 씨앗, 즉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그 씨앗을 어떻게 발견하고 키우느냐가, 여러분의 디자인을 남들과 다르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아이디어라는 씨앗을 찾기 위해선 먼저 우리 내면에 집중해야 합니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아주 잠깐이라도 무언가를 관찰하고 사색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길을 걷다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간판, 카페의 소파 위에 놓인 알록달록한 쿠션, 그리고 내 손에 들린 스마트폰까지. 이 모든 것은 언젠가 우리가 디자인하게 될, 혹은 이미 디자인의 일부가 되어 있는 일상의 요소입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받은 자극을 단순히 ‘좋아 보인다’, ‘예쁘다’로 끝내선 안 됩니다. 우리는 그 안에 숨어 있는 맥락, 사용자 경험, 숨은 니즈를 끄집어내야 합니다. 사람들은 왜 특정 폰트에 더 끌리는지, 왜 어떤 색감의 패키지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왜 어떤 UI 버튼은 누르기도 전에 직관적으로 기능을 알 수 있는지. 작은 궁금증을 품는 순간, 여러분의 디자인 여행은 시작됩니다.
저는 종종 크고 두꺼운 스케치북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그 안에 사소한 기록들을 남깁니다. 어느 날 길을 가다 생각난 아이디어, 친구와 수다 떨다가 번뜩 든 키워드, 읽다 만 책의 문장이나 인터넷 기사 속 통계자료까지. 처음에는 뒤죽박죽이지만, 그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두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이 모든 게 연결되는 지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건 마치 여러 방향으로 뻗어 있던 뿌리가 한 줄기 줄기를 타고 상승해, 싹을 틔우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아이디어란 어쩌면 ‘무(無)’에서 생겨나는 신비로운 무언가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재조합하고,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충분히 많은 재료를 쌓아두어야 합니다. 디자이너가 세상을 폭넓게 체험하고, 다양한 지식을 쌓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문학, 심리학, 공학, 마케팅,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예술 장르에 관심을 가지면 아이디어의 씨앗은 점점 더 튼튼해집니다.
물론, 아이디어의 씨앗이 잘 자라도록 돕는 비옥한 토양도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반복적인 사고와 관찰’, 그리고 ‘자기만의 문제 정의’입니다. 종종 디자인의 본질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하죠.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디자인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지 명확히 할 때, 그 씨앗은 더 빠르게 싹을 틔웁니다. “누구에게 이 디자인이 필요한가? 어디에 적용되는가? 어떻게 쓰이는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다 보면, 어느새 그 질문들 사이에 작은 답변들이 하나둘 떠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디어 씨앗을 키우는 과정은 생각보다 인내심을 요합니다. 단번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내가 재능이 없는 건가?’라고 의심할 수 있지만, 그럴 필요 없습니다. 많은 디자인 마스터들도 처음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여러 갈래 길을 헤맸습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을 해보는 태도입니다. 스케치, 모형 제작, 사용자 인터뷰, 프로토타이핑 등은 씨앗에 물을 주고 햇빛을 비추는 과정과 같습니다.
또한, 혼자만의 시야에 갇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과 소통해보는 일도 중요합니다. 내게는 당연해 보이는 아이디어라도, 다른 이의 눈에는 낯설거나 불편하게 보일 수 있으니까요. 때로는 그런 피드백 덕분에 더 나은 해결책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씨앗은 혼자 자라는 것이 아니라, 햇빛, 물, 바람, 흙 등 다양한 요소와 상호작용하며 자라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을 즐기는 것입니다. 디자인을 시작할 때의 열정과 설렘, 막막함까지도 전부 나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세요. 씨앗은 서두른다고 해서 단숨에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땅속에서 어둠을 견디고, 마침내 빛을 보았을 때 비로소 싹을 틔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디어가 제대로 발아하기까지는 때론 어둠이 필요합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탐색하고 기록하는데도 당장 큰 성과가 없어 보여도, 조급해하지 말고 그 시간을 즐겨 보세요.
그리고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열어본 오래된 스케치 노트 구석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뿌려놓았던 씨앗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씨앗을 키워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디자인을 만들어낼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제 하얀 도화지를 펼쳐 두고, 천천히 숨을 고르세요. 그리고 내 안에 깃든 아이디어의 씨앗에게 말을 걸어봅시다. “오늘은 어떤 꽃이 될 거니?” 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