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거짓말을 반복하고, 다 찾아낸 줄 알았던 빚이 또 나올 때는 엄마가 빨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빚 갚느라 평생이 갈까 막막하고 두려웠다. 하지만 그럴 때면 죄책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돈 몇천만 원에 엄마가 죽었으면 한다니. 내 돈을 나중에 어떻게든 갚겠다던 엄마는 2천만 원의 유산 상속받았을 때, 말없이 차를 뽑았다. 아빠는 화를 냈지만 나는 덤덤했다. 나는 4천만 원 때문에 엄마가 죽었으면 한 사람이다. 뭘 더 바라겠는가. 가족에 대한 환상이 깨지자, 기대도, 고통도 한동안은 잠잠해졌다.
엄마 빚을 알게 된 후, 2년 동안 아빠의 연금이 들어오는 통장을 압수하고, 공과금을 직접 납부하고, 생활비만 떼어서 엄마에게 주었다. 엑셀 파일을 만들어 연간 예산을 짜고, 가계부를 썼다. 엄마의 신용카드를 자르고, 일주일에 두 번 신용조회를 해 엄마가 빚을 지는지 감시했다. 엄마 집에 갈 때마다 옷을, 신발을 그만 사라고, 먹지도 않고 버리는 우유를 꼭 사 먹어야겠냐고 잔소리했다. 하루는 신용조회를 하니까 엄마가 새로 만든 신용카드가 떴다. 손이 떨리고 눈물이 차올랐다.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는 걸까. 엄마는 나를 괴롭히려고 낳은 걸까.
전화를 걸어 따지는 내게 엄마가 그만하라고, 그만해도 된다고 말했다. 대책이 없었지만, 더는 무리였다. 매일 마음을 졸이면서 엄마를 감시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내가 사랑받고 보호받고 싶었던 사람을 의심하고, 무언가 감지되면 닦달하며 사는 건 지옥 같았다. 내가 그만하고 싶다고 우니까 엄마가 울먹이며 말했다. “너를 낳고, 내 생에 가장 기뻤어. 그런 네가 마음 졸이며 사는 게 엄마는 너무 마음이 아파. 그만 내려놔.” 나는 아팠다. 그 말을 믿을 수 없어 아팠고,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라 더 아팠다.
생활비 관리에서 손을 뗀 후 나는 엄마에게 매달 20만 원을 보낸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그만큼만 하겠다는 결심이다. 정말 더는 빚이 없는지, 아직 내가 모르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뒤로는 잠잠했다. 코로나 이후 호프집을 접어서 빚질 일이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출렁인다. 엄마의 사소한 거짓말 – 가격표가 뻔히 붙어 있는데도 “이 옷 산 거 아니야, 누가 준 거야.” - 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거짓말 뒤에 가려진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가 나를 덮칠 것만 같다. 내게 상처로 남은 게 빚이 아니라 거짓말이란 걸 엄마는 알까?
얼마 전, 엄마는 다시 여행 적금을 들자고 했다. 나는 죽어도 싫다고 했는데, 엄마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얼굴로, 그냥 재미로 하자고 말했다. 나는 실랑이하기 싫어 1년 치 여행비를 한 번에 보냈다. 엄마는 김이 샌다고 실망했지만, 열두 번이나 마음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새 여행 적금을 들기 전에 엄마한테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여행 적금을 몰래 써서 미안해. 우리 딸이 고생해서 번 돈을, 마음 써서 매달 보낸 돈을, 그 마음을 몰라줘서 엄마가 미안해”. 엄마는 너무 미안해서 그 말을 하지 못했다.
가끔 엄마 집에 갔다가 넉 달이 밀린 아파트 관리세 고지서를 보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자동이체가 잘못되었다는 엄마의 날 선 변명을 믿기 힘들지만, 넘어갔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면 평온한 일상을 하루라도 더 벌고 싶다. 취조하러 집에 왔냐고 성을 내는 엄마의 얼굴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까. 사채 시장의 시스템에 이용당하며 착취당하는 빈민의 얼굴을? 딸의 돈까지 손을 대고 거짓말을 하는 절박한 한 인간의 얼굴을? 왜 이리 말랐냐며 직접 끓인 채개장을 떠주는 주름진 엄마의 얼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