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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May 06. 2023

수용

나를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수용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겼다. 최근에 먹던 약을 끊자 4일 후, 온몸의 어느 몇 군데가 간지럽기 시작했다. 두드러기도 아니고 정말 순전히 간지러운 상태가 조금 지속되는. 매번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럴 때마다 간질이는 탓에 빨개지고 쓰라리기도 했다. 당시 너무 당연히 약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그것 말고는 바뀐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인터넷으로 약과 간지럼에 관해 찾아봤다. 이것이 약과 연관이 되어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관련이 되어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 찾아보니 아주 빠르게 알 수 있었다. 많이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그곳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뭐든 약은 장기적으로 먹으면 안 되고 약을 끊을 때는 조금씩 줄여나가야 한다”라고. 짧은 검색이었지만 내 나름대로는 결론이 지어졌다. “간지럼을 없앨 만큼의 양만 먹자“라고. 그것이 내 간지러운 몸에 대한 최선이었다.


저녁밥을 먹으러 나가는 도중 이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부터 온몸이 조금씩 간지럽다고. 약을 갑자기 끊어서 몸이 익숙하지 않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것 같으니 약을 조금씩 먹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조금 짐작하고 있었다. 당연히 엄마는 반대할 것이라는 걸. 그럼에도 나는 내 몸 상태가 이상하니까 변화를 줘야 할 것 같았다. 빨리 간지럼이 없는 원상태로 돌아가고 싶었다.


엄마는 이 간지러움이 약의 부작용이니 최대한 간지러움을 잊는 것들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격한 운동이라던지 뭐든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을 말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내가 본 정보로는 약을 먹지 않으니까 간지러운 것이었고 결국 약을 다시 먹고, 조금씩 줄여 나가는 것이었는데. 약으로 인한 간지러움은 다시 약으로 없앨 수 있는 것 아닌가? 왜 굳이 잊어야 한단 말인가.


내 몸의 부족한 능력을 약이 채워준다고 생각했다. 약을 꾸준히 먹는다면 내 몸은 스스로의 능력을 점점 줄여갈 것이다. 약이 그 능력의 주요 부분을 대신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약을 끊을 것이라면 더더욱 약을 줄여나가야 하지 않은가? 능력의 주요 부분이 갑자기 끊기면 당연히 몸은 그 능력을 다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지만 바로 쉽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1만큼의 능력을 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데 갑자기 10만큼의 능력을 내라고 한다면 무엇이든 시간이 들지 않겠는가. 나한텐 너무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여졌다.



내가 며칠 전 약을 끊은 이유는 부작용이 의심돼서이다. 없던 증상이 생기기 시작하자 약을 찾아보았고 약의 부작용을 보게 되었다. 과유불급이란 말마따나, 이 약을 먹어서 무언가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나는 약 복용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약을 다시 복용해야겠다는 다짐의 계기 또한 새로운 증상 때문이었다. 계속 언급했던 간지러움이다. 약을 먹을 때는 생기지 않던 증상이 먹지 않자 생기는 것이라면 나는 무얼 해야 하는가? 그렇기에 다시금 부작용을 일으킨 약에 손을 대려 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약을 먹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절대로. 약이 이 간지러움을 해결해 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어쨌든 약 중에는 간지러움을 줄이는 것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내 몸의 통제권을 약에게 쥐어주는 행동을, 믿음을 가진다면 나는 나에게 또 다른 증상이 생겼을 때 또 약부터 떠올리며 약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약의 부작용마저 약의 부족으로 여기며 더 많은 양을 복용할 수도 있을 거란 것. 그럴 나를 생각하니 정말 암담했다.


우리 몸이 약 없이도 상처를 극복할 수 있기까지의 과정에서 이러한 새로운 증상들이 나타난 것이라면? 약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란 시선보다, 약의 과다복용을 되돌리는 극복 과정이라는 시선으로 본다면?


약을 먹던 3개월, 약을 끊은 4일. 변한 건 약만이 아니었다.

약의 유무로 내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만큼 나는 약을 먹었던 삼 개월 동안 참으로 성실했기에 약만이 내 상태를 호전되게,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굳건히 다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물론 좋아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더욱 그 호전의 단맛에 길들여졌던 것 아니었을까. 파블로프의 개처럼, 아침저녁의 약을 꼭꼭 챙겨 먹는 중에야 나는 나아질 나를 상상했다. 내 상태가 나아질 것이라는 상상은 약 시간뿐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내가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는 것.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지금 나에게 어떤 영향을 얼마나 줄 지 기대하지 않고, 영향을 줄 거란 자체를 믿어주지 않았다는 것. 아차하고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눈에 보이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는 것만을 의심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약이 눈에 띌 수밖에 없었고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 거다. 눈에 보이지 않던 내 내면의 마음은 너무도 많이 변해있었는데 말이다. 가장 큰 충격은 나에 대한 믿음이었다. 나 스스로는 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여기며 외부의 것이 나를 바꿀 수 있을 것이란 허황된 믿음. 내 내부는 나의 믿음만이 판단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이었다.


그날의 저녁 마실은 나를 믿지 않았던 나를 수용하는 시간이자 깊은 깨달음의 눈물을 누출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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