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밤 Oct 16. 2023

토마토케첩 스파게티

1999년, 맏딸인 난 급변하는 집안의 상황을 식탁의 변화로 감지했다. 식탁에는 찌개 대신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 두 개나 죽 두 개가 올라왔다. 아침, 저녁으로 밥을 짓거나 피자나 토스트같이 특별한 간식을 만들던 엄마가 호프집을 인수한 뒤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는 허옇게 화장이 뜬 얼굴로 동생과 나를 깨우고 아침을 먹인 뒤 다시 잠들었다. 늘 저녁 여섯 시면 나가 새벽 네다섯 시는 되어야 들어왔기 때문이다.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만 원짜리 한 장이 식탁에 놓여있었다.


그 시절 아빠는 언젠가부터 출근하지 않고 TV 앞만 지키다 저녁이면 술을 마시러 나갔다. 그때 아빠는 뭐든 다 포기한 사람처럼 보였고, 엄마는 무엇 하나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베이지색 알루미늄 패널로 된 컨테이너 집에 수도가 끊겼을 때 옆집에 사정해 물을 받아온 것도, 패널 틈새로 드나드는 쥐를 잡은 것도, 물이 새는 바닥을 막은 것도 늘 엄마였다. 나는 지친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매일 밤 초조했다.


열다섯 살 내가 엄마를 도울 유일한 일은 알아서 밥을 해 먹는 거였다. 처음에는 엄마가 해놓은 밥을 간장이나 고추장에 비벼 먹었다. 내가 만 원을 쓰지 않고 그렇게 동생과 먹는다는 것을 눈치챈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냉장고에 계란을 채웠다. 나는 점점 노른자를 터트리지 않고 프라이를 하는 데 능숙해졌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동생이 밥투정을 했다. “또 계란밥이야.” 오만상을 쓰는 동생이 미웠지만, 이해도 갔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먹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을까. 점점 동생은 밥 대신 첫 번째 서랍 가득 채운 쫀드기나 아폴로, 달고나 같은 불량식품으로 배를 채웠다. 나는 동생이 좋아할 만한 반찬이 없는 밥상을 차릴 때마다 긴장했다. “밥 먹어.” 소리에 답이 없으면 한 살 어린 동생의 등을 때려가며 억지로 밥을 먹였다.


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동생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 필요했다. 어느 날 TV에서 하얀 모자를 쓴 요리사가 나와 집에서 스파게티 만드는 방법을 소개했다. 그 시절 스파게티는 생일과 같이 특별한 날 경양식집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엄마와 큰 마트를 가는 날을 노려 스파게티 면을 샀다. “오늘 맛있는 거 해줄 거야. 간장밥 말고.” 내 말을 들은 동생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긴장된 마음으로 냉장고에 있는 오뚜기 토마토케첩을 꺼냈다. 면을 삶고 건져 빨간 케첩을 뿌렸다. 볶고 나서 먹어보니 너무 시었다. 곰곰이 궁리하다 고추장 반 숟가락과 참치를 넣었다. 신맛이 잡히고, 적당히 달고 시고 고소한 맛이 났다. 찬장 꼭대기에서 잘 쓰지 않던 포크와 둥근 접시도 꺼냈다. 동생이 낯선 음식과 식기를 좋아할 거란 내 예상은 들어맞았다. 늘 깨작거리며 속을 태웠던 동생의 손놀림이 그날만은 나를 기쁘게 할 만큼 빨랐다.


그 시절 엄마, 아빠는 만나기만 하면 돈 이야기로 목청을 높였다. 아빠가 없는 날이면 엄마는 맏딸인 날 깨워 밤새 하소연을 했다. 돌이켜 보면 집에서 부모님한테 시달리지 않고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시간은 동생과 저녁 먹는 시간뿐이었다. 내가 무언가 기여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도 그때였다.


돈 때문에 매일 밤 다투는 엄마, 아빠를 보는 불안도, 이불을 뒤집어써도 들리던 엄마의 울음소리도, 빨리 돈 버는 어른이 되고 싶어 조바심치던 마음도 주방에 서면 잠잠해졌다. 내가 만든 오뚜기 토마토케첩 스파게티가 우리 집의 불행을 해결할 수는 없었지만, 오늘 이 한 끼를 내 손으로 해결했다는 만족감은 밤마다 엄습해 오던 무력감으로부터 매일 나를 구했다.

                     

이전 07화 명절 음식 놓지 못하는 엄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