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에어컨 안 돼서 왔더니 콤프가 나갔대. 수리비 폭탄 ㅠㅠ"
작년 여름부터 엄마 차의 에어컨이 시원치 않았다. 아빠는 덥다고 성질을 부리며 내 차만 탔다. 잔소리를 일 년을 해도 고치질 않더니 엄마도 이번 여름 더위가 무섭긴 했나 보다. 견적을 물어보니 36만 원이란다. 나는 바로 36만 원을 엄마 계좌로 보냈다. ”카드 할부하지 마시고, 제가 보낸 돈으로 결제하세요.“ 카드 할부 이야기를 하지 말까 5초쯤 망설였는데, 참을 수 없었다. 작은 돈으로 큰 빚을 만드는 재주가 있는 엄마를 알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작은 구멍을 메워 큰 구멍을 예방하는 법을 배웠다. 오늘도 36만 원이라는 작은 구멍을 메운다. 입금 문자가 떴는지,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니, 나는 가스 충전만 하면 되는 줄 알고 3-4만 원 들 줄 알고 온 거야."
“괜찮아, 엄마. 내가 수리하라고 여러 번 말했잖아.”
“그니까, 나는 콤프까지 갈 줄 몰랐지. 내가 새 거 말고 헌 걸로 갈아달라고 해서 그나마 몇 만 원 아낀 거야.”
“괜찮다고, 엄마. 나한테 설명 안 해도 돼.”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마가 운다. 전화기 너머로, 속사포처럼 변명을 하던 엄마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운다. 좀 더 다정하게 말할 걸 그랬나. “능력 없는 엄마 때문에 너만 고생하고…” 엄마는 더 말을 잇지 못한다. 나는 고생이 아니라고, 이번 달에 보너스를 받아서 마침 돈이 있었다고(보너스 받은 적 없다.)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엄마는 “네가 고생해서 번 돈을 허투루 쓴다."며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카센터에 서서 우는 육십 대의 엄마를 상상한다. 36만 원 때문에 우는 엄마를. 내 마음도 바짝 탄다. 삼천육백만 원 정도였으면 좀 덜 속상했을까. "엄마 울지 말고 어여 고치고 들어 가. 더워."
삼천만 원의 빚을 메워줄 때 엄마는 말했다. "엄마가 꼭 갚을게." 그 말은 하지 말지. 2년 뒤, 엄마는 물려받은 유산으로 중고 소나타를 뽑았다. “어디서 난 차야?” 내가 물었을 때는 지인이 준 차라고 말했다. 누가 엄마한테 차를 줘. 속으로만 생각하고 내뱉지 않았다. 아빠를 통해 외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산 차라는 걸 알게 된 후, 빚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안도 후에는 서운함이 몰려왔다. 돈을 갚는다고 해도, 받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갚고자 했던 엄마 마음은 받았을 것이다. 엄마는 왜 시늉조차 하지 않은 걸까.
그 뒤로 난 엄마를 속죄할 기회를 놓친 사람으로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매달 보내는 생활비에 감격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냈지만, 내게는 그저 구멍을 메운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내가 고생한 돈으로 자동차 에어컨을 수리했다고 운다. 37만 원 때문에. 나는 이 습기 찬 관계가 싫다. 엄마는 울음으로 다시 나를 감정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이고, 우리가 얼마나 애틋한 관계인지를 환기한다. 내가 애써 바짝 말려온 감정에 울음으로 물기를 댄다. 딱하고, 지겹고, 안 됐고, 싫고, 안쓰러운 마음이 올라온다. 나는 그냥 엄마를 관리 대상으로 보고 싶은데, 그녀는 나를 자꾸 끌어들인다.
오늘 엄마는 친구들에게 자랑했을까. 딸이 차를 고쳐줬다고. 자식 자랑이 낙인 사람이니까. 때맞춰 제철 과일을 보내고, 엄마가 좋아하는 전복을 보내고, 매달 용돈까지 챙기는 나는 엄마 친구들에게 꽤나 효녀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왜 이러는 걸까. 엄마가 싫으면, 성실하지도 않으면 될 텐데. 나는 성실함으로 복수한다. 내가 엄마한테 받고 싶었던 사랑을 전시하면서. 매달 약속한 날을 어기지 않고 보내는 용돈 20만 원,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군말 없이 내미는 도움, 잊지 않고 보내는 음식들. 예상할 수 있고, 언제든 받을 수 있다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