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첫째 아이는 자기를 닮아 이해가 갔는데, 둘째는 도무지 모르겠다고. 이해가 가지 않으니 자꾸 아이와 힘 겨루기를 하게 된다고. 어른인 자기가 아이에게 윽박지르고 힘으로 눌러 이기려 하는 게 괴로우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으니까 자꾸만 힘을 쓰게 된다고. 오늘도 반찬 투정을 부리는 아이와 다투고 나오는 길이라고.
아이를 키워본 적 없는 나는 조금 놀랐다. 부모도 자식마다 다른 마음이 들 수 있구나. 당연한 건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엄마와 내가 그랬다. 엄마는 가끔 나를 보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초등학생인 내가 신호 위반을 하지 않겠다고 앞서 가는 엄마 손을 놓고 고집스럽게 서 있을 때, 차에 타자마자 엄마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고 불안해하며 잔소리할 때, 오래 쓴 그릇들을 내놨는데 아깝다며 다시 집으로 들여왔을 때, 온 집안 전등불이며 보일러며 끄고 다닐 때. 엄마는 몸서리를 쳤다. “쟤는 누굴 닮았나 몰라.”
친구의 말을 듣고야 엄마가 한 사람으로 이해가 갔다. 자식이라고 낳고 나면 자동 입력 되듯이 이해가 되는 게 아니었구나. 친구나 연인, 직장 동료 혹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처럼 도무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위로가 됐다. 엄마는 나를 미워한 게 아니라, 그저 이해하기 어려웠을 뿐이라고.
하지만 이해받지 못한다는 건, 내겐 외롭고 억울한 일이었다. 고2 시험기간이었다. 집에 가면 잠들게 뻔하니 친구들하고 같이 학교에서 밤새 공부한 적이 있다. 새벽 6시쯤 엄마와 아빠가 도시락을 싸가지고 찾아왔다. (마흔이 된 지금 생각하면 나는 얼마나 사랑받았던 걸까 싶다.) 엄마가 보온도시락에 싸 온 밥과 황탯국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났고, 나는 밤을 새 입이 썼지만 엄마 마음을 생각해 밥을 먹었다. “왜 이렇게까지 공부를 하는지 엄마는 이해가 안 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늘 들었던 익숙한 말, 엄마의 찡그린 표정. 순간 나는 먹고 있던 도시락통 전부를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엄마, 가. 가라고.” 순간 참지 못하고 한 행동인데 바닥에 흩어진 밥과 국을 보니 당황스러웠다. 그런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사춘기의 공부 유세치고는 강렬했던 그날의 기억을 친구에게 고백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표현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도시락을 던지지 않고 이렇게 말했을 거라고. “엄마, 나는 엄마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한 거야. 우리 딸 공부 열심히 한다고, 기특하다고 그 말이 듣고 싶었어. 나는 엄마가 나를 안쓰러워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면 좋겠어.” 사랑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다는 말이 왜 그리도 어려웠을까. 문득 그날의 일을 엄마, 아빠도 기억할지 궁금하다. 그날 쏟아진 음식들은 누가 어떻게 정리했을까.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걸 치우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리다. 그날 일을 기억하냐고 물으면,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