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밤늦게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너네 엄마가 내 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천만 원이나 받았다. 이걸 어떡하냐.”
천만 원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밤새 자지 못하고, 다음날 퇴근하자마자 엄마를 찾아갔다. 집은 비어있었고, 정신없이 우편함과 서랍, 장롱을 뒤졌다. 관리비부터 수도세, 핸드폰 요금까지 빨간 글씨로 선명하게 ‘체납’이라고 적힌 통지서들이 쏟아졌다. 미즈사랑에서 온 대출금 상환 독촉장도. 소송과 압류가 있을 수 있다는 건조한 협박의 말들을 떨리는 마음으로 읽었다.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통지서를 들이밀며 물었다.
“엄마, 이게 다 뭐야?”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통지서 뭉치를 뺐으며 엄마가 말했다. “이게 어떻게 아무것도 아니야? 아빠 카드로도 천만 원이나 빌렸다며?”, “금방 갚아. 걱정하지 마.” 금방 갚을 빚이면 이런 사달이 나지 않았다고 소리를 질렀다. 빚이 얼마나 남았는지만이라도 알려달라고 했지만, 엄마는 고개를 돌린 채 입을 닫았다. 엄마에게서 더 나올 게 없다고 생각한 난 서랍을 뒤졌다.
엄마가 악다구니를 쓰며 그만하라고 날 잡아끌었다. 입고 있던 티셔츠가 늘어날 정도로. 나도 온 힘으로 엄마를 뿌리쳤다. 넘어진 엄마가 다시 달려들었다. 뿌리치면 다시 잡아당기고, 뿌리치고 당기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바닥에 널브러진 엄마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말해주면, 말해주면 되잖아.” 눈물로 마스카라 범벅이 된 엄마가 말했다. “우리 딸 진 빠져, 그만해.”
네 시간의 실랑이 끝에 엄마 핸드폰을 뺐었다. 사채업체와 신용카드사에서 보낸 문자를 일일이 확인해 엄마가 매달 갚는 이자만 백만 원이란 사실을 알았다. 원금은 확인할 때마다 늘었다. 이런 식으로는 끝도 없을 것 같았는데 인터넷 신용조회라는 것을 알아내 4천만 원의 빚을 찾았다. 20년도 넘은 오랜 호프집을 운영하는 엄마가 그 돈을 갚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러시앤캐시 300만, 미즈사랑 200만, 웰컴론 300만. 서류 심사 없이 전화 한 통으로 받을 수 있는 소액대출들이었다. TV 광고로만 보던 사채를 쓰는 게 우리 엄마였다니. 엄마는 이 돈을 다 어디다 쓴 건가. 집에는 비싼 물건이라고는 없었고, 명품을 사거나 사치 부리는 사람도 아니었다. 엄마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채 이자를 계산해 보고야 의문이 풀렸다. 사채는 쉽게 생각하면 돈을 주고 돈을 사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300만 원을 좀 더 빨리 쓰려고 400만 원에 사는 꼴이다.
호프집을 운영하는 엄마에게는 월세나 술값 등 융통할 돈이 당장 필요한 순간이 있었을 것이고, 다달이 갚을 이자 6~7만 원 정도는 괜찮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조금만 하며 빌리던 사채가 원금 갚을 시기가 되어서야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엄마의 빚을 추적하며 동생과 나, 그리고 엄마가 여행을 가자며 만든 통장을 확인했을 때였다. 파란색 통장을 열자 3만 원, 5만 원 2년 동안 매달 꼬박 내가 입금한 금액이 찍혀 있었다. 엄마와 동생은 한두 달 보내다 말았다. 통장 잔액은 0원. 당시 최저임금을 받던 내가 매달 3만 원을 보낼지 5만 원을 보낼지 고민하며 보낸 돈들이었다. 내가 “우리 어디로 여행 가지?”하고 카톡을 보낼 때마다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내 돈과 동생 돈까지 털어 빚을 갚았다. 갚지 않으면 유일한 재산인 집이 날아갈 판이었다. 그 후 엄마는 세 번 정도 300만 원의 사채를 썼지만, 성실한 내 모니터링에 바로 걸렸다. 돈을 갚겠다고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직원은 “고객님, 상품 더 이용하실 수 있으신데, 바로 갚으시겠어요?”라고 물었다. 빚 갚는 걸 만류하는 빚쟁이라니. 엄마는 자기가 이 지독한 돈 장사에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