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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Oct 15. 2023

명절 음식 놓지 못하는 엄마

가만히 누워서 생각한다, 왜 이렇게 화가 날까

SNS에서 중년 남성의 인터뷰를 봤다. “비행기 결항이 돼서 여행 간 가족들과 생이별한 상태입니다.” 이 뉴스가 화제가 된 건 생이별을 말할 때 남성이 슬며시 웃기 때문이다. 게시물의 제목은 “감출 수 없는 웃음”. 명절만 되면 나도 이 남성의 숨길 수 없던 기쁨에 공감이 간다.


결혼하지 않은 나는 들릴 시댁도 없는데, 명절에 부모님만 만나고 오면 넉다운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추석 전날 집에 가니 엄마는 동태전을 부치고 있었다. 이미 녹두전과 갈비찜, 더덕구이 등을 한 다라 해놓은 뒤였다. "엄마, 나 오면 같이 하지." 전을 부치겠다고 팔을 걷었지만, 엄마는 주방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번거롭단다. 전날부터 장을 봐서 해놓은 음식으로 저녁을 먹는데 엄마가 입맛이 없는지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나도 많이 먹는 편이 아니라 동태전 2개, 녹두전 반 개를 먹었다. 냉장고 수북한 전들은 냉동실에 들어가 잊힐 게 뻔하다. 속상한 마음에 한마디 했다. "엄마, 나는 음식 안 하고 편한 엄마가 더 좋아.” 아빠도, 동생도 같은 말을 보탰다. 엄마는 참았던 짜증을 내보였다. “해줘도 난리야. 해줘도.”


추석 당일, 전날 힘들어서 못했던 잡채를 했다. 당면 삶는 냄비를 들여다보니 엄마가 소리친다. “냅둬, 십 분은 더 있어야 돼.” 나는 휘저어야 당면이 들러붙지 않는다고 말했다. 티브이를 보면서도 계속 당면을 내버려두라는 엄마의 성화에 난 당면을 몇 번 휘젓다 말았다. “아이고, 당면 불겠다.” 엄마가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향하자 그 뒤를 따랐다. “무거우니까 내가 할게” 웬일인지 엄마가 물러선다.


당면을 채반에 붓고 찬물을 틀자 엄마가 소리친다. ”당면은 찬물에 헹구는 거 아냐.” 엄마가 아직 뜨거운 당면에 간장을 붓고 고무장갑을 끼고 휘젓는다. “안 뜨거워?” 뜨거운지 엄마는 손을 몇 번이나 들어 흔든다. 당면을 먹더니 불었다며 나에게 화를 낸다. “네가 알아서 한다며?” “내가 언제 알아서 한 댔어? 휘저어야 안 붓는다고 했지.” 평소 같으면 ‘내 탓이오’하고 말 텐데, 운전을 두 시간 하고 와서인지, 생리를 시작해서인지 짜증이 난다. “이것 봐, 이래서 무리하면 안 좋다고. 옆 사람한테 결국 짜증을 내잖아. 나는 피곤해서 짜증 내는 엄마보다, 아무것도 안 하고 편한 엄마가 좋다고!”  


노력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는커녕 추석 내내 왜 요리를 했냐고, 사 먹으면 된다는 소리를 들은 엄마는 서운했는지 결국 눈물을 보였다. 하지만 가족들 누구도 움찔하지 않았다. 지난 설에도, 작년 추석에도 반복된 똑같은 레퍼토리다. 음식을 하고, 엄마가 힘들고, 힘든 엄마를 보며 나와 동생, 아빠가 잔소리를 하고, 엄마가 울고. 이번에 달랐던 건, 엄마가 훨씬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꼬치전도 안 하고, 송편이나 만두도 안 빚었는데 엄마는 피곤한지 잇몸이 퉁퉁 붓고, 몸살이 나 버렸다. 농사를 지으며 농장에서 생활하는 아빠한테 다녀오는 길, 아빠가 준 호박이며 밤이며 무거운 물건을 들고 엄마랑 집을 올라오는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엄마 얼굴을 보니 화가 버럭 났다. “그러게 다 먹지도 못할 농산물을 왜 거절도 못하고 다 받아와. 나도 이제 마흔이야 엄마. 들고 나르는 거 이제 힘들어.”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옆에서 보던 중년 여성이 안쓰러웠는지 “제가 좀 들어드릴게요”한다. 괜찮다고 거절했는데도, 웃으며 도와주겠다고 한다. 민망한 마음에 엄마에게 다시 화를 냈다. "그러게 내가 아침에 카트 꺼내자고 했잖아. 왜 그것도 안 해 줘." 말하면서도 멈추고 싶었는데, 멈춰지지가 않았다. 엄마가 힘든 게 싫다면서, 나는 왜 이렇게 엄마를 비난하고 몰아세울까. 모든 게 엄마 탓인 양 화가 나는 걸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내 나는 아침에 왜 카트를 꺼내주지 않아 이 고생을 시키냐고 엄마한테 짜증을 부렸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소파에 주저앉는 엄마를 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짜증내서 미안하다고 급히 사과하고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사과를 하고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눈물이 줄줄 났다. 가만히 누워서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작년까지만 해도, 엄마 음식하는 걸 힘들어 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잇몸이 다 부어 해놓은 음식도 제대로 먹질 못했다. 잇몸이 부은 자리인지 얼굴도 퉁퉁 부었고, 눈두덩이도 부어 주저앉았다. 움직일 때마다 "에구" 소리를 내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불안할 만큼 휘청였다. 엄마가 많이 늙었구나. 예순세 살이면, 힘에 부칠 때도 됐지 하면서도, 속상했다. 우리 엄마가 정말 늙었구나, 어쩌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얼마 전에 장례식장에 다녀온 탓도 있었다.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가. 생각하면 엄마가 너무 아깝다. 스물넷에 시집와서 명절마다 큰집에 가서 전을 부치느라 허리 펼 틈도 없던 엄마가, 제사에서 해방된 지 오 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그러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엄마는 목줄 풀린 개야. 이제 안 해도 되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해. 그것도 습관이야, 습관” 그만했으면 하는 마음에 모진 말도 했다. 그 말을 들은 엄마가 화낼 줄 알았는데, 힘 빠진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맞아.”


동생이 먼저 집으로 가고, 엄마와 한가로이 점심을 먹고 엄마가 좋아하는 근처 관광지에 있는 카페로 갔다. 엄마는 아메리카노를, 나는 아인슈페너를 시켰다. 엄마가 내가 먹는 메뉴 이름을 묻는다. “아인스.. 뭐?” 몇 번을 말해도 못 외우더니 결국 메모장에 이름을 적어달란다. 다음엔 꼭 이걸 먹겠다며. 나는 커피잔을 손에 쥐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창밖을 바라봤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카페에서 연출된 사진을 찍고 나와 우리는 사람으로 북적이는 관광지를 걸었다.


“엄마 이것 봐. 사람들 명절에 요리 안 하고 다 이런 데 나와 놀잖아.”


분명 잔소리 그만하자고 어제 울면서 결심했는데, 멈춰지지가 않는다. 내년에는 엄마가 음식을 안 했으면 하는 마음이 내려놔지질 않는다. “알았어. 다음 설에는 녹두전만 할게. 녹두전만.”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냥 웃었다. 말린다고 됐으면, 벌써 그만뒀을 일이다. 그런데도 미련을 못 버리고 엄마를 말리는 나도 못 말린다.


내가 집에 간다고 하자마자 엄마는 핸드폰을 꺼내 약속을 잡았다. 나는 통화하는 엄마를 흘겨봤다. 내 빈자리를 금방 다른 사람으로 채우는 엄마가, 삼일이나 있었는데도 떠나는 순간에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엄마가 미웠다. 내가 빈자리를 엄마가 크게 느끼는 거 같아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엄마에게 바라는 마음은 왜 이렇게 한도 끝도 없을까. 엄마가 명절 음식에 초연한 사람이길, 아인슈페너 정도는 한 번에 알아듣길, 자식들이 떠난 후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길 나는 바랐다. 하지만 엄마는 명절 음식을 놓지 못하면서도 힘들다 소리를 입에서 떼지 못하고, 영어를 배운 적이 없어 알파벳도 겨우 읽고, 내가 집에 간다고 하면 핸드폰을 열어 친구와 약속을 잡는, 그런 사람이다.


추석날, 혼자 화내고 방 안에 들어 가 씩씩 대며 한참 울 때, 어쩌면 이번 추석은 다시 오지 못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음식을 하고, 힘들다 소리를 하고, 그 음식을 같이 먹던. 정말 힘들면 알아서 내려놓을 일을 왜 닦달하며, 엄마의 보람과 자존까지 깎아먹은 걸까. 늙어 가는 엄마를 보는 게 뭐가 그리 속상하다고.


내가 아무리 저항해도 시간은 흐르고 일어날 일들은 일어난다. 언제나 날 힘들게 하는 건, 상황이나 엄마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하는 마음이다. 다음 명절에는 좀 더 편안하게 녹두전 부치는 엄마를 바라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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