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기란 참 쉽다. 숨 쉬듯이 그냥 안 하면 되니까. 무언갈 하겠다는 계획은 대부분 추가적인 행동이다. 대부분은 계획표에 숨쉬기, 밥 먹기와 같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써 내려가지는 않으니까. 힘들거나 하기 싫은 것들, 자신만의 무언갈 이루기 위한 과정을 써 내려가니까. 나도 마찬가지인 대부분에 속한다.
시험이 끝나기도 했고 재미있는 웹툰도 많고 오랜만에 게임도 해서 인지, 아무튼 여러 요소들 덕에 뒹구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험기간에는 시험이 끝났을 때 해야 할 추가적인 공부들이 많았는데, 정작 시험이 끝나니 이 여유를 끝내고 싶지 않아 졌다. 하지만 내가 하루종일 여유를 부리는 동안에도 친구들은 학원에 가고 있었다. 물론 SNS에서 친구들의 놂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주변은 그런 호화를 즐기면서도 그곳에 적셔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그래도 하려 한 걸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연필을 들 때면 그 호화가 머릿속을 적시고 다니는 나와는 달리, 내 주변은 호화에서 나와있는 시간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호화는 자연 속의 그런 꽃 종류가 아니었다.
그저 겉으로는 꽃처럼 보이는 조화였다. 꽃인 줄 알고 다가갔지만 나의 착각이었다. 그리고 나지도 않는 조화의 향에 나는 취해버렸다. 생화와 조화도 구분하지 못하며 그렇게 떠돌기를 몇 번 반복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하지만 자각은 찾아왔다. 생화를 보고 싶어졌다. 생화의 향을 맡고 싶어진 것이다.
정녕 지금만큼은 미루던 것과 마주하고 싶어졌다. 오늘 점심을 먹으며 나눈 엄마와의 대화 —시험 기간에만 휴식에 죄책감을 가진 것이었다는 이야기— 가 무색하게도, 나는 워낙 변덕스러운 사람이라 이 호화로운 생활에 조금은 따분해진 것 같다. 물론 재미있긴 하니까 좋지만 무언가 생산적인 것을 하고 싶어졌다. 조금 아쉬웠던 공부를 보충하는 것이나 글을 마무리 짓는 그림을 그리는 것 말이다.
그럼에도 아직 나 또한 이 말이 정말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 변덕스러운 나는 또 변덕을 부릴 게 뻔하니. 그래서 더욱 이 글을 쓰는 거다. 아무렇게나 갈겨버린 이 글을, 이 그림을 올리는 거다. 어찌 됐든 지금의 변덕은 후에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기에. 글과 그림과 공유의 힘을 또 한 번 느껴보려 한다.
이번엔 노빠꾸로 가보자. 시험이 끝났다 뿐이지, 내가 원하는 것들은 변화가 없으니. 글도 시원히 썼겠다, 오늘은 빠꾸먹인 그동안의 일을 마주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