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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둥이

by 메리포핀스



- 홍역이 돌았다나 봐. 제 형제들은 다 죽고 검둥이만 남았대. 새끼 때부터 겁이 많아서 어미품을 안 벗어나던 검둥이만 사람손도 안 타고 홍역도 안 걸리고. 그래서 살아남은 것 같아. 겁이 많아서. 혼자만 남은 게 불쌍하잖아. 그래서 데려왔어.



검둥이가 아빠와 함께 우리 집에 오게 된 연유다.

시골마을에 특별한 관리랄 게 없는 어느 집에서 형제견이 홍역으로 다 죽고 겨우 살아남은 약하고 겁 많은 믹스견 새끼가 방치된 게 짠해서, 눈도 못 맞추는 새끼강아지를 달랑달랑 데려왔단다.


여전히 겁 많고 짖는 법 없이 사람 눈도 잘 안 맞추지만 세상 순하고 점잖은 평화주의견.

치대거나 물거나 핥거나 정신 사납게 뛰거나 하는 법이 없지만,

저기 시간 나면 나 좀 쓰다듬어 줄래, 산책 갈 거야? 바빠? 그럼 기다릴게 하는 듯 점잖게 눈빛으로만 어필하는 동안견.

내가 앞에서 까불며 폴짝폴짝 뛰어주면 그제야 수줍게 따라 뛰는 점잖은 견.


동네개들은 본척만척 시크하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무관심,

오로지 냄새 맡기에 충실한 견.

줄을 당기지도 땡강 부리는 법도 없이, 검둥아 하고 부르면 바로 돌아와 옆에 딱 붙어서는 순한 똥강아지.

동네 고양이 까치에게 밥도 물도 털도 다 내어주고, 너 만만한가 봐 왜들 너한테 와서 그런데 하고 놀려도 묵묵히 쳐다만 보는 평화유지견.


내가 이름만 불러도 쪼르르, 살랑살랑, 웃는.

일 년에 몇 번 못 봐도 온몸을 맡기며 마음을 내주는 친구.


그런 검둥이가 늙어간다. 동안이지만 털과 코가 발바닥이 나이가 보인다. 어느 순간부터 누나라고 하기 민망해진 어쩌면 이젠 네가 삼촌을 지나 할아버지이지 않을까 싶은 그런 검둥이가, 처음으로 배웅을 하지 않았다.


야, 우리 곧 볼 거야. 이번엔 좀 빨리 볼 거니까 서운해하지 말고. 엄마 아빠랑 잘 있가 건강하게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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