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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눈 Nov 16. 2021

커피의 값어치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따뜻한 카페라떼가 주는 감정의 동요

 

 건조한 피부를 가진 나를 보며 친구들은 말한다. "너 커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거 아니야?"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이냐며 부정하지만, 내가 커피를 하루에 4잔 이상씩 마시는 건 사실이다. 어떤 일을 하든 내 손엔 커피가 함께 한다.



 커피에 조예가 깊어 원두 종류를 구분하는 것도 아니고 쏟아지는 졸음과 피곤을 이겨내기 위해서도 아니다. 커피의 향과 맛을 유독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카페인의 도움을 받으려는 것도 아닌데 왜 커피를 물보다 자주 마실까?



생각해보면 늘 기분이 문제였다.


커피는 내 기분이 투영되어 그 감정을 극대화시켜주었기에, 커피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치 운동할 때  EDM을, 분위기를 띄울 때 트로트를, 감성에 젖어들 때 발라드를 듣는 것과 같다.





따뜻한 카페라떼


고소한 우유의 부드러운 목 넘김과 입이 데일 듯 말듯한 긴장감이 따스한 느낌을 준다. 그 따스함이 내 마음에 스물스물 행복한 온기를 전달한다.


라떼를 마시면 감성적이고 이타적이게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 예전 일기나 사진을 찾아본다.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간 푸릇푸릇한 날들과 해맑은 웃음이 따스하면서도 어쩐지 씁쓸하기도 하다.



어린 날 내 곁을 지켜주던 사람들에게 새삼 감사하며 안부 문자를 넣는다.

'문득 네 생각이 나서 연락했어. 잘 지내지?'


라떼를 마시며 몽글몽글한 마음이 생겨날 땐 용기를 내었다가, 라떼가 식어가면 괜히 연락을 했나 전전긍긍한다. 몇 년 만의 연락인데 어색하진 않을까,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장은 이내 식어버린 라떼도 뜨겁게 데울 정도로 따스하여 연락할 용기를 준 라떼에게 고마울 뿐이다.




따뜻한 라떼는 특유의 따스한 긴장감으로 화를 누그러트리는 효과도 있다.


신랑 또는 아이에게 화가 났을 때도 라떼를 한 모금 마시고 나면 스르르 화가 풀리며 내가 잘못한 것들만 기억에 남아 한없이 미안하다. 그러나 이 역시 라떼가 식어가면 다시 없어질 감정이기에 라떼를 끊임없이 데우며 신랑과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 또는 일기로 남긴다. 라떼는 내게 몽글몽글한 인류애를 느끼게 해 주어 내가 선한 사람이고 싶도록 만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달리기 출발 신호탄과 같다. 육상 선수들이 달리기 전엔 온갖 생각을 하다가 출발 신호탄이 울리는 순간 달리는 것에만 집중을 하듯, 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순간 나만의 시간에 집중하게 된다.



이가 시릴 정도의 차가움은 내게 "자, 이제 네가 좋아하는 것을 시작해도 돼!! 너만의 시간이니 충분히 즐겨도 돼!!"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냥 달릴 때와 달리 신호탄이 있는 경주에선 내 팔다리의 움직임과 바람의 방향까지도 느껴지듯, 커피를 마시면 훨씬 섬세한 감각들이 살아난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 하는 청소는 맥없이 서글프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면 청소는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변하며, 물건들이 내게 자리로 되돌려달라며 손짓하는 것 같아 희열을 느낀다.

전공인 철학 공부 역시 그렇다. 그냥 철학 책을 펴면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커피와 함께하면 현자가 내 귓속에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것 같아 그들의 안목에 감탄하곤 한다.



하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가장 위력을 발휘할 때는 버터에 구운 식빵과 함께 할 때이다. 커피 없는 빵은 식사대용일 뿐이지만, 커피와 함께하는 빵은 내게 미각의 황홀함을 선사한다. 미각 세포 하나하나가 일깨워져 고소한 빵과 짭쪼롬한 버터, 달짝지근한 잼의 맛을 느낀다. (그 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그 시간만큼은 유일하게 아이에게 뽀로로 영상을 허용한다.)






카페라떼가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해 준다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나 자신만의 시간과 감각에 집중하게 한다. 이 외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내 몸과 마음이 충분한 휴식을 누릴 수 있게 도와주며, 믹스커피는 허한 마음을 달큼하게 채워준다.





커피 향과 맛, 그리고 카페인의 효력이 목적이 아니라면 구태여 건강하지 않은 커피를 마실 필요가 없으니 커피를 대신하여 내 기분을 극대화시켜줄 음료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알맞은 음료를 찾지 못했다.



인류애를 느끼게 해주는 카페라떼를 대신하기에 카모마일은 목 넘김이 부드럽지 않았다. 나만의 순간을 즐기게 해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대신하기에 주스의 단 맛과 탄산수의 톡 쏘는 느낌은 내 감정을 방해할 뿐이었다.



내 삶이 다채로워지도록 도와주는 커피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남도 생각하고, 너도 생각하고. 이 정도면 값어치 하지?"라고 커피가 묻는 것만 같다.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커피마시며 올리는 첫 에세이입니다!

제 소개를 뒤늦게 하자면..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28살 워킹맘입니당 :)



'첫사랑과 만난다면' 소설은 2주뒤에 다시 연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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