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직감했어도 연애는 다른 문제!
남편과 첫 만남에 운명을 직감했지만 막상 연애를 시작하니 달콤할 것만 같았던 연애는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뭐든 하고 싶은 건 생각나는 대로 바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와 무슨 일을 할 때 꼼꼼하게 따져보고 계획을 세우는 남자의 연애관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여행 가고 싶다고 말하면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남자를 원했고 남편은 일정을 확인하고 컨디션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계획하에 여행을 떠나는 남자였다.
"나 지금 바다 보러 가고 싶어."
"바다 가고 싶어?"
남편은 항상 내가 하는 말에 반문을 했고 그때마다 나는 마음을 숨겼다.
"아니..."
'도대체 왜 자꾸 다시 묻는 거지? 하기 싫은 건가?'라는 오해가 쌓였고 말 못 할 불만은 커져만 갔다. 연애 초반에는 암묵적으로 상대를 탐색하느라 나를 100%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나는 이 남자가 나의 본모습을 보고도 사랑해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여자였다. 그렇게 본심을 숨겨가며 우리는 주말마다 데이트를 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연애였다.
뜨거웠다가 차가웠다가 냉온탕을 오가던 연애만 했던 나에게는 조금은 심심한 연애였다. 그렇게 주말에 계획하고 만나는 데이트를 이어갔다. 연애 5개월쯤 되었을 때 이스라엘로 출장을 갔고 내가 돌아오자마자 이번엔 남편이 프랑스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거의 2주 동안 시차가 달라 연락이 뜸해지면서 우리의 연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대화도 잘 통하고 가치관도 잘 맞고 분명 인연인 것 같은데... 왜 연애는 시시하지?' 고민이 깊어졌고 고민 끝에 이 남자와의 이별을 결심했었다.
"나 할 말 있어.”
"무슨 말인데?"
"나 사실... 헤어지려고 생각했어."
헤어지자도 아니고 왜 헤어지려고 생각했다고 말했을까? 아마도 이 남자의 본심을 들어보고 결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유가 뭔데?"
"오빤 너무 계산적인 것 같아."
"....."
직설적인 나의 말에 남편도 조금 기분이 상했지만 그보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말을 이어갔다. 이 대화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린 왜 항상 주말에만 만나? 인천에서 서울까지 3-40분이면 오는 거리인데 주중엔 내가 안 보고 싶어?"
"우리 둘 다 직장인이니까.. 평일엔 피곤하잖아. 그래서 배려한 건데..."
"그리고 내가 뭐 하자고 할 때 왜 가격을 찾아봐... 흘러가는 분위기상 비싼 값을 지불해도 되는 분위기면 나라면 그냥 돈을 쓰겠어... 오빠의 그런 행동이 분위기를 깬다고...!!”
"......"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남자와 충동적이고 분위기 잘 타는 여자의 연애는 잘 맞을 수가 없었다. 분위기를 맞춰주지 않는 이 남자와 평생을 재밌게 살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솔직한 마음을 얘기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야? 그냥 이렇게 대충 연애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평생 이대로 옆에 있어줄 거라고 생각했어?"
"....."
한참을 말없이 텅 빈 표정으로 곰곰이 생각하던 남편이 말을 이어갔다.
"근데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너를 놓치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
그 후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냥 우리는 같이 지하철을 탔고 남편은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고는 인천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나는 남편의 마음을 확신하지 못했던 것 같다. 계획적인 데이트만 하는 남편이 깊은 사랑에 빠지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이전의 연애와는 너무나 달라서 이 연애가 마치 잘못된 것처럼 착각했었다. 전에 만났던 남자들은 연애 초반에 열정적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열정도 마음도 사그라들었다. 그런데 남편은 한결같은 사람이다. 처음 만나고 지금까지 4년 가까이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전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전보다 남편을 더 사랑한다.
헤어짐을 얘기했던 다음날 남편이 갑자기 집 앞으로 찾아왔다. 잠깐 나와보라는 말에 나가보니 꽃바구니와 편지를 내 손에 쥐어주고는 그냥 말없이 가버렸다. 그날 이후 우리의 연애는 조금씩 변해갔고 남편은 시도 때도 없이 보고 싶다며 나를 찾아왔다. 시시했던 연애가 점점 재밌어졌고 연애가 재밌어지는 만큼 이 남자가 점점 더 좋아졌다.
오랜만에 남편의 편지를 다시 꺼내 읽어보았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미안하다며 계획적인 행동을 바꿔보려고 노력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또다시 오해가 생기거나 서로의 다름을 발견하더라도 이해하고 배려하자는 말도 이어졌다. 그날 이후 남편은 많이 변했고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 동화되어 가고 있다.
우리가 헤어짐을 얘기했던 연남동을 지날 때면 남편은 아직도 볼멘소리를 한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파. 상처야."
"그때 헤어졌음 큰일 날 뻔했어! 이렇게 좋은 남편인 줄 모르고... 미안하다."
그때 헤어졌더라면 나는 지금의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나 아찔하다. 인연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인연을 지켜내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날의 내가 솔직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노력해 볼 기회도 없이 헤어졌을 것이다. 솔직한 내 얘기를 듣고 남편이 변하지 않았다면 역시 얼마 못 가 헤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인연이라는 것을 확신했고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더 이상 계획적인 남자와 즉흥적인 여자의 다른 성향은 우리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