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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Feb 22. 2018

슬퍼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나는 애인과 함께 사는 30대 레즈비언이다. 우린 연애 반년 만에 동거를 시작했다. 투룸을 구하기엔 지갑이 얇았고, 길거리에서 사랑하기엔 얼굴에 깐 철판이 얇았다. 형편에 맞춰 다섯 평짜리 원룸을 구했다. 아무리 사랑해도 도망갈 곳 하나 없는 좁은 공간에서 같이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평화를 위해 우린 각자의 역할에 이름을 붙였다. 예를 들어 월세부터 자잘한 공과금, 간식 사기까지 돈 관리하는 나는 재무부 장관, 아침에 눈 뜨면 창문 열고 방바닥 닦는 게 행복하다는 그녀는 환경부 장관이다. 그저 애인끼리 하는 시시한 농담이지만, 이렇게 이름 붙이면 사소한 공과금 수납이나, 방 청소, 설거지가 이 터전을 지켜주는 위대한 일로 느껴져 좋다.


칸막이 행정도 하지 않는다. 힘든 날은 못 하겠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쌓인 그릇보다 서로의 힘듦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내가 “속상해.”하면 그녀가 곁에 바짝 다가와 나와 같이 억울한 표정으로 “속상했어?” 한다. 별거 아닌 그 말에 마음이 풀린다. 그녀의 “속상했어?”는 내게 만병통치약이다. 아무것도 아닌 그 한마디,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우리의 보금자리. 나는 그래서 이 다섯 평 원룸이 좋다. 여기 있을 때 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사람처럼 자유롭고 편안하다.
 
가끔 집안의 공기가 바뀔 때도 있다. 그건 각자의 부모님과 통화를 할 때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늘 한쪽은 없는 사람처럼 숨을 죽인다. 결혼한 친구들은 전화를 바꾸지 않으면 시부모님이 삐치신다는데, 우리는 전화를 바꾸면 삐칠 일로 끝나지 않는다. 이 투명인간 노릇이 익숙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그다지 서럽거나 섭섭하진 않다. 어느 정도 무감해지기, 어른이 되면서 배운 삶의 노하우다. 그렇지만 가끔 쉽게 이 무감함이란 덮개가 벗겨진다. 시부모님의 병간호를 하느라 스트레스받는 친구의 카톡을 받을 때, 나는 친구가 안됐다가도 한편 씁쓸하다. 그녀의 어머니가 아프면? 나는? 병문안 정도야 가볍게 가겠지만 친구처럼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런 걱정을 하면 그녀는 “왜 못 와, 우리 엄마가 잡아먹냐!” 한다. 그 뻔뻔하고도 짓궂은 표정이 너무 사랑스러워 나는 “결혼하자!” 외친다. 그럼 매사에 정확한 그녀가 묻는다. “어떻게?” 난 딴청을 피우며 화제를 돌린다. “나랑 결혼하기 싫어?” “그런 뜻이 아닌 거 알잖아. 그럼 엄마한테 말할 거야?” 할 말이 없다. 부모님한테 말하면 지금의 행복마저 깨질까 두렵다는 말 대신 나는 우리가 평생 같이 살길 약속하면 그게 결혼이라고 툴툴댄다. 그녀가 지금 사는 것과 결혼이 뭐가 다른지 묻는다. 나는 진지하게 설명한다. “자, 봐봐. 동거는 끝나기가 더 쉬워. 비정규직이나 마찬가지지. 결혼은 평생을 약속하는 거니까 정규직이고.” 나는 그녀 앞에만 서면 갑자기 ‘결혼만능주의자’가 된다. ‘결혼하겠다’는 그녀의 대답이 모든 불안을 해소해줄 것만 같이. 매사에 진지한 그녀가 한참을 고민하더니 입을 연다. “그럼 난 비정규직이 더 좋은데?”


결혼이란 한 단어에서 읽어내는 의미가 다르니 이 대화는 사실 끝이 없다. 당사자 둘의 합의부터 가족, 사회, 제도의 인정까지 그 층위도 다양하다. 어쩌면 우리는 결혼에 대해 이성애자 부부보다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우기는 나 역시 결혼이 모든 삶의 불안을 녹여줄 용광로가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동거가 더 좋다는 그녀도 우리 둘이서만은 풀기 어려운 삶의 문제가 있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장단 없는 선택, 명암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마음의 문턱에 늘 걸리는 건 동성애자인 우리는 제도적 결혼을 선택할 권리도, 선택하지 않을 권리도 없다는 사실이다.


내 나이 서른셋,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시댁과의 갈등을 이야기한다. 그 고충을 들으면 나도 답답해지지만, 서로 미워할 수 있는 것도 관계라면 관계다. 그녀와 나는 미워하거나 좋아하기도 전에 서로의 부모님에게 ‘없는 존재’다. 친구는 ‘그게 속 편한 거다’라고 위로하지만, 나도 그녀의 동반자로서 의무를 다하고 싶다. 그녀가 힘들 때 곁에 있어 줄 수 없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하고 말문이 막힌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런데 그녀와 결혼할 수 없다. 그건 앞으로 그녀의 부모님과 마주 앉아 밥 먹을 일이 없다는 거, 용돈을 얼마 보낼지 다툴 일도, 명절에 어딜 먼저 갈까 머리 아플 일도, 그녀의 엄마와 갈등을 빚어 속상할 일도 없다는 거다. 기쁜 날이나 슬픈 날 모두 한결같이 나는 축하도, 위로도 떳떳이 할 수 없다.
 
사랑하는 만큼 그녀의 삶 속에 들어가고 싶다. 그녀가 아플 때 수술 동의서에 사인할 자격이 안 돼 절절매게 될까 두렵다. 아무런 법적 연결고리가 없는 우린 가족의 인정 없이는 병실조차 들어갈 수 없을지 모른다. 혹 그녀가 먼저 떠난다면...유품 하나쯤 간직하고 싶다. 신문에서 본 것처럼 그런 일로 유가족에게 고발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친구들은 남편이 죽으면 슬플 걸 걱정하는데, 서로가 아니면 어떤 연결고리도 증명할 수 없는 우린 슬퍼할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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