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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May 03. 2020

퇴사 후 한 달, 요즘 나는 행복하다.

백수일기



회사를 퇴사한 지 어느덧 한 달이 되었다.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는데 출근하던 길이 벌써부터 낯설게 느껴진다. 그동안 회사에 대한 울분을 터뜨리는 글을 쓰기도 했고 퇴사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글을 쓰면서 회사에 대한 앙금과 미련을 털어낼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회사에 대한 생각과 어지러웠던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글이 나에게 위로가 되는 것을 느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글의 소재가 끊임없이 떠올랐다. 사람들에게 서운했던 일이라던가 내가 회사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쓰고 싶었다. 아마도 퇴사 무렵에는 회사에 대한 가시지 않는 생각들과 상처가 남아서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담고 있는 생각을 다 글로 쓰진 않았다. 스스로에게도 글 속에서도 나는 담담해 보이고 싶었다. 무척이나 담담하게 글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글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솔직하게 드러났나 보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뒤 블로그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글을 남겼다. 내 글을 읽은 블로그 이웃들이 회사 생활이 많이 힘들었겠다며 댓글로 위로와 응원을 함께 남겨주었다. 힘들었다는 말을 들으려고 글을 쓴 건 아니었는데 막상 위로를 듣고 나니 조금 멋쩍어졌다. 오랜 시간을 공들여 투자한 것에는 이별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회사 사람들과 일 그리고 지난날의 고달픔까지 천천히 들여다보고 이별하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이 시간이 나에게는 무척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경험이다.


행복해지고 싶어 퇴사를 했고 한 달이 지난 지금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아침에 일어나 블로그에 글을 쓰고 일주일에 두세 번 요가를 한다. 블로그를 하다 보니 사진을 잘 찍고 싶은 마음이 생겨 사진작가에게 사진 찍는 법을 원데이 클래스로 배우기도 했다. 하루는 라탄공예 원데이 클래스에 다녀오고 어느 날은 방산시장에 가서 디퓨저 재료들을 직접 사서 디퓨저를 만들었다. 회사 다닐 땐 생전 안 하던 요리나 청소와 같은 집안일도 하고 가끔 셀프 인테리어로 집을 꾸미기도 한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소파에 앉을 틈도 없이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아 몸이 고된 날도 있다. 몸은 고돼도 너무 행복한 날들이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그 날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눈다. 남편과의 일상은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에 다닐 때도 퇴근하고 돌아오면 그 날의 일상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우리는 마음이 무거워지는 날이 많았다. 나는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집까지 끌고 와 남편과 함께 고민을 해결하려고 했었다. 스트레스가 많은 날은 어떤 사안에 대해 백분토론을 하듯 대화를 하고 둘이서 함께 해결책을 강구하려고 노력했었다. 나는 나쁜 기운을 집까지 끌고 오는 것이 남편에게 미안했고 남편은 나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없어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퇴사 후 요즘의 일상은 무척 행복하다. 남편과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신나게 떠들다 잠이 든다. 내가 행복해 보여서 남편도 전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마음의 평온과 여유가 생겼고 웃음이 늘었다.


포스코 사거리 근처에서 미팅이 있다는 남편을 따라오랜만에 길을 나섰다. 근처 카페에서 남편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글도 쓰고 책도 볼 요량이었다. 그동안은 집 근처만 돌아다녔는데 오랜만에 매일 출근했던 삼성동 근처에 갔다. 출근하던 길을 따라가니 감회가 새로웠다. 햇살이 따뜻했고 바람이 살랑 부는 기분 좋은 봄날이었다. 출근하는 길에는 그날의 업무를 생각하거나 업무적인 통화를 하느라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는데 카페에 가는 길에는 햇살도 바람도 느껴지는 하루였다.


포스코 센터에 테라로사가 크게 들어선 것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점심이 지난 오후에도 카페에는 사람이 꽉 차있었고 많은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회사 다닐 땐 미팅을 하거나 업무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을 자주 만났기 때문에 하루에 커피를 두세 잔씩 마신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여유롭게 글을 쓰러 카페에 왔다니! 지금의 일상이 어색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켰다. 글을 쓸 작정이었는데 쉽게 집중이 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카페 안의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대부분 근처 회사의 직장인으로 보였다. 직장인의 그룹에서 갓 벗어난 나는 약간의 소외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는 직장인의 그룹에 다신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의 삶이 아닌 또 다른 삶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충분히 행복하고 지금의 삶에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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