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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연 Oct 28. 2019

아일랜드 한인 변호사 1호의 세상 사는 이야기

2화 - 무례한 판사 아줌마

2화 - 무례한 판사 아줌마

어제는 내가 법학 석사를 했던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하루를 보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점심 식사를 제외하고는 계속 이어진 세미나와 토론 등으로 머리가 약간 무거워졌으나, 오랜만에 강의실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니 다시 공부를 하는 만학도의 '학창' 시절로 돌아온듯한 기분도 들었다. 13년 전에 여기서 석사과정을 밟을 때는 그래도 '젊은 때' 인지라, 하루 종일 강의실과 독서실에 앉아 있어도 거뜬 없었는데, 이제는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지끈거렸다. 이래서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라고 말하는가 보다..


 10년간의 변호사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2017년에 법조계를 떠난 후부터는 그전부터 관련해 왔던 법률 자원봉사일에 더욱 시간을 쏟아부었다. 아일랜드에는 무료 법률 지원 센타라는 곳이 있다. 영어로는 FLAC (Free Legal Aid Centre)*라는 곳인데 전국 곳곳에 사무실과 센터를 두고 무료 법률 상담을 해주는 소위 NGO 인 것이다. NGO라고는 하나, 아일랜드 정부와 각 기관처로부터 인정과 협력을 받고 있고, 현. 전역 변호사들이 맹활약하는 곳 이기도 하다. 운영 방식은 복잡하지 않다. 국적.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법률 조언을 20-30분간 무료로 받고자 하는 이는 누구나, 가까운 센터에 전화 예약을 한 후 지정된 날짜에 변호사와 상담을 할 수가 있다. 그러다 보니 외국 노동자들은 물론, 현지인들로 부터도 상당한 호응과 반응을 얻고 있는 기관이다.


이러한 FLAC 이 금년 (2019)로 창립 50주년을 맞게 되어, 연말까지 이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여러 행사가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었다. 그 행사 중 하나가 어제 내 모교에서 열렸던 세미나였는데, 아일랜드 사법부와의 콜라버레이션으로 행사를 한 것이다.   강의실은 나 외에도 무료 법률 상담자로 봉사를 하는 많은 현. 전역 변호사들, 법대생들 그리고 시민 단체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법원장을 포함한 현직 법관들의 강의도 듣고 관련 법률의 발전 과정도 듣고 공개 토론도 하는 의미가 있는 그런 행사였다. 이곳 아일랜드에서 최고 판사라고 할 수 있는 대법원장인 프랭크 클라크 판사의 오프닝 연설을 듣고, 영국에서도 영국 사법부 개혁을 위해 브릭스 리포트(Briggs Report)를 썼던 브릭스 판사도 참석을 해서 영국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법부 개혁에 관한 설명도 들었다.


250여 명의 참석자들로 커다란 강의실이 붐볐지만, 모두 소외 계층을 위한 법률 지원 서비스를 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일말의 '소명감'을 가지고 진지한 표정으로 행사에 임하고 있었다. 오전 행사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신체장애자 등 사회 약자를 위한 법률 제도 개선에 관한 세미나. 토론시간이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행사 프로그램에도 없이 깜짝 등장을 한 사람이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조금이라도 법조계 쪽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아야 할 인물, 바로 미 홀 히긴스 형사법 전문 변호사였던 것이다. 그의 이름은 이미 신문 지상에서 대중과 친숙해져 있었다. 중대한 형사 재판에는 항상 그의 이름이 실려있었다. 공익법에도 깊은 관련을 하고 있는 히긴스 변호사는 변호사들뿐만 아니라 판사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그러한 인물이었다. 히긴스 변호사가 예정에도 없던 등장을 하자 관객석도 환호를 질렀다. 그가 주로 맡고 있는 일이 형사 재판 변호이다 보니, 본인의 관심사도 당연히 그쪽이었다. 그래서 그의 토론 주제는 바로 인권 사각지에 놓은 특수 부류의 인권 유린, 바로 수감자들의 인권 유린이었다.


일반인들은 대체로 수감자들의 실생활과 인권에 대해 관심이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수감자들은 죄를 짓고 마땅히 수감소에 들어간 사람들 이므로 그들이 거기서 고통을 받는다면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보는 사회적 통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또, 마땅히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그렇기 때문에 수감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대부분 미디어에서 조차 보도를 하지 않고, 수감소 내 폭동이나 살인 등, 강력 사건만 잠시 언급을 하고 지나가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히긴스 변호사가 특별히 논의한 것은 수감자들이 항소를 할때 겪는 현실적 어려움 이었다.  법원에 항소 등의 이유로 서류를 하나 제출하려고 하여도, 문서 한 개당 150 유로나 하는 가격이 붙어 있기 때문에, 구금 상태에 있는 이들, 특히 수감소 밖에 도와줄 가족이나 네트 워크가 없는 이민자나 무연고자 등 에겐 이러한 요구 사항은 사실상 법률 제도를 이용할 수 없게 만드는 제도적 방해물로 작용한다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  내 개인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아일랜드의 시민 단체들이 소외 계층에 대해 별의별 캠페인을 다 구성하고 있지만, 청소년 보호소, 수감소, 정신병원 등 구금 상태에 있는이 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내가 직접 경험한 분위기였다. 물론 수감원 개혁이라는 목적을 두고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가 있긴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들의 활동이 그다지 수확을 이루고 있진 않았다. 내개인적인 견해 이다. 어쨌든, 나는 이러한 상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히긴스 변호사처럼 영향력이 지대한 공인이 남들이 관심을 별로 두지 않는 이러한 사안에 대해 용감히 발언하는 것에 참으로 반가웠다. 남이 말하지 않는것을 공개적으로 발언 한다는것은 왠만한 자신감과 용기가 없다면 할수 없는 일이다. 나만 바보꼴이 될수 있는 위험이 항상 따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에 나는 오전 행사가 끝나면 히긴스 변호사에게 인사라도 나누고 싶어 졌다. 물론 10년 이란 별로 길지 않은 세월이지만, 잠깐이라도 아일랜드 법조계에서 생활하던 나에게는 셀렙 변호사인 히긴스 씨와 만나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래서 성급히 단상 뒤쪽으로 향했는데 마침 그는 여러 변호사들에게 둘러 싸여 인사를 받고 있었다. 그가 그들과 말을 끝내고 행사장을 빠져나가려고 할 때, 내가 먼저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처음 보는, 그것도 행사장에서 유일한 동양인 여자가 웃으며 손을 내밀자, 그는 순간적으로 의아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반가워했다. 활짝 웃으며 내가 내민 손을 잡아 힘차게 흔들어 주었다. 먼저 나는 간단히 내 소개를 했다. 2017년 에 은퇴한 Barrister(Solicitor와 구분됨)라고 하자, 동지네요 하며 반가워했다. 그도 Barrister 였던 것이다.


시간이 촉박한 그의 입장을 고려하여 나는 지체없이 그가 논의한 주제를 언급하여 미흡하지만 내 의견도 전했다. 그러자, 히긴스 변호사는 이 사안에 관심을 가지는 이가 별로 없는 것이 서글픈 현실 이라며, 같은 생각을 가진 동지를 만난 기분이라고 했다. 이렇게 얘기가 흘러가자, 어느새 지난해에 아일랜드를 뒤 흔들었던 성폭행 사건에 대해 논의하게 되었다. 그 사건은 외국인 남자가 아일랜드 여자를 성폭행하였다고 체포가 되어 재판을 받은 사건인데, 피의자가 유색인종의 외국인 남자였고, 피해자가 자국민 여자라는 사실 만으로도 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숨어있던 인종 혐오 기질을 외부로 드러나게 했고, 피의자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들도 그런 상황에서 피의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수 있도록 하는것이 아주 쉽지가 않았다고 토로한 그러한 형사 사건이었다. 당시 변론을 맡았던 Barrister 둘 중에 한 사람이 내 동기 이기도 했다. 물론 히긴스 씨도 그 사건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내 오른쪽으로 한 아줌마가 불쑥 느닷없이 들어오더니, 우리 대화를 서두도 없이 싹둑 끊어 버리고 히긴스 변호사를 나꿔 채 그에게만 말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상황을 보니 둘은 이미 안면이 있는 듯했다. 60 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 여자는 내게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고 그렇게 무례하게 대화를 중간에서 싹둑 끊은 것에 대한 미안함도 전혀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오직 히긴스 변호사만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한마디로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히려 히긴스 변호사가 이 상황을 당황스럽게 여기는 듯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도 처음엔 당황해서 할 말을 잠시 잊었지만, 그런다고 내가 쉽게 밀리는 여자도 아니라, 나도 시침 뚝 떼고, 둘 사이에 다시 끼어들어 대화를 내쪽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그랬더니, 이 아줌마는 처음으로 나를 제대로 쳐다보았다. '아쭈, 제법인데?' 하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던 건 내 생각뿐이었을까?


이렇게 '불편한' 삼자 대화를 마치고, 나는 그 여자를 똑같이 개무시 하고 쳐다보지도 않은 채, 오직 히긴스 변호사에게만 인사와 악수를 한 뒤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오는데, 그 무례한 아줌마가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이미 본의 아니게 구면이 된 사이라, 눈웃음 정도는 하고 지나 칠 수 있었겠건만, 나는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소위 '생까'라는 것을 당당히 해주고 지나쳐 버렸다. 그리고는 나 자신이 아주 뿌듯하여 가벼운 발걸음으로 점심 먹는 장소로 향했다.


점심 후 오후 행사를 위해 돌아오니, 이미 강의실이 꽉 차 있었다. 무대 위에는 새로운 페널 리스트들이 앉아 있었다. 행사장 중간이나 뒷부분이 이미 다 찬 상태라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앞자리로 갈 수밖에 없었다. 앞줄에 앉으니 무대 위에 패널리스트들이 마치 앞에 앉은 듯이, 불편할 정도로 가깝게 다가왔다. 착석을 하고 오후 행사 프로그램을  처음 펴 들었다. 오후 패널리스트들이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프로 그램에서 눈을 떼고 무대 위 사람들을 처음으로 찬찬히 돌아봤다. 몇몇 낯이 익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르는 사람들이 서 넛 있었는데, 그중 흰색 재킷을 입은 중년의 여성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점심시간에 나와 히긴스 변호사와의 대화를 '실례합니다' 한 마디도 없이 불쑥 들어와서 무례를 범한 그 아줌마가 아닌가? 나는 부랴 부랴 오후 프로그램과 패널 프로필을 다시 펼쳐 들었다. 프로그램에서 그 아줌마의 이름을 확인한 뒤, 구글 검색을 조용히 때렸다. 그랬더니, 아까 당당하게 무례했던 그 아줌마는 얼마 전에 하급 법원내에서 고위직으로 임명이된 하급 판사중 한사람 이었던것이다. 변호사 생활을 접은후 그쪽일에 관심까지 껐던 터라 내가 근래에 일어났던 법원 인사 유동에 대해 그야말로 무지했던 것도 있었지만, 법원을 드나들던 시절에도 늘 가는 법원만 가게되니, 지방에서 활동하다 고위직으로 임명이된 이 아줌마 판사를 만난적이 전혀 없어 몰라 봤던 것이다. 그때서야 내가 당당히 대화에 재 진입을 했을 때 그녀의 당황했던 표정이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황당 그 자체였겠지. 내가 누군지나 알고, 감히.. 하는. 그것도 외국인이.


그 아줌마의 '정체'를 알고 나니, 더욱더 내가 그녀를 모른 척한 것에 대해 후회가 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은퇴를 한 평범했던 외국인 변호사, 그것도 유일한 동양인 여자 변호사였지만, 그녀는 하급 법원 이라고는 하나, 엄연히 아일랜드 사법부를 대표하는 고위 법원인사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말은, 그녀는 일반인들보다 더욱 겸허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처신을 할 '의무'가 있는 공인이라는 것이다. 나와 내 남편이 내는 세금으로 적지 않은 연봉을 받고 예우를 받는 사람이다. 영어로 하면 Public Servant 였다. 공공을 위한 일꾼이라는 직역이 과히 틀린 위치가 아닌 것이다.


어쨌던 그녀도 나를 상당히 의식한듯 하였다. 200여 명이 넘게 앉아 있었던 강의실이었지만, 유일한 유색인, 시건방지게 팔짱 끼고 맨 앞에 앉아 있는 동양인 여자를 그여자 눈길이 비껴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앞서 자신을 용감무쌍하게 통제하고 생까까지 했던 여자를.. 눈길이 안 가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거였겠지. 그래서 그런지, 마이크가 본인에게 어오자 말을 버벅 거렸다. 내가 코웃음을 칠 정도로. 하긴 아까 내가  이 판사 아줌마 앞에서 말발이 좀 현란하긴 했지? 하며 나는 인종 우월 주의자들이나 느낄 그런 이상한 감정을 아주 잠시 순간적으로 맛봤다.  난 왜 이렇게 못됐나 모르겠다.


*Centre는 영국식 철자이며, 미국식 철자는 Center

아래 사진은 위 내용과 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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