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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Apr 24. 2020

난 너의 전남친에게 고마워.

그동안의 연애는 이 남자를 만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



연애할 때 지난 과거에 대해서는 절대 얘기하면 안된다는 연애 불변의 법칙이 있다. 과거 얘기를 해서 꼭 싸우게 되는 커플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난 가끔 지난 과거에 대해서 남편에게 얘기하고는 한다. 실패한 연애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몇 번의 연애를 통해 성장했고 과거 또한 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나는 연애를 통해 삶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 첫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 영어공부를 시작했고 두 번째 남자친구와 함께 취업 준비를 했다. 남편을 만나기 전 마지막 남자친구와는 지지고 볶는 연애의 끝판왕을 겪었고 그로 인해 굉장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렇게 30대가 되었고 나의 이상형과 연애관도 많이 변해있었다.


하루는 첫 번째 남자친구와의 이별에 대해 얘기를 하던 중 일화를 얘기해주었다. 대학 때 국제통상을 전공했던 나는 영어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수업이 많았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다른 과였던 당시 남자친구가 우리 강의실로 놀러왔었다.


"야. 영어 철자가 다 틀렸잖아."


남자친구가 보는 앞에서 나는 친구들에게 창피를 당했고 너무 부끄러워 숨고만 싶었다. 그 후로 무조건 영어를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고 남자친구가 군대에 간 사이 필리핀과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정말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 시작한 영어공부였다. 덕분에 외국계 회사에 다닐 수 있었고 그 때는 영어로 먹고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첫 남자친구와는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되었고 헤어지고 얼마 후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밥그릇이라면 넌 냉면그릇이야."


당시 남자친구는 군대 제대를 한 달 앞두고 날 뻥 차버렸고 나중에 알게된 이유가 그릇이 달라서라고 했다. 남편에게 전 남친의 그릇 얘기를 해주니 웃으며 말했다.


"나는 밥상인데?"


"응?"


"나는 냉면그릇을 받쳐주는 밥상이야."


남편의 재치있는 말에 우리는 같이 웃었다. 남편은 정말 밥상같은 남자다. 나를 본인의 그릇에 담으려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쳐준다.


마지막 남자친구와의 이별은 꽤 힘들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완벽했던 연애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변해갔고 그동안의 연애가 부정당할만큼의 큰 상처도 있었다. 힘든 연애 끝에 오는 공허함과 허탈감은 이루말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연애로 남자에 대한 환상이 사라졌고 결혼에 대한 생각도 함께 사라졌다. 그러다 만나게 된 남편과의 소개팅에서 나는 인연을 느끼게 되었다.  


"난 너의 전남친에게 고마워."


"왜?"


"그 사람 때문에 네가 나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사실 마지막 연애에 대해서는 남편에게 자세히 얘기한 적이 없다. 그런데 남편은 이미 전 연애가 힘들었던 것을 눈치챈 것 같다. 남편의 말처럼 마지막 연애가 없었더라면 남편을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남편은 평소에 생각해왔던 이상형이 아니었고 나와는 연애 스타일도 많이 달랐다. 내가 20대였더라면 사소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헤어지자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던 건 지난 연애의 실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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