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선 소신 있길, 집에선 말 잘듣길 바라는 이중적 마음의 고백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의 욕구와 아이의 욕구가 부딪힐 때가 있다.
‘친구를 때리면 안 돼.’와 같이 나의 욕구가 도덕적이고 아이의 욕구가 잘못된 것이라면 쉽게 해결된다.
그러나 문제는 평범한 두 욕구가 맞물릴 때, 엄마의 욕구가 이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주로 낮잠시간에 이와 같은 충돌이 일어난다.
나는 아이를 낮잠 재우고 자유시간을 갖고 싶었다.
오후 1시, 마침 아이가 졸려하는 것 같아 옳다구나 하고 아이와 함께 안방에 들어갔다.
옆에 누워서 토닥이니 아이는 눈을 감는 듯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자장가부터 산토끼, 악어떼를 이어 슈퍼영웅 뽀로로까지.
잠이 오는 듯 보였는데 지금은 신이 나서 누운 채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얼씨구, 누워서 노래를 부르다 못해 발을 구르며 발박수도 친다.
'아이가 자면 커피 마시며 책 읽어야지' 했던 계획이 우수수 무너진다.
조급한 마음에 “크림아, 지금은 자는 시간이야. 얼른 누워.”하고 채근한다.
처음 곰 세 마리를 완창하던 그날은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연신 뽀뽀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연속으로 노래를 몇 곡이나 부르고 있는데도 감동은 커녕 아이에게 화가 났다.
아이는 똑같이 사랑스럽게 노래를 부르는데 내가 변한 것이다.
아이는 변한 것이 없으니 아이가 나의 마음을 알아줄 리 만무하다.
“엄마, 나 노래 잘하지?”
“응. 잘하네. 그런데 엄마 잠 와. 얼른 같이 자자.”
“응, 엄마 먼저 자. 내가 지켜보고 있을게.”라며 웃는다.
곧이어 아이의 관심은 선풍기로 옮겨가서 선풍기 앞에서 바람을 쐔다.
나는 아이에게 “누워도 선풍기 바람 와. 얼른 누워봐.” 라고 말하지만 아이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결국 "김크림, 이리 와." 정색하며 힘으로 아이를 번쩍 들어 매트리스 위에 눕힌다.
아이는 울기 시작한다.
아이가 우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한다.
아이는 졸리지 않아 엄마가 누워서 잠을 청하는 걸 지켜보며 혼자 노래를 부르고 선풍기 앞에서 바람을 쐤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나의 예상과 기대에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아이의 눈물을 보고 '이럴 일은 아닌데...' 라며 잘못을 깨달았지만, 이상하게도 멈출 수 없었다.
여기서 멈추면 훈육이 되지 않는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아이를 더욱 강하게 억압한다.
“열 셀 때까지 와.”
그때부터 울고불고 통곡한다. 10,9,8... 세어나가기 시작하면 아이는 울먹이며 “내가 셀 거야..”라고 말한다.
자신의 욕구를 무시하는 엄마에게 겨우 하고자 하는 바가 숫자세기라니.
울먹이며 숫자를 이어 세고선 내 옆에 와서 눕는다.
큰 저항 없이 많은 걸 양보한 아이를 보니 울컥 눈물이 맺힌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내 말에 심하게 반기를 든 것도 아니다. 아이는 낮잠을 자자는 엄마의 욕구와 자고 싶지 않은 자신의 욕구 사이 중도를 찾아 안방에서 조용히 놀고 있었을 뿐이다.
그에 비해 나는 중도를 찾지 않고 나의 뜻대로 아이를 재우려고 말도 안 되는 협박을 했다.
그런 내게 화를 내긴커녕 스스로 자기의 감정을 가다듬으며 숫자를 세고선 엄마 말대로 행동하는 걸 보면 죄책감이 밀려오고 아이가 안쓰럽다.
키즈카페에 가도 나의 잘못된 욕구는 계속된다.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하고 놀이기구가 많은 큰 키즈카페에 갔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다르게 아이는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그림 그리기만 계속했다.
그림 그리기만 30분째, 참을성이 바닥난 내가 "크림아, 저기 가면 회전목마도 있고 물총 놀이도 있어. 같이 가보자."라고 말했으나 아이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키즈카페에 온 것이니, 아이가 그림 그리며 기쁘다면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하지만, 엄마 마음은 그보다 나아가 평소 못하던 활동들을 체험시켜 주고 싶었다.
그 후 15분이 더 지나고, 결국 나는 계속 그림 그리고 싶다는 아이를 안아 다른 활동을 하러 갔다.
눈이 황홀할 만큼 재미난 놀잇감이 많았지만, 아이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울었다. 아이가 즐겁게 놀고 있었는데 나의 욕심이 아이의 기분을 망친 것이다.
아이를 달랜 후, 아이는 다른 놀이에 빠져들어 즐거워했다.
하지만 집에 와서 친정 엄마가 "오늘 키즈카페에서 뭐 했니?"하고 묻자 아이는 "내가 가자미 그리고 싶었는데 엄마가 못 그리게 해서 슬펐어요."라고 말했다.
3시간 행복하게 논 것보다 10분 운 것이 더 기억에 남은 것이다. 10분의 억울한 기억이 즐거운 기분을 압도한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했다.
자고 싶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아이의 욕구는 정당한 욕구였다.
하지만 자유시간을 갖고 싶고 다양한 체험을 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욕구에 엄마가 갖는 힘과 지위가 더해져서 아이의 욕구를 묵살했다.
누군가 내게 딸 아이를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냐고 물으면 고민 없이 소신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보다는 고집 센 아이가 낫다고 말이다.
그러나 현실을 달랐다.
나는 밖에서는 소신 있는 아이가 되어 타인의 생각에 이끌려가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아이가 되길 원했지만, 집에서는 내 말을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참한 아이가 되길 원한 것이다.
내 욕구를 이루고 싶은 마음에 아이의 욕구를 좌절시키고 주체적인 인간임을 무시한 것 같아 후회된다.
그런 날이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기를 끼적인다.
내일은 꼭 져야지.
내일은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안된다고 말하지 말아야지.
엄마가 오늘도 이겨서 미안해, 우리 아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핸드폰 알람이 많이 울려서 들어가보니 다음 메인에 이 글이 있네요!ㅠㅠ
다음주에 제가 쓴 첫 소설이 출간됩니다!
몽글몽글한 감성의 연애소설이예요^^
<너와 나의 여름이 닿을 때> << 누르시면 다음주에 출간될 연애소설을 미리 보실 수 있어요!
사진 출처 : 직접 촬영,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