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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눈 Aug 28. 2021

일상처럼 만나고 습관처럼 사랑하고

첫사랑을만난다면(1_소설)

“할 말 없어?” 포크로 파스타를 감으며 그에게 물었다.

“무슨 할 말?” 그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했다.



“왜 아무 말도 없이 밥만 먹어.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

“여름아, 또 왜 그래. 밥집이니까 밥 먹는 거지.”



“아니잖아. 밥 먹을 때도 길 걸을 때도 커피 마실 때도 말 안 하잖아. 장소만 옮기고 자긴 핸드폰만 보잖아. 날 안보잖아.”

“6년을 만났는데 어떻게 눈만 보며 이야기하니. 서로 잘 아니까 구태여 묻지 않는 거지.” 

그의 쌍꺼풀 없는 두 눈이 그제야 날 응시한다.



“자기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내가 요즘 무슨 생각하는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알아?”

“내가 더 신경 쓸게. 오늘 우리 6주년이잖아. 화내지 말고 밥 먹자.” 

그가 달래듯이 말했다. 그러나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넘쳤다.          




“나 왜 만나?”

“그게 무슨 말이야.” 그가 포크를 내려놓았다.


“나랑 있으면 말도 없고. 궁금한 것도 없고. 밖에 데이트하러 가자하면 피곤하다해서 매일 집에만 있잖아. 집에 있으면 우리 뭐하니? 잠만 자잖아. 그럴 때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줄 알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만해 이제. 우리 몇 달 뒤면 결혼이야. 너 결혼 전이라 생각이 많아져서 우울한 거야.”          




우리는 30대 중반이 되니 당연하다는 듯 부모님께 서로를 인사시킨 뒤 결혼 날짜를 잡았다. 어릴 땐 결혼은 아주 특별한 사람을 만나서 서로 없으면 죽을 것 같아 하는 영혼의 의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로맨틱한 상상과 달리 오래 만난 사람과 때가 되니 결혼을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사랑하지만, 그뿐이었다. 결혼하는 상대와는 사랑 그 이상의 떨림이 있을 줄 알았다.   




니체는 결혼을 하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나는 이 사람과 늙어서도 대화를 즐길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혼생활의 다른 문제는 순간이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은 평생의 괴로움이라 했다. 나는 그와 대화하는 게 더 이상 즐겁지 않다. 밥 먹었는지, 일어났는지 형식적인 안부만 물을 뿐인 대화에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일상처럼 만나고 습관처럼 사랑하고 싶지는 않았다.          




“늘 나만 물어보잖아. 자기 기분이 어떤지. 뭘 먹었는지. 회사에선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근데 자긴 내가 뭘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하지도 않고.. 그냥. 늘 똑같지 뭐. 별일 없었어. 이런 말 뿐이잖아.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조차 귀찮아?”


“아냐, 정말 별일 없어서 그런 거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원래 다 그래. 어떻게 계속 뜨겁게 사랑하겠어.”


“아니, 난 안 그래. 난 여전히 자기가 뭘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나만 안달 나 있는 거 같아. 나만 좋아하는 거 같아.”


“아냐, 나도 좋아해. 내가 표현을 못해서 그래.”





“자긴 늘 지친 표정이야. 데이트도 안 하고 이야기도 안 하는 데도 지쳐있다고. 그럴 때마다 다 내 탓인 거 같아서 얼마나 비참한 줄 알아? 그리고 중요한 일도 없으면서 핸드폰만 보고 있잖아. 자기 오늘도 내 얼굴보다 핸드폰을 더 많이 봤어.”


“그건...”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한 표정이었다.


“우리 더 이상 불행해지지 말자. 우리 그냥..”

“안돼. 그냥 요즘 일이 많아서 그래.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을 거야.” 그가 내 말을 끊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 지금의 자기와 6년 전 자기는 다른 사람이야. 난 예전에 날 좋아하던 빛나는 눈을 놓지 못하고 그리워했던 거 같아.”

“그러지 마, 여름아. 난 여전히 널 좋아해. 진심이야.”


“나 혼자만 동동대고 나 혼자만 바라보는 게 너무 힘들어. 둘이 같이 있는데도 너무 외로워. 이런 외로움 그만 느끼고 싶어. 자길 사랑하지만, 자기랑 있을 때 난 너무 작아져."

"……."



"태형씨, 헤어지자 우리. 부모님껜 내가 잘 말씀드릴게.”          




니체는 이별보다 두려운 것은 사랑이 변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변한 사랑을 인정하고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에, 헤어짐을 택했다. 차라리 그 편이 덜 아플 것 같았다. 둘이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으니까.          




말을 마치고 일어나서 식당을 나섰다. 초겨울이라 날씨가 쌀쌀한 데다 빗방울도 조금씩 떨어졌다. 거리엔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캐럴이 울렸고 찬란한 조명들 사이로 웃고 있는 연인들이 보였다. 빗방울이 굵어지자 길가의 연인들은 우산을 펴고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들을 바라보며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로 걸어갔다.




    

끼이익-     





타이어가 끌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밝은 불빛에 눈이 아팠다.          

“여름아!! 여름아!!!!!” 


나를 향해 울부짖는 태형씨와 함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희미한 구급차 소리까지 들은 뒤 정신을 잃었다.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첫사랑을 만난다면>이  <너와 나의 여름이 닿을 때>로 이름을 바꾸어 출간됐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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