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개골 연골 연화증이 찾아준 나의 새로운 취미
올해 초 한창 달리기에 빠진 적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체력 검사를 위해 의무적으로 달렸던 기억 이후로는 굳이, 일부러 달렸던 적이 없던 나는 달리기라는 운동이 갑자기 멋져 보였다. 갑작스러운 콩깍지에는 해 질 녘 레깅스를 입고 바람을 가르며 강변을 질주하던 언니, 오빠들의 멋짐이 한몫했음을 조심스럽게 고백해본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고 나는 가열차게 달렸다. 장기 유지력은 약하지만 단기 추진력은 강한 내 특성이 십분 발휘된 것이다. 장갑에 목도리까지 칭칭 감고 나가 달리기 어플을 통해 매일매일 운동 일지를 기록했고 날이 풀리면 화사한 햇살을 맞으며 마라톤을 완주하는 나를 상상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달렸고, 퇴근하고 달렸으며,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을 때는 점심을 간단히 먹고는 따끔거리는 배를 움켜잡고 달리기도 했다. 처음엔 숨이 찼지만 어느 정도 달리고 나면 호흡이 정돈되고 얼굴에 스치는 바람을 느낄 때의 그 쾌감이란! 이래서 달리는구나 싶었다. 평생 취미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바람과 천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던 지후선배의 명대사처럼 튼튼한 두 다리와 폐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는 달리기에 매력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나에게는 튼튼한 다리가 없었던 것이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을 무렵 무릎이 콕콕 따갑기 시작했다.
뛰는 자세가 잘못됐나 싶어 유튜브를 통해 바른 자세를 찾아보기도 하고, 역시 운동은 장비지! 라며 신발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내 무릎은 계속 아팠다. 하루에 한두 번 따끔거리던 무릎은 걸을 때마다 아프기 시작했고 때로는 다리 전체에 저릿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커졌을 때 병원을 갔다. 그리고 슬개골 연골 연화증 판정을 받았다. 긴 진단명 만큼이나 원인도 치료법도 복잡했지만, 한 가지 명쾌한 사실이 있었다.
달리기는 슬개골 연골 연화증에 좋지 않다는 것.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의사 선생님께 "달리기는 제가 겨우 찾은 마이 데스티니이고, 오랜 시간 평생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던 나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것이었다"라고 질척거렸다. (사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고작 두 달 차였지만 의사 선생님은 모르시니까)
친절한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수영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무릎에도 부담이 없고 실내 운동이라 계절에 관계없이 즐길 수 있다며-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잠깐 어리둥절하다, 오 괜찮겠는데? 싶었다.
수영은 언젠가 꼭 배워보고 싶은 운동이었다. 여행을 가서 썬베드에 누워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것도 좋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거친 파도를 헤치며 수영을 해보고 싶었고, 수영장에서 엄청난 물살을 튀기며 접영을 하는 사람을 넋 놓고 바라본 적도 있었다. 수영을 배우면 인생의 즐거움이 하나 더 늘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고재비답게 그 날 이후 나는 달리기와 작별을 고하고 수영을 만나러 가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