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통해 바라보는 관계의 틀
아이는 태어나 부모를 통해 세상을 경험한다. 어떻게 말하는지, 행동하는지, 관계 맺는지 일부러 알려주지 않아도 보고 배운다. 아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모를 알 수 있다. 아이의 사소한 행동, 말투, 관계패턴은 모두 부모로부터 온 것이다. 마흔이 가까워진 내게도 부모의 그림자는 아직 남아있다. 모든 관계의 기본은 부모로부터 시작되고 쉽게 바뀌지 않는다.
친한 친구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20년 지기 친구인데 대화할 때 결이 맞지 않아 티키타카가 잘 안 된다. 친구는 모임이 시작된 스무 살부터 10년 넘게 동창 모임에서 총무를 맡았다. 몇 년 전 총무를 맡는 일이 힘들다고 토로해 지금은 다른 친구가 맡고 있다. 모임은 1년에 한두 번 가족 여행을 가는 목적으로 만남이 이뤄진다. 친구는 여행준비부터 과정까지 내내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다했다. 나서는 친구들이 없어 총무인 친구와 내가 대부분의 여행을 준비했다. 여행 전에 숙소를 고르고 일정을 상의한 다음 친구들에게 알리면 친구들은 군말 없이 따르는 방식으로 모임이 지속되었다. 꼼꼼하고 걱정이 많은 친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함께 상의하고 준비하길 원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앞선 걱정은 듣는 이를 지치게 한다. 같은 일이 여러 번 반복되면 슬슬 짜증이 난다. 그럴 때마다 친구의 말에 퉁명스럽게 답했다.
“OO아, 가서 상황에 맞게 하면 되지. 미리 걱정하지 말자.”
발생할 모든 일에 대비하는 친구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하면 된다 생각하는 나는 정반대 성향이다.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닌데 어쩐지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친구는 어떠한 일에 대해 걱정을 말하고 나는 그 일을 만류하는 방식으로 불편하게 대화가 끝난다. 이런 대화패턴이 오래되다 보니 서로에게 피로감이 쌓여 언젠가부터 관계가 멀어져 따로 연락하는 일이 줄었다.
"우리 현지화폐가 많이 남았는데 저녁을 이걸로 계산해도 되는지 확인해봐야 하지 않을까?"
"OO아, 너 이제 총무 아니잖아. 신경 쓰지 마. 총무가 알아서 하겠지."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모임에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에서 숙소와 관련된 예약을 내가 진행했는데 숙소에서 준비한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대답에 화들짝 놀랐다. 오랜 시간 누적된 친구와의 관계의 틀은 오래된 것이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이 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몇 년 전부터 도대체 어떤 점이 불편한 건지 생각해 보고 고쳐보려 노력해도 잘 되지 않았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다른 친구가 같은 얘기를 했을 때는 대수롭지 않았던 일이 유독 이 친구에게만 예민하게 받아들여진다.
친구는 엄마와 닮은 면이 많다. 아마도 오래전 엄마와 닮은 친구가 좋아서 가까워졌을 것이다. 새로운 도전에 주저함이 없고 세심하게 주변 사람을 잘 챙기는 친구다. 어릴 때 친구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친구를 바라보던 시각은 내가 어릴 때 엄마를 바라보던 시각과도 많이 닮았다.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을 이 친구에게도 비슷하게 느낀 적이 많다. 관계의 삐걱거림을 따라가 보니 엄마가 보인다.
지난 회사생활을 떠올려보면 권위적인 상사에게는 반감이 들어 꼭 바른말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 이후의 회사생활은 예상대로 가시밭길이었다. 상사에게서 권위적인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전혀 다른 사람이고 다른 상황인데도 나도 모르게 발동하는 발작버튼이 있다.
아이가 세상과 처음 관계 맺는 대상이 엄마라고 한다. 나의 첫 대상인 엄마와의 관계에서 해소되지 않은 무거운 감정은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요즘 적응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유연하게 사고하고 사람들과 편안하게 지내고 싶다. 그보다 먼저 엄마와 편안하게 잘 지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